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러너의 서울 마라톤 완주기
지금은 서울 마라톤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동아 마라톤이었다.
세월이 이름을 바꾸었을 뿐, 그 길 위에 쌓인 이야기들은 그대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은 보스턴 마라톤. 올해로 130회,
그리고 동아 마라톤은 96회.세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마라톤이라 한다.
나는 이 대회에 2004년 처음 나갔다. 기록은 4시간 01분.
벌써 스무 해가 훌쩍 지났지만 그날 광화문에서의 떨림은 아직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올해 대회를 앞두고는 묘하게 불길한 징조들이 이어졌다.
궁평항 32km 대회에서는 21km쯤 지나자 갑자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오버 페이스
그리고 대구 마라톤에서는 27km 지점에서 결국 멈춰 섰다.
DNF.
그 짧은 세 글자가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달리는 사람에게 완주하지 못했다는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은 것이다.
일주일 전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고 나간 대회.
성주 마라톤에는 하프를 신청했다.
그러나 막상 출발선에 서니 겁이 났다. 그래서 10km만 뛰기로 했다.
어차피 짧은 거리니 속도라도 내보자 했지만 기록은커녕 49분에 간신히 완주.
그날 이후 일주일 동안 동아 마라톤이라는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점점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독한 감기 몸살까지 찾아왔다.
몸은 무겁고 기침은 끊이지 않았다.
대회 당일 새벽
나는 결국 DNS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친구 야생마에게 톡을 보냈다.
오늘은 못 나갈 것 같다고.
잠시 후 전화가 왔다.
“그냥 완주만 하자.
완주하면 티셔츠 한 장 더 준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입고 감기약을 삼켰다.
그리고 단체 버스 탑승장까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버스는 익숙한 광화문 네거리를 향해 달렸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전국의 마라톤 대회를 떠돌던 젊은 날들.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번호표를 달고 뛰던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나는 마라계에서 조용히 퇴장해야 하는 것일까.
버스는 어느새 대회장에 도착했고 수많은 러너들이
파도처럼 출발선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될 대로 되라. 나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달라진 마라톤 문화가 마치 낯선 나라처럼 느껴졌다.
세종대왕 동상 주변을 서성이다가 오늘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줄 친구
야생마를 만났다.
나는 D조.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출발 순서가 돌아왔다.
초청 선수도 엘리트 러너도 오늘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언제 출발하든 관심 없다.
다만 내가 언제 출발하느냐.
그것만이 중요했다.
마침내 7시 49분. 하도 자주 들어 이제는 조금 식상한
배동성 사회자의 멘트를 들으며 출발.
야생마가 노련하게 길을 열어 주었다.
좁은 주로에서도 나는 비교적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전략을 시도했다. 마라계 고수 운두령이 쓰던 ‘5000m 전법’.
첫 랩
4분 59초, 24분 54초.
기록은 좋다. 문제는 단 하나. 어디서 무너지느냐.
을지로를 지나 청계천 구간으로 들어갔다.
10km 통과
페이스 5분 02초.
이상하게도 오늘은
다리가 가볍다.
퍼질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사실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은 아니지만 오른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불빛 정도만 겨우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몰려 달리는 좁은 주로에서는 순간적으로
멈칫하는 일이 많다.
그때마다 몇 초씩 시간을 잃는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다. 내 옆에는
든든한 개 퍼메 야생마가 있으니까.
청계천을 돌아 종로의 넓은 도로로 나오자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이 마치 안개처럼 걷혀 갔다.
이제 마음이 말한다. 완주를 향해 가자.
하프 통과
1시간 46분 19초.
그 순간 슬며시 떠오르는 생각.
이러다 PB 갱신하는 것 아닌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봄바람처럼 마음속에 스며든다.
답십리
장한평
어린이대공원.
30km 통과
2시간 31분 50초.
정말 이러다 PB인가. 또다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른다.
예전 수도여자사범대 지금의 세종대 앞을 지나 우회전.
화양리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그때 갑자기 떠올랐다.
아차. 전철역 근처에서 우리 송마 조은숙 부회장이 꿀물을 준다 했는데
그걸 깜빡하고 지나쳤다. 야생마와 수다를 떨다 보니 그만.
그리고 송마 싱글렛 위에 바람막이를 입었으니 많은 러너들 사이에서
왜소한 체구의 나를 찾아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35km 지점 통과.
속도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페이스가
5분 20초까지 밀린다.
간신히 끌어올려
35km 통과
페이스 5분 14초
누적시간 2시간 58분.
핫 플레이스 성수동 지나고 건대입구 자양동.
이 거리를 달리며 나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 친구들이 떼를 지어 자원봉사를 하던 시절.
세월은 흘렀고 마라톤 무림의 인걸들은 소리 없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늙어버린 러너 둘이 히히덕거리며 이 거리를 달리고 있다.
잠실대교 오르막길.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다시 감기 기운이 올라오고 기침이 터진다.
잠실대교 남단 내리막길. 나는 말했다.
“여기까지 잘 왔네 친구야.
덕분에 여기까지 편하게 왔어.”
그 말을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걸 알아챈 친구는 말없이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PB는 다음에 하면 되지. 다 왔는데 힘내서 가자.”
그러나 이미 무뎌진 발바닥은 속도 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40km 통과
페이스 5분 22초
누적 3시간 24분 55초.
남은 거리
2.195km.
