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집값 통계 94차례 조작” 22명 수사 요청
감사원 “소득-고용 통계도 조작”
文청와대 정책실장 4명 수사 요청
靑수석-국토장관-통계청장 포함
文정부측 인사들 “감사 조작” 반발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부동산), 소득, 고용 등 주요 국가통계를 작성, 활용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한국부동산원, 통계청 등을 압박해 수치를 조작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감사원이 15일 밝혔다. 감사원은 집값 통계의 경우 문 대통령 취임 다음 달인 2017년 6월부터 퇴임 6개월 전인 2021년 11월까지 약 230회 발표된 집값 통계 가운데 집값 상승률을 실제 조사보다 낮추는 등 최소 94회 조작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관련 조작이 진행됐고 “자료와 증거로 입증된 가장 객관적인 개입 사례만 94회”라는 것. 감사원은 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4명(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과 홍장표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황덕순 전 대통령일자리수석비서관 등 경제 라인 핵심 참모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과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22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장하성 전 실장은 2017년 6월 국토부에 집값 변동률(상승률)을 외부에 공표하기 전 미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전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건 통계법 위반이다. 청와대와 국토부의 압박으로 정부 공식통계기관인 부동산원은 집값 변동률 보고를 기존 주 1회에서 주 3회로 늘렸다. 3일간 조사한 뒤 보고하는 ‘주중치’보다 7일간 조사한 뒤 즉시 보고하는 ‘속보치’, 7일간 조사한 뒤 다음 날 공표하는 ‘확정치’가 높게 보고되면 청와대·국토부는 ‘주중치’도 실제보다 낮게 조작하라고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런 조작은 후임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 실장 때까지 이어졌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특히 부동산 대책 발표 등 특정 시점에 이러한 조작이 집중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2019년 6월 김현미 국토부 장관 취임 2주년을 앞두고 국토부 직원은 부동산원에 “이대로 가면 저희 라인 다 죽는다. 지난주처럼 마이너스 변동률을 부탁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집값 변동률이 상승 조짐을 보이자 조작을 요구한 것. 그럼에도 서울 집값 매매 가격이 상승하자 국토부는 부동산원 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며 압박했다. 2019년 6월 이후엔 국토부가 부동산원 직원을 불러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고 했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덮기 위해 관련 국가 통계를 왜곡 조작했다며 2017년 2분기에 가계소득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0.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자 당시 통계청이 추산 방식을 바꿔 가계소득이 1% 증가한 것처럼 조작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핵심 관계자는 “공직사회에 만연한 조작, 거짓과 위선의 시대가 근절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문재인 정부 출신 고위 인사들이 참여한 정책포럼 ‘사의재’는 “이번 발표의 실체는 전 정부의 통계 조작이 아니라 현 정부의 감사 조작”이라고 반발했다.
“국토부,‘협조 않으면 조직-예산 날려버리겠다’며 부동산원 압박”
[‘文정부 통계조작’ 감사 결과]
감사원이 발표한 ‘文정부 통계 조작’
국토부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이번주도 집값 변동률 마이너스로”
“이대로 가면 저희 라인 다 죽습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이번 주도 (집값) 마이너스(―) 변동률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
문재인 정부 3년 차였던 2019년 6월. 2018년 9·13부동산대책 이후 떨어졌던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오를 기미를 보이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부 공식 집값 통계를 집계하는 한국부동산원에 이같이 말하며 통계 조작을 압박했다.
이는 부동산원이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발표하기 전 청와대(대통령비서실)와 국토부에 서울 아파트값이 보합이라고 보고한 데 따른 것. 당시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취임 2주년을 앞둔 데다 두 달 전 이미 청와대가 국토부에 ‘집값 상승률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상황이어서 하락세가 멈춰선 안 됐다.
결국 부동산원은 그주 서울 아파트값이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주간 변동률을 0.00%에서 ―0.01%로 임의로 바꾼 것. 보도자료 역시 “서울이 보합세로 전환,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상승세가 커지고 있다”에서 “서울은 32주 연속 하락세 지속, 강남 4구는 대체로 보합세”로 바꿔 배포했다.
● “경실련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
감사원이 15일 발표한 집값 통계 조작 감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통계 조작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가 집값 통계를 미리 받아보고 국토부에 지시하면 국토부는 부동산원을 압박해 최종 통계에 청와대 의도가 반영되게 하는 식이다. 이는 감사원이 당시 청와대와 국토부, 부동산원 관계자들의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등을 확인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급등 비판에 “통계가 과장됐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집값 급등기인 2020년 7월 국회에 출석한 김현미 장관은 “(문 정부 출범 후 3년간) 아파트값은 14%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는데, 이 통계가 바로 부동산원 통계였다. 당시 민간 통계인 KB 매매가격 지수 상승률은 25.6%에 이르러 정부 통계와의 괴리가 심하다는 지적이 높았는데, 감사원 조사 결과 그 배경엔 ‘통계 조작’이 있었던 셈이다. 특히 경실련이 정부 통계가 왜곡됐다고 비판하자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토부 간부에게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질책하기까지 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 시절(2017년 5월∼2022년 4월) KB부동산(59.1%)과 부동산원(25.8%)의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격차는 30%포인트 이상 난다. 직전 5년(2012년 5월∼2017년 4월)은 두 기관 통계 격차가 0.4%포인트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 부동산 대책 전후-총선 앞두고 압박 강도 높여
감사원은 집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통계 조작 지시가 굵직한 부동산 대책 발표 전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2018년 8월 24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으로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주중치)이 0.67%로 높아졌다고 보고받자 청와대는 확정치를 낮추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8월 26일 통개발 보류에 이어 당시 발표도 안 된 8·27대책을 통계에 반영해 달라고까지 요구했다.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제대로 조사하고 있는 거냐”고 질타했고, 부동산원은 서울 아파트값 확정치를 주중치보다 낮은 0.45%로 낮췄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국토부는 한동안 하락하던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2019년 6월 말부터 압박 강도를 높였다. 6월엔 “보합으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 지시가 오갔고, 7월엔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부동산원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8월에는 부동산원 원장에게 “부동산원이 국토부에 적극 협조하지 않으며 본업인 주택통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이 시기 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실제와 달리 소폭 상승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시장 과열이 계속되자 그해 12월 국토부는 15억 원 초과 아파트 대출 금지 등 강력한 규제를 담은 12·16대책을 내놓는다. 청와대는 “대책 효과가 언제쯤 나타날 것 같냐”며 국토부를 압박했고, 국토부는 “(높은 호가가 아닌) 실거래가만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2020년 7월에는 7·10대책 발표에도 서울 주중치(7월 10일)와 속보치(7월 13일)가 전주 변동률(0.11%)보다 높아진 0.12%로 나타나자 청와대는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뭐하는 거냐”며 국토부를 질책했다.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윗분들이 대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압박했다. 결국 부동산원은 집값 상승률을 축소했고, 국토부는 “제대로 조사한 게 맞냐”며 상승률을 더 줄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국가 승인 통계를 생산하는 기관은 독립성이 생명인데, 신뢰에 큰 타격이 생겼다”며 “통계가 신뢰를 잃으면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는 만큼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진우 기자, 신규진 기자, 정순구 기자, 송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