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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석모도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요 애환이 서려있는 대룡시장과 교동 제비집..........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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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도 여행]. 석모도 피난민들의 삶의 터전이요 애환이 서려있는 대룡시장과 교동 제비집..........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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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와 교동도! 강화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들어가는 섬 속의 섬이다. 또한 고려부터 조선까지 왕족들의 유배지였던 교동
도는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가꿔온 골목시장의 정겨운 風景[풍경]이 시간
이 멈춘 듯 6~70년대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때는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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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25전 전 남북분단 이전에는 황해도 동 남부에 있던 연백군은 교동도와 같은 생활권으로 왕래가 잦았다. 그 예로
교동 사람들은 연백 장날마다 오갔을 정도로 가까운 이웃이었다. 당시 공산당이 싫은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북한의 연백군
등 황해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을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시 터전을 잡아 생활하던 곳이
지금의 교동 대룡시장 사람들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어느 날 분단의 철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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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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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래: 머루, 으름, 산딸기와 함께 대한민국 및 동북아시아, 혹은 뉴질랜드의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 과일이다.
과육의 모양새가 뉴질랜드의 유명한 과일 키위와 매우 닮았다. 봄에는 다래 순을 채취해 나물로도 해서 먹는데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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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失鄕民[실향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 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기약 없는 시간이 흐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한이 맺힌 실향민들은 1960년에 물길 건너 연백군이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이는 교동도 망배 비와 방
배 제단[망향대]에 비를 세우고 매년 추석 등 절기마다 북녘을 향해 祭祀[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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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애초엔 대다수의 국민들은 남북 分斷[분단]이 이렇게 오래갈 것을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는 '국토분단,'
'남북분단', '분단국가', 라는 용어를 쓰면서 주로 지리적인 분단만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수십여 년간 지속된 분단의 고착
화
와 그에 따른 남북 간의 이질화를 인정하는 의미만 되새기고 있을 뿐 현실적으로는 입으로만 통일을 외칠 뿐 손쓸 방법이 없
는 게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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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는 생으로 먹을 때는 키위 먹는 방법과 비슷하게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하고, 키위와 달리 털이 없어서
껍질째 먹을 수 있다. 다래는 담금주로도 먹는데 몸을 따뜻하게 해 주며, 이뇨, 강심, 강장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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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현재도 통일은커녕 남북 간 자유 왕래도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세계의 냉전이 끝난 지금까지도 제
1 연평 해전[1999년 6월] 과. 제 2 연평 해전[2002년 6월] 과 천안함 피격 사건, 그리고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군사도발 등
으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게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이다. 아무튼 밤 머리 산[율 두산(89m)]에 있는 喬桐 望鄉台[교동 망향대]
전망대에 서면 강 건너 북쪽 하늘과 북쪽의 山河[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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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면 강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 걸어서도 남북을 오갈 수 있을 듯싶다.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
교동으로 피란 나왔다고 하는 한국전쟁 당시의 실향민 이야기를 실감케 하는 피란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대룡시장 상인
들!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失鄕民[실향민]들 분단의 현실과 분단의 아픔 속에 고된 삶의 굴곡들이 유랑자의 가슴
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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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에는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특히 비타민C가 레몬의 10배가량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비타민C는 혈액
순환을 촉진 시켜주며, 젖산 억제와 근육통 완화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력 증진과 피부 미용에도 좋아 꾸준
히 섭취해 주는 것이 좋다. 비타민C로 인해 소변 배출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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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교동도는 강화도 만큼이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섬이다. 강화도가 한강 하구를 지키는 전략적 거점이자
국난시 왕실의 피난지 역할을 했다면 교동도는 일종의 왕실 전용 유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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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백군 등 황해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을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시 터전을 잡
아 생활하던 곳이 지금의 교동 대룡시장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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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교동 대룡시장은 6·25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나온 주민들이 한강 하구가 분단
선이 되어 故鄕[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 시장을 본떠 만든 재래시장이
오늘의 대룡시장이다. 전쟁을 피해 내려왔다가 잠시만 머물다가 돌아가리라 과연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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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50년대 피란민에게 교동도는 잠시 머물다 돌아갈 곳이 아니라 평생의 굴곡진 삶의 터전이 되어버렸다.
