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2시 석궁사건 7회 공판 후의 소회
편의상 6회까지의 공판(전자)과 7회의 공판(후자)으로 대별해 보면서
1. 전자에서는 몸싸움으로 우발적이였으며(상해의 고의 없음),
상처는 0.5센티라고 하였으나 이에 대한 진단서 등이 제출되지 아니한 상태였rh
후자에서는 화살이 몸에 박혔었고(고의인지? 화살이 흘러 내리면서 인지?),
상처가 2센티라고 증언,
(피고측에서 박홍우 판사를 증인으로 출석시켜서 얻은 실익이 무엇일까?를
많이 생각해 보는 대목입니다)
6회까지의 공판에서는 몸싸움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여겨졌으나
7회 공판에서는 화살이 먼저 몸에 꼽혔고 그 뒤에 실랑이가 있은 것으로------------
2. 그 동안은 뭉툭한 화살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화살촉의 음성반응으로 피묻은 화살촉이 없었으나
7차에서 증인의 표현으로는 삼각형의 화살로 표현( 뭉툭한 화살= 삼각형 화살?)
3. 와이셔쓰에 피가 묻지 않았음에 큰 의문을 던집니다.
상식적으로 화살이 옷을 통과하였다면 와이셔쓰의 재질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화살이 통과한 지점에 피가 묻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이 아닙니다.
4.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런닝과 내의의 피의 흔적이 거의 원형이라는 점이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서 화살을 뽑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넘어졌다고 볼 때에
피의 응고시간과 몸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최소한 원형이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 있으며
피가 아래로 흐르는 게 상식이 아닐까요?
(8회공판에서는 의사가 증인으로 나오면 2센티의 상처로 증언할 것인가?)
5. 특히 증거수집과정에 의문을 던집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즉 언제 누가 어디서 그 옷들을 수거하였는가에 관한 언급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뭉툭한 화살=삼각형 화살?은 어디로 갔는가?
그 현장이 복잡한 곳도 아니고
머리카락이나 지문처럼 세미한 것을 수집하는 것도 아닌 데
그토록 허술?할 수가 있는가?
6. 현장을 8회 정도 탐색하였으며 석궁을 소지한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상처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습니다.
박홍우 증인의 마지막 말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반성의 정도에 따라 선처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그동안 오판을 낸 판사들이 다시는 오판을 해서
불행한 사법피해자들이 양산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촉구한다는 말로 대신해 봅니다.
7. 전도 유망했던 한 젊은 수학자가 시험출제문제오류를 지적했다가
왕따 당하고 해직 당하여
후진들을 위하여 왕성한 활동을 펴야 할 황금 같은 시기의 12여 년 간을
법정투쟁과 유리방황하는 생활로 전락하여
모멸과 무시와 냉대와 좌절과 굴욕과 치욕의 힘겨운 삶을 살면서
항소에 실날같은 재기의 소망을 갖었으나
그마저 좌절된 울분과 참담함을 입장 바꾸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그 처참한 심정과 삶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항소기각은 사형선고 그 자체였음을!
박홍우 판사님도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하셨다지만
그 순간은 아주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12년간 김명호 교수님의 삶은 살아 있으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와 같았을 것입니다.
왜? 김명호 교수님으로 하여금 석궁을 들게 만들었습니까?
8. 끝으로 석궁사건이 발단된 근본원인을
정상참작, 국민저항권 차원에서,
또 용서와 화해의 차원에서,
사법정의를 성큼 실현하는 차원에서,
김용호 판사님의 전향적인 판결과
대법원 김명호 교수 상고사건에서 복직의 길을 열어 주셔서
김명호 교수 개인은 물론 사법피해자들에게 희소식이 되게 해 주십시요!
속히 사법계의 변화를 자랑하게 해 주십시요!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사법피해자도 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인질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석방되어 고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오듯이
사법피해자들이 억울함에서 부터 해방되어
길거리 인생에서 속히 정상인의 삶으로 돌아오게 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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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은샘님 7차공판에서 뵙게 되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님의 글이 매서워 싸납게 생기셨는줄 알았는데 손이 참 따뜻하시더군요. 좋은글, 매서운글 많이 올려 주세요
하늘땅님! 저도 그동안의 궁금증이 풀렸구요 넘 반가웠습니다. 문제는 불법한 판검사들이 스스로 잘못을 시인, 변화해야 겠는데--------,"매서운글"?이라면 불법한 판검사들의 불의한 심령에 비수?가 되어야 할 텐데ㅡ-------- 이 정도로 저들의 심령이 수술 되겠습니까? 아뭏튼 님과 같은 분들의 활동에 큰 기대를 겁니다. 화이팅입니다.
공소장에서 상처의 크기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고 박홍우 증인이 상처가 2센티라고 분명 증언하였으나 지혈을 하지 아니하면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는 것이 일반입니다. 원형인 피의 흔적과 관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