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특집
대관령
정재분
치솟아 하늘에 가까우니
장대를 들어 올리면
어느 뜬구름 귀퉁이에 가닿을까
실처럼 풀리는 구름을 돌돌 말아
솜사탕 만드는
무구한 아이가 되지 않을까
무릎 칠 깨달음 한 수 얻지 않을까
부스럭거리는 속내
날숨에 섞여 나올라치면
귀 어둔 아부라카다브라 용케 알아듣고
무슨 비방을 알려주지 않을까
마음을 쓸어내리는
평온 한 줌 얻어갈 수 있을까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살
풀쐐기마냥 따갑다가도
어느새 아득해지고 곰삭아
흐물흐물해지는 곳
분침이 늦어지고
시침도 따라 늦어지는 곳
챗 GPT
- 부사
화장하는 형용사를 힐끗 보다 마침내 새 옷을 꺼내는 부사,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전의 해설을 읽다 말고 거울 앞에 선다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액체 기어이 끓어 넘쳐서 휘발하고야 마는 충동 어둠이 가까워질 때야 놓여나는 그림자 이를테면 운동화 가령 그릇의 표정에 민감한 수동태 기어이 정오의 짧은 그림자마저 사라진 비 내리는 한강에서 드디어 공허의 허벅지를 만난다 그리하여
자연계의 경찰
어릴 적에 나, 떼 좀 썼을 것이다. 떼 부리면 순경이 잡아간다는 말을 듣곤 했으나 경찰과 마주칠 일이 없는 한적한 마을에서 살았으니 어디 엄포를 놓아도 약발이 잘 먹혔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말로만 듣던 경찰을 처음 본 곳이 어디였을까. 아마도 대여섯 살, 큰 언니와 대전 시내 어딘가를 갔을 때이지 싶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날카로운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로 교통 정리하는 모습이 세계를 감각 하는 하나의 퍼즐이었을 것이다. 교통경찰의 수신호에 따라 차들이 멈추고 다시 출발하던 정언명령이 무언중 질서를 각인시키고 순응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경찰의 제복은 통제의 기호이며 사회적 체계를 어겼을 경우 사법적 판단과 처벌이 뒤따를 수 있다는 암시의 기재가 아닐 것인가.
나 어릴 때는, 누구네 아무개가 연탄가스에 중독됐다는 말을 종종 듣던 시절이기도 했다. 연탄가스 중독에는 동치미 국물이 응급 처방이었다. 가스 중독을 일으키는 그것의 명칭이 일산화탄소라는 걸 알게 됐을 때도 그것은 다만 사용자 개인의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이지 인류와 지구의 존폐를 위협하는 멱살잡이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요즈음 워낙에 탄소를 줄이기 위한 모색이 세계적인 이슈라서 탄소란 놈의 생리에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는 지경일 것인데, 그것이 어떤 물질과 섞이는가에 따라 일어난 화학적 변용이 어찌나 다채로운지 놀라게 된다. 탄소는 침묵하나 간과하지 않는 자연을 대변하여 경고장을 날리고 본때를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징벌까지 서슴지 않는 양상이니 자연계의 경찰이라고 말한다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탄소는 이 땅의 주인인 양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행동 방식에 성실하게 반응하며 상과 벌을 내리는 판이지 않은가.
고체인 탄소는 천연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나 수치상 0.2%라니 특별히 풍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탄소의 화합물은 어느 원소가 만들어낸 화합물보다 많다고 한다. 무엇과 화합하는가에 따라 최첨단 소재에서 치사적인 독성에 이르기까지 망라하는 스펙트럼에 놀라게 된다.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생활 습관에 반응하고 맹렬히 콧김을 내뿜는 탄소는 어디에나 있는 CCTV를 연상시킨다. 자연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자연의 관점에 귀 기울이지 않고 행패에 가까운 파괴를 할 때 탄소가 내두지 않는 것이다. 탄소의 분노에 동참하는 물질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플라스틱이 뚜렷한 예이다. 자연의 순환이 일갈하는 바는 재활용이다. 따라서 부를 쫓는 수단으로나 사치와 낭비할 요량으로 자원을 함부로 훼손하면 응징을 서슴지 않는다. 응징의 근거로 탄소가 측정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탄소-12는 다른 원소의 원자량을 측정하는 표준이고, 탄소-14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쓰인다. 오래된 무엇의 뼛조각 하나로 그것의 실체와 그것이 살았던 연대를 측정함으로써 존재의 연원과 시대의 알리바이 추적을 가능하게 한다.
탄소의 변증법은 자연의 언어요, 대화 방식이다. 사용자의 자유의지를 검열하고 행동 방식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탄소 중립을 자주 강조하는 것은 자연이 설정한 탄소의 수치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럴 때 자연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고 그 피해를 사람이 고스란히 받는다는 점이다. 이 수치는 침묵의 정언명령으로 그 수치를 넘어서면 사달이 난다는 뜻이다. 표준이 되고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는 자연의 경찰일 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양심 기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