바로 건너편에 고향 들판이 보여도 갈 수 없었다. 大는 ‘클’, 龍은 ‘용’을 뜻하는 大龍市場[대룡시장]은 장터 이름과 물건,
음식 속에 고향의 기억을 옮겨 놓은 것은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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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깃든 다방과 쌍화차! 쌍화차는 계란 노른자와 잣, 대추를 띄운 진한 한방차로, 영심이네 찻집이나 철물점 다방의
오래된 온기와 강화 교동다방의 옛 네트로 분위기가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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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절함이 아로새겨진 대룡시장은 70여 년간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세월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시장을 만든 土着[토착] 실향민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
장의 규모도 상당히 줄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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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4년 7월 교동대교의 교통과 함께 1960년대 영화세트장 같은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살아 있는 대룡시장의 모
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 유랑자 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교동 대룡시장에 들
어서면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면서 1960년대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옛 추억의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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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건물을 배경으로 걷다 보면 로맨틱한 감성을 자극하는 옛 추억 속의 한 장면들을 떠
올리게 한다. 마치 소리 없는 無聲映畵[무성영화]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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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품들과 기록을 살펴보는 잔재미도 있다. 다방의 벽면 메모처럼 방문객이 남긴 흔적은 당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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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는 ‘청춘부라보’ 집에서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강아지 떡’과 ‘이북 만두’를 판다. 대룡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은 대부분 6.25 당시 황해도 연백, 해주, 개풍 등에서 온 실향민들이거나 후손들이다. 당시 황해도에서 제일 큰 ‘延白五日
場[연백 오일장]’을 재현해 5일에 한 번씩 대룡시장에 장이 설 때마다 강화도, 김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찾아왔
다. 시장의 거리를 살펴보면 우리의 옛 추억의 모습들이 그대로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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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심이네 찻집이나 옛 철물점을 리모델링한 다방에서 노란색 달걀이 올려진 쌍화차 한 잔 시켜놓고 고즈넉한 다방의 낡은
소파에 앉아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몰론 현대판 대형 커피전문점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허접한 인테리어이긴 하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돈 1.000원 한장에 豪氣[호기] 를 부렸던 그 나름의 옛 추억에 젖어 볼 수 있는 복고풍의 분위기 만
큼은 또 다른 感性[감성] 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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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대룡시장에도 해물이 풍부한 얼큰한 짬뽕인 ‘교동짬뽕’이 유명하고, 교동 제비집의 찹쌀로 만든 약과인 ‘교동 약
과’, 강아지떡도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사 가는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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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는 섬 전체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북한 땅이 코앞인 곳이다. 이 때문에 교동도는 황해도, 특히 건너편의 연백군
에서 넘어온 실향민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 때문인지 평화를 모티브로 한 전시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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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그 茶房[다방] 그 많던 미스킴, 미스리, 미스박...그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오빠 나두 한잔만.. 나두, 나두요."
모닝커피, 마티니 도라지 위키스, 쌍화차, 우유도 팔았었다. 단돈 이천 원에 예쁜 아가씨 옆에 앉혀놓고 이런 농담 저런 농
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 세상에서 나를 최고로 알아주던 곳!, 누구나 사장님이 되어 주는 그 追憶[추억]속의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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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집, 저집 눈요기를 하면서 좁은 골목길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건물을 배경으로 걷다 보면 로맨틱한 감성을 자극하
는 옛 추억 속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마치 소리 없는 無聲映畵[무성영화]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그
도 그럴 것이, 추억의 무성영화 속에 등장했던 상점들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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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에 남아 있는 오래된 풍경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면서 교동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계
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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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룡시장은 낡아서 가치 있는 곳이 아니라, 분단 속에서 사람들이 삶을 다시 일으킨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것이다. 유랑자는 구수한 다방 커피향을 뒤로하고 미스김, 미스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들여다 보며 한바퀴 돌아 본다. 세상
을 변했어도 세월은 흘러갔어도 대룡시장은 예전의 모습그대로 크게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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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도는 섬 전체가 ‘교동’인 셈이다. 교동읍성에서 가까운 중심가에는 ‘喬桐鄕校[교동향교]’가 자리 잡고 있다. 단,
교동도의 ‘喬[교]’자는 ‘높을 喬[교]’ 자를 쓴다. 교동도 대룡시장에도 해물이 풍부한 얼큰한 짬뽕인 ‘교동짬뽕’이 유명하고,
