주 형사는 곡창지대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로를 달리는 동안 그곳에서 현장을 수사하고 잠복했던 한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주 형사가 처음 사건에 투입되던 시기는 88년 9월경,
추수의 계절답게 드넓은 밭의 황금빛 물결과 야트막한 산 주변이 초록으로 살랑이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평화로운 시골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늦가을 문턱을 좀 더 넘어서면 막바지 여문 열매와 수풀로 우거진 초목은 노을빛을 닮은 소슬바람에 쓸려 잿빛으로 발가벗겨졌다. 다시 황량한 벌판이다
마을 입구로 뻗은 들판 길의 낮은 쓸쓸하고도 평온했지만, 밤은 만만치 않았다. 그 흔한 가로등 불빛조차 없어 마치 검은 목면포를 뒤집어쓴 듯 주변은 적막했다.
또한 높은 건물이나 지형도 없어 매서운 밤바람에 오한이 서릴 정도로 냉랭한 지대였다. 놈은 이런 계절의 밤을 좋아했다. 특히 비가 오거나 안개 낀 흐린 날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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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투피스 차림의 피해자는 들깼단 더미 옆에 반듯하게 뉘어 있었다. 들깼단에 덮여있던 시체를 발견하고 감식반이 단을 걷어낸 것이다. 일우는 감식반과 간부의 뒤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죽은 여성의 얼굴은 재갈이 물린 채로 하얀 천에 덮여 가려져 있었다. 매듭져진 스타킹 두 짝, 구두와 우산, 핸드백, 쇼핑백 같은 소지품들이 마치 정돈한 것처럼 시체 옆에 가지런히 있었다.
주일우는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뭔지 모를 섬뜩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멀스멀 기는 것 같았다.
감식반 1이 소지품들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갑자기 우산을 거꾸로 집어 들었다. 그리곤 봉긋한 손잡이 주변에 루미놀 시약이 든 분무기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젠장…. 이거 피잖아!
감식반 2가 그 말을 듣고 여자의 겉옷을 들췄다. 속옷의 상표가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시체를 뒤집었다. 양팔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지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쪽으로만 고리를 만든 반쪽 나비 모양으로 희한하게도 결박이라기엔 약간 느슨한 매듭이었다.
미국의 보스턴 교살자는 여성을 강간하고 죽인 뒤 자신의 물건으론 부족했는지 음부에 빗자루를 꽂아두었다. 나중에야 확실해졌지만, 이 악마는 빗자루 대신 우산 손잡이를 박아 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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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 용의자의 집 내부를 수색했다. 그것이 불법이든 간에.
다른 형사들이 증거물을 찾는다며 방을 들쑤셔 엉망으로 만들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주 형사는 목격자나 확실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정공법으로 범인을 잡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변칙이지만 함정을 펼쳐 현행범으로 붙잡거나, 유력한 용의자를 불러 앉혀 회유해서 안되면 고문하고 협박하는 방법 외엔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유력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제로 자백을 받아봤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 날것이 뻔하다. 그 때문에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건 상관없었다. 형사는 원래 욕먹고 사는 직업이니깐. 그보다는 억울한 희생자 대신 진짜 범인을 간절히 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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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단순히 대범함, 또는 무모함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연의 연속도 아니다. 경찰의 무능함 때문도 아니다. 완전한 연쇄살인이란 미리 치밀하게 짜인 각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
쳇바퀴수사가 계속되자 머릿속도 회오리에 뒹굴린 듯 탁하고 어지러웠다. 단서를 붙잡으려 엉겨붙은 질서없는 상념의 무게에 짓눌려 의욕조차 침전되는 시간. 또다시 사물이 흔들리고 귓속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명과 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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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같았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이곳에 분명 존재했다가 어느 순간 증발해버린. 밤 한때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밤안개다. 놈이 증발해버린 자리엔 있어야 할 증거나 목격자도 없이 잔혹한 살인 흔적만 떡하니 남겨져 있었다. 그 짓을 치르고 휘저은 뒤 낯선 공포와 잡히지 않는 실체에 대한 두려움이 마을에 기괴한 소문을 잉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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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는 추위와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항상 소주 한 병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안주는 캐비닛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먹다 남은 비스킷과 딱딱해진 오징어가 전부였다. 그것도 좀약과 신문지냄새가 배겨 역한 맛이 나는.
잦은 잠복으로( 특히 비 오는 날을 골라..) 항상 옷이 축축해지는 바람에, 캐비닛 안엔 좀약과 신문지가 필수였다.
현장 주변은 전부 논밭이거나 흙바닥이라 농부들이 신는 고무장화나, 차라리 맨발이 어울렸다. 하지만 언제 범인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운동화를 벗어던질 순 없었다.
젖은 옷은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신발의 귀축축한 느낌이란 참기 힘들었다. 더구나 검문시간 동안 주민들 몰래 곡괭이와 야삽으로 대충 파놓은 구덩이 안에 잠복하는 것은 끔찍했다. 야전삽으로 바닥에 나름의 물구멍을 내본들 차오르는 빗물을 막을 순 없었다.
왕대는 이러다간 범인구경도 하기 전에 발이 썩어 문드러질거야! 아님 독감으로 골로 가겠지! 하며 으르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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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부분 쓰고있는데 연결이 어렵네요. .
. . 웹툰한다고 깝추다가 이제서야 수정하네요. 이런 글을 계속 올려 뻘짓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요즘엔 소설 올리는 사람이 없어서. 사는 얘기..좋지만, 추리소설 카페잖아요 ㅎ 누군가의 소설이 나타날때 까지 조금씩 올리고 완성되면 어디다 보내든 여기에 올리든 지 하겠습니다. .
첫댓글 이용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이용하시길... 읽는 분도 글 쓰는 분도 다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