PB까지 남은 시간.
저번 기록이 36분 03초였으니까
36에서 24를 빼면
12분.
2.2km를
그 시간에 뛰기에는 발걸음이 무겁다. 순간 페이스도 6분을 넘어 7분대로 간다.
아깝다.
하지만 생각했다. 지독한 감기를 달고도 여기까지 왔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터덜터덜 걸었다.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
2km. 표지판이 앞에 네 이놈 하는 장승처럼 우뚝 서 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때 시계를 본 게 화근이었다.
대략 2km 남았다.
PB까지 남은 시간 9분 정도.
지금부터 4분 30초 페이스면 PB다.
잠깐 고민했다. 이미 털린 이 다리가 다시 달릴 수 있을까.
그리고
에이 한 번 해볼까. 해보자.
나는 잠실까지 입고 온 아식스 바람막이를 벗었다. 운동복 속에서 비비적거리며
떨어졌는가 배번호를 보니 한쪽만 붙어 있었다.
그냥 뛰어도 되는데 나는 끝내 그 모서리를 다시 매달았다.
그리고 바람막이를 둘둘 말아 중앙 분리대 위에 던져 놓았다.
이제
1초가 급하다.
아니
1초가
초초 급하다.
먼저 지나간 야생마에게 외쳤다.
“야! 있다 보자!”
쓩—3=3=3
나는 잔뜩 눌린 용수철이 팅기듯 튀어 나갔다.
마치 대륙간 탄도미사일처럼. 아니 쏜살같이.직선 주로를 내달려
우측으로 돌아드니 저 멀리 결승 아치가 보인다.
나는 그곳을 향해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쏟아 달렸다.
VO₂ Max 49형이라는 가공할 위력의 3단 로켓 점화. 3=3=3
연도에서 응원하던 갤러리들이 마치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한다.
결승선을 통과하며
시계 정지 버튼을 눌렀다.
3시간 35분 55초.
앗싸.
PB다.
그리고 약간 늦게 들어온
도반 야생마를 맞으며 말했다.
“어이 친구, 덕분에 PB 찍었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진행요원이 말했다.
“자, 얼른 나가세요.
방해 됩니다. 빨리 나가세요.”
아 이 사람아.
그래도 결승 아치가 보여야 멋있을것 아닌가.
우리는 사진을 찍고 웃으며 주로를 빠져나왔다.
간식을 받고, 메달을 받고, 짐을 찾았다.
그때부터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이빨이 덜덜거린다.
감기 기운이 다시 몰려왔다.
야구장 경계석에 앉아 신발 끈을 풀려는데 손이 곱아 풀리지 않는다.
나에게 환복이란 그냥 껴입는 것을 환복이라 한다.
동호회 버스를 찾아 잠실 운동장역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라.오늘은 게걸음이 아니다.
잘 뛴 날에만 느낄 수 있는 그 편안한 보행감.마치 작은 기적 같은 순간을 만끽하며. 버스에 올라
늦게 들어오는 크루원들을 기다리는데
다시 한기가 몰려왔다.
회장이 타준 따뜻한 카누 한 잔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리고
눈가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다만 아무 말 없이
선글라스를 조용히 고쳐 썼다.
11번째 동아 마라톤 완주기 – 끝 –
야생마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첫댓글 작로성 !
멋지고 장하다 .
동마 완주를 축하해
작로성 날 믿고 따라와줘서 달리는 내내 보람있었구 서로 힘이 되어주어 처음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갔다
그간 몸컨디션이 트라우마로 남아 한 걱정 했었지만 출발하며 오버않고 이븐 페이스가 네 컨디션을 회복하게 만들었나보다
정알 고생했구 나역시 기쁘다 빠른 회복 바란다
마라톤 완주 후 결과에 만족을 느끼는 당신은 진정한 고수이십니다.
야생마도 고생했네^^
대단한 할아버지 들
58이 아니였구만 대단한 할배로세 축하해
인간승리 세상부러울께없는 멋진삶이여
영감님 ~
대단 하십니다
나이와 기록은 거꾸로
가고 있구만~
축하하고 빨리 회복 하시게
칠순 나이에 대단한 승리다
이제 기록은 내려놓고 설렁설렁 즐달하셔
빠른회복 하구~~^^
수고했네!
나는 대구는 편하게 들어 왔는데
서울동마에서는 힘들었네.
참 잘했어요~~~ 대단하심^^
대단하심다 ~~~
친구님 PB축하하네
나는 대구대회 컨디션 생각으로 초반에 좀더 땡겼더만 27키로 지점
부터 무너져 겨우 대구대회 10초 댕겼네.
320무리였네
수고 많았네 .다음달 영주 오는가?
작노성 축하혀~
대단하네~
회춘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신작로 좋은가록으로 동마 완주 축하해^^
PB축하해.
몸관리 잘해서 가을에도 PB를 위하여 화이팅~
아직 살아있네 ~
이 나이에 대단한 역주의 생애 최고의 기록!
축하하네.
푹 쉬며 잘 먹고 몸조리 잘 하시게.
애썼다
잘먹고~
으르신!! 그저 최고이십니다. 수 많은 야화를 쓰고 계시는 그대가 영웅이십니다!!~~
개인 최고기록 달성 축하한다👍
야생마랑 에너지로 감기 기운에 마른행주 짜는 심정
B.P 마니 자랑하고 즐기고 또 뛰고 언제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