교동 제비집의 찹쌀로 만든 약과인 ‘교동 약과’도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사 가는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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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는 섬 전체가 군사작전 구역으로 서북방 도서를 관할 하는 해병대 2사단의 통제가 심한 편이다. 외지 차량은
23:30분 부터 다음날 일출까지 교동대교 통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섬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하게 돌아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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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머리 산[율 두산]에 있는 喬桐 望鄉台[교동 망향대] 전망대에 서면 강 건너 북쪽 하늘과 북쪽의 山河[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실향민들은 이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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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대룡시장 입구 공용주차장에 있는 교동 제비집을 찾아보았다. 교동 대룡시장을 돌아보려면 이 제비집이 있는 공
영 주차장[무료]에 주차하여야 한다. 제비집은 다들 아는 대로 고전소설에 興夫傳[흥부전]에 나오는 착한 흥부와 욕심 많은
형 놀부를 통해 勸善懲惡[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동물이다. 아무튼 그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포인트 동물이 바로 제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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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팩트를 현대 사회에 빗대 짚어 보면 반전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自手成家[자수성가]형 부자 놀부의
입장에서 흥부는 '대책 없는 한량'이다. 육체도 멀쩡한 장정이면서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줄줄이 낳은 자식들을 데리고 매번
형에게 손을 벌린다. 스스로 자립할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히 박씨나 물어다 줄 제비를 기다리는 인물로 비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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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제비집 앞에는 제비집을 형상화한 모형도 있다. 예전엔 봄이 되면 처마에 집을 만들고 살고 있는 제비를 보는 건 흔
한 일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반도에서 살고 양쯔강 이남에서 겨울을 나는 제비는 굉장히 친숙한 새였는데 요즘은 시골
에서도 제비를 보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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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땀 흘려 자산을 일군 놀부의 입장에서, 당연하다는 듯 도움을 요구하는 흥부의 태도는 분노와 억울함을 유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치열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옛날이야기 속 권선징악보다,
이 놀부의 시선이 훨씬 더 현실에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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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력의 가치와 공정한 보상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흥부전의 구조는 자수성가의 딜레마를 여과 없이 보여 주는 현대
판 거울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富[부]는 타인의 노동이나 운에 기대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생산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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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입구 주차장 한켠에 자리 잡은 제비집은 어린 시절 처마 밑에 지어 알을 낳고 새끼는 길러 날아가던 제비의 모형을
만들어 놓은 교동 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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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세대들은 힘든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럴까? 팩트는 "의지가 부족해서 일자리를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삼D는 싫고 워라밸 찾아야 하고, 연봉은 많이 받고싶고 그러나 이것은 본인들만의 생
각이고 줄 사람이 줘야 받는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스스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리는 나태
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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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자기 용돈 벌기도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속은 어떤 것일까?. 물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심히 노력해도 안정적인 미
래를 그리기 힘든 구조적 한계 속에서, 나약한 많은 이들이 번아웃을 겪고 방구석으로 숨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쉽게 "의지가 부족하다"라며 놀부 같은 잣대로 훈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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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에는 관광 안내 자료와 전시 공간, 카페와 지역 특산품 판매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요. 건물 곳곳의 제비 조형물
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 교동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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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興夫傳[흥부전]은 작자는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 후기에 판소리로 불렸던 판소리계 민간 소설로 구전되
어 오는 게 흥부전이다.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 소설이면서 因果應報[인과응보]에 따른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와 사
상을 지닌 작품이다. 한편으로 조선 후기 사회에 새롭게 등장하는 졸부의 형상을 다루면서, 害惡[해학]과 諷刺[풍자]의 웃
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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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남원시 여행 때 다녀온 흥부전의 그 흥부 마을이 남원 아영면 성리[상성마을] 570-1에 가면 있다. 흥부의 생가와,
박춘보[본명] 묘까지 둘러보고 나서 유랑자가 여행기를 써 온라인에 올려놓은 글[https://cafe.daum.net/b2345/LKz0/393]이
있으니 궁금하시면 참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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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제비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교동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디지털 갤러리였다. 교동도가 지나
