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꼬리 없는 원숭이가 쌍둥이를 낳는데, 그중 하나에게는 엄청난 사랑을 쏟으며 정성껏 젖을 먹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외면하고 소홀히 다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건강하게 어른이 되는 쪽은 홀대받던 새끼였습니다.
정성껏 키운 원숭이는 어미 원숭이가 꽉 껴안는 바람에 젖가슴에 질식해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홀대받던 새끼만이 어른 원숭이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경쟁 사회에서 잘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품에만 안고 사는 부모의 모습에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신 적이 없었습니다. 운동회 때 가족이 모두 와서 응원하는데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비가 오면 어머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데, 저는 늘 비를 맞고 집에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때는 원망의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힘을 어렸을 때부터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만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상황만을 찾으면, 정작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각종 이유를 들여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족함 안에서 감사를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보다는 감사를,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더 한껏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아셨지요. 그래서 그들의 병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때 당연히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하겠지만, 사마리아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를 드렸을 뿐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열 사람이 치유 받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만 감사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전에도 자기의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감사의 마음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을까요? 믿음이 없으면 감사의 기도도 바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오노레 드 발자크).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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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