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위기’ 지방까지 다주택 규제해야 하나
다주택 일률 기준에 서울-지방 집값 양극화
투기는 막되 지방은 기준 합리화로 숨통을
요새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지만 지방 사람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지방 부동산 시장은 광역시 단위의 대단지 아파트가 아니고서야 초토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가 줄면서 대부분 집 사려는 수요가 적은 데다 매매가 끊긴 곳이 적지 않다. 특히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나 연립 등이라면 수년째 안 팔리는 주택들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지방 주택 1채와 서울 핵심 지역 주택 1채를 등가로 볼 것인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다주택자 규제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 등 3저 호황으로 집값이 크게 오른 1988년 처음 등장했지만, 200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0월 2주택 이상에는 양도소득세를 중과한 데에 이어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취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양도세가 한층 중과되면서 징벌적 과세를 했다. 다주택자가 집값을 폭등시키는 주범이라는 이념에서였다.
현재까지 다주택자 관련 규제는 22차례 바뀌면서 전문가조차 헷갈릴 정도로 복잡해졌다. 예컨대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는 가구가 보유한 주택을 모두 합산해서 계산하고, 종합부동산세는 개인이 보유한 주택 수를 기준으로 한다. 부모와 자녀가 각각 주택 1채씩 보유할 경우 취득세는 2주택, 종부세는 1주택으로 본다. 양도세는 생계를 달리하는 것을 입증하면 1주택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다주택자 중과세율 적용 배제 여부와 주택 수 제외 항목은 지역과 공시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 차례 손본 다주택 관련 규제의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사람들은 지방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하며 세금 폭탄을 맞느니, 똘똘한 1채 보유로 정리했다. 투기를 억누르려 했던 정책 효과는 달성 못 하고 서울 강남 집값은 폭등한 반면 ‘똘똘하지 못한’ 지방 주택 보유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다주택자들은 집값이 더 오를 걸로 보고 집을 처분하기보다는 자녀에게 증여하기를 택했다.
과거에 ‘별장 중과세’라는 게 있었다. 유신헌법 공포 직후인 1973년 별장은 사치재라는 취지에서 별장에는 취득세와 재산세를 중과했었다. 하지만 인구 소멸에 시달리는 일부 지자체가 ‘별장에 세금을 중과할 게 아니라 별장을 유치해서 지역의 활력을 높여야 하는 게 아니냐’며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올 들어서야 별장 중과세가 폐지됐다. 여가가 일상화되면서 별장이 더 이상 소수가 누리던 특권이 아니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개념 역시 시대 흐름을 반영해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토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국민 2명 중 1명(48.3%)꼴로 다주택자 기준을 ‘3주택 보유자’라고 봤다. ‘다주택자 기준을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56.7%가 그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지방 인구가 줄고 활력이 떨어지면서 꼭 정주하지 않아도 여행 통학 통근 등으로 해당 지역과 관계 맺는 관계인구나 생활인구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대도시 거주자가 주말에 쉬는 시골의 세컨드하우스든 지방에 떨어져 있는 회사 때문에 머물 집이든 또 다른 집이 필요할 수 있다. 모든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으로 볼 수도 없고 다주택자가 민간 임대 공급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주택 기준을 일률적으로 주택 수로만 따진다면 조세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투기는 철저히 차단해야겠지만 다주택자 개념을 해당 지역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주택 수로만 따지는 기계적인 잣대를 유지한다면 언제든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김유영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