온 시간과 주민들의 삶, 오늘날의 모습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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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이 좀 길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그 제비의 집이 교동에다가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왜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동 모형 제비집은 제비가 실향민들이 남겨두고 온 고향 땅, 즉 북한 황해도 연백
평야의 흙을 물어와 교동에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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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전설을 바탕으로, 고향을 떠난 실향민의 그리움과 귀환 염원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다. 가족과 고향을 기억해야 하는
실향민들의 애틋한 마음속에 제비집은 오래도록 기쁨과 위안을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철책을 넘어 고
향 땅 과 교동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제비가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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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제비집은 대룡시장과 가까우며 공영주차장에서 바로 만날 수 있어 접근하기 편리하다. 시장을 둘러보기 전에 교동
제비집에서 교동도의 과거와 제비에 담긴 의미를 먼저 알아본다면 대룡시장의 골목과 풍경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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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징적인 제비를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새들도 많은데….특히 제비집 이야기에는 부모와 자식, 형제의 얼굴
과 웃음소리가 그리고 박씨를 물어다 준 豊饒[풍요]가 들어 있다고 설명되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새집 모양이 아니라,
고향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가족과 고향의 이미지를 視覺化[시각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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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대로 교동도는 북한 접경 지역이라는 특성과 실향민의 삶이 깊게 연결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비집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귀환의 염원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게 하는 상징물로 여겨진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유랑자의 유년 시절엔 해마다 봄이 되면 처마에 집을 만들고 살면서 새끼를 기르고 있는 제비를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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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제비집 앞에는 제비집을 형상화한 모형도 있다. 예전엔 봄이 되면 처마에 집을 만들고 살고 있는 제비를 보는 건 흔
한 일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반도에서 살고 양쯔강 이남에서 겨울을 나는 제비는 굉장히 친숙한 새였는데 요즘은 시골
에서도 제비를 보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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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봄부터 가을까지 한반도에서 살고 양쯔강 이남에서 겨울을 나는 제비는 그만큼 친숙한 새였는데 요즘은 시골에서
도 제비를 보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교동도 역시 오래전부터 여느 시골처럼 집집마다 처마 아래 제비집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은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제비를 고향에서 찾아온 반가운 손님으
로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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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은 교동 제비집이라는 이름에도 담겼는데. 교동도에서 ‘제비’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오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쩌면 고향에 대한 그 기다림이 태평양을 건너는 제비의 운명과도 같은 것은 아닐는
지…. 참으로 안타까운 실향민들의 신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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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카페도 있는데 여기서 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옆의 대룡시장에 더 많은 옵션이 있으니 굳이 교동 제비
집에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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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사람들에겐 일종의 相利共生[상리공생] 관계인 여름 철새인 제비의 비행 속도는 평균 시속 50km, 먹이를 낚아챌
때 순간 70km 정도로 비행하는 제비는 한국을 비롯한 유라시아 고위도와 중위도, 북아메리카 일대에서 4~7월경 번식하
며, 번식하고, 암수가 새끼를 기른 뒤 가을에 남쪽 중국의 장강 이남 지역의 강남을 거쳐서 [대만 방향으로도 날아간다] 동
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대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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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같은 지역으로 돌아오는 귀소성이 강하고, 제비는 한배에 3~7개, 연 2회 번식 하는 경우도 있으며 모기. 파리. 딱정벌
레. 매미.하루살이. 잠자리 같은 곤충을 잡아 먹으며 사는 대표적인 여름 철새이다. 제비는 겨울을 나기 위해 강남으로 갔다
가 돌아오는 장거리 비행에 지처 절반 정도가 태평양 바다를 건너면서 바다에 빠져서 자연 선택으로 죽는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긴 여행에 있어서 생존 확률이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제비는 대체로 동남아시아. 대만.필리
핀.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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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대룡시장+ 교동 제비집 관광안내소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0-1
-구(지번) 주소: 교동면 대룡리 449
*전화: 032-934-1000
*영 업: 매일 10:00~18:00
*휴 무: 둘째,넷째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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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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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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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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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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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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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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