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브레이킹 여자부 경기가 열린 지난 9일(현지시간) 0점을 받은 선수가 나왔다. 다른 종목에서는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배경이 설명돼 동정과 함께 뜨거운 성원과 격려를 받기도 하는데 호주 대표 레이철 건(36)은 달랐다. 온라인 조롱과 모욕이 끊이지 않았다.
박사학위 소지자로 대학강사인 그녀는 이번 대회에 레이건(Raygun, 광선총)이란 닉네임으로 출전한 건은 세 차례 경기를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치러 8강 진출자를 가리는데 세 경기 종합 0-54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다수 경쟁자들이 스트리트웨어 차림으로 이날 경기에 나선 반면, 건은 녹색에 노란색이 들어간 호주 올림픽 선수단복을 그대로 입고 경기에 나섰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조롱하는가 하면 캥거루처럼 무대를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는 그녀의 몸동작에 우스꽝스러운 음악을 덧입힌 동영상을 옮기며 모욕하곤 했다.
건의 설명이다. "난 최선을 다하는 이들 소녀를 다이내믹함과 파워 무브에서 물리칠 수가 없다. 해서 난 다르게 움직이고 싶었다. 예술적이면서 창의적으로 말이다. 인생 살면서 국제 무대에서 이런 걸 해보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느냐? 난 언제나 언더독이었고 내 발자국을 다른 방식으로 남기고 싶었다."
두 차례 올림픽 사이클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지금은 호주 선수단의 연락관 책임자로 일하는 안나 미레스는 다음날 기자회견 도중 "낚시글과 키보드 전사들 때문에 지금 소셜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들의 댓글을 인용하는 일, 그들에게 방송 시간을 할애하는 일 모두 극히 실망스럽다"고 개탄했다. 이어 "난 절대적으로 그녀의 용기, 그녀의 캐릭터를 사랑하며 그녀가 이따위 공격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석한 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라인 후폭풍과 관련해 "다르다는 것을 겁내지 말라. 그곳에 가 스스로를 드러내라, 여러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대꾸했다.
미레스는 건에 대한 비판이 여성혐오의 증거라고 단언했다. "2008년에 그녀는 남성이 지배하는 이 종목에 유일한 여성으로 늘 울음방에 감금돼 있었다. 그리고 대단한 용기를 내 계속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이 종목에 참여할 기회를 잡기 위해 싸워왔다."
건은 미레스의 말에 공감하는 듯해 보였는데 남성 출전자가 비슷하게 의상 선택에 문제점을 드러내면 자신과 같은 수위의 분노가 표출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건은 "내일 비보이들이 입은 것을 갖고 같은 수위의 조사가 이뤄지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브레이킹에서 여성 출전자는 '비걸'로 통하고, 남성 출전자는 '비보이'로 통한다. 브레이킹은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유행했던 스트리트 댄스 배틀에 기원을 두고 있다. 4년 전 파리 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기로 결정됐다. 젊은 관객층을 올림픽 무대에 끌어당기겠다는 취지였는데 다음 대회인 2028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채택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이날 남자부 예선 라운드에서 8강 진출에 아쉽게 실패한 한국 대표 '홍텐' 김홍열은 39세로 건보다 세 살 위다. 지난 7일 스케이팅보드 파크 종목에 최고령 출전자는 영국계 미국인으로 영국 대표로 참가한 앤디 맥도널드는 51세로 아들뻘 선수들과 자웅을 겨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