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경찰/검찰의 조사 과정을 "전부" 그리고 "의무적으로" 녹화하는 입법을 하면 좋겠다고 하니까, 한 변호사님께서 그것이 도입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간 회의적인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제가 해석한 그 분의) 요지는,
- 현재 법규상, 검찰이 조사를 하면 반드시 조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음 (형사소송법 제244조),
- 하지만, 검찰이 조사는 아니지만 티타임 면담을 하고, 그러한 티타임 면담의 조서를 작성하지 않음
- 티타임 면담도 조사니까 티타임 면담이라도 조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형소법 제244조 위반임
- 하지만, 법원이 그것을 봐 줌.
- 따라서, 조사 과정을 의무적으로 녹화하도록 법을 개정해도, 검찰이 타타임 면담은 조사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녹화를 안 할 것이고, 또 법원이 그것을 봐 줄 것이기 때문에, 영상 녹화 의무화 입법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라는 취지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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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1) "전부" 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일부 중대 범죄에 대해서 영상 녹화를 의무화하는 "조사의 가시화"가 시행되었지만, 처음에는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검찰이 피의자를 때리고 윽박지르고 자백연습을 시킨 다음에, 피의자가 자백하는 장면부터 녹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기초해서 피의자는 무기징역을 받았지요. 그래서, 그 후부터는 조사 과정의 "전부"를 녹화하도록 보충 입법되었습니다.
(2) 티타임 면담이라는 핑계로 "전부" 녹화하지 않으면, 검찰에 불리한 추정을 적용하도록 하는 입법이 수반되면 된다.
이것에 대해서 미국 각주별로 어떻게 불리한 추정을 적용하는지 소개한 적 있지만, (이것은 조서가 없는 미국이랑 우리나라랑 달라서 아래에서 또 말씀드리겠지만) 만약 한명숙 사건이나 이화영 사건처럼 티타임 면담이 녹화되지 않았다면, 조서를 무효처리하고, 재판(공판)에서 피고인/증인/참고인이 진술한 것을 진실로 간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검찰이 악착같이 조사든 티타임 면담이든 "전부" 녹화를 하겠지요.
(3) 미국이나 영국에는 "조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신문기사로 알게된 것은, 예컨대, 이재명 대표가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으면, 마지막 상당 시간은 이재명 대표 및 그 변호인이 검찰이 작성한 조서를 검토한 다음에 날인을 하면서 확인을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그 조서가 나중에 재판(공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그러한 조서가 없습니다.
예컨대, (검찰한테는 수사권이 없고, 경찰만 수사를 하는) 영국에서는 PACE법(POLICE AND CRIMINAL EVIDENCE ACT 1984)에 따라 조사 과정을 녹화하고, 그 녹음/녹화 ROTI 녹취록(Record of Taped Interview transcripts), ROVI(Record of Video Interview transcripts)이나 경찰관이 조사의 요점을 정리한 SDN(Short Descriptive Note)가 있는데, ROTI, ROVI, SDN에 대해 피의자가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할 필요가 없으며, 물론, 이것들이 공판에서 증거로 제출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조서가 아니라, 녹음/녹화 녹취록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연방/주로 나뉘고, 50개주마다 조금씩 다르니까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여튼 조서가 없고, 녹음/녹화가 보편화되어 있고, 조사하는 경찰/검찰이 조사 개요를 기술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피의자가 확인하거나 서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조서는 hearsay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로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공판에서 경찰/검찰이 상기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기초로 진술하는 경우, 그 진술로 입증을 하는 것이고, 그때의 보고서는 주의환기 역할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조사 과정 녹화가 안 되어 있고, 경찰/검찰의 보고서와 다르게 피고인/증인이 공판에서 진술을 하는 경우, 그 진술을 진실로 간주하는, 이른바 "검찰에 불리한 추정"을 적용하는 주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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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변호사님의 취지는, 수사기소분리와 공수처 실질화가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저도 그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며, 각론에 있어서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로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각론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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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김에 조금 더 얘기하면, 저로서는, 법원에 대한 시민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에 일본 오사카지검에서 플로피디스크 날짜 조작(증거조작)해서 검사 3명이 유죄판결 선고받았고, 검사총장 사퇴 등 고위직 다수가 징계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조작 재판에서, 오사카 지법 판사가 검찰이 제출한 조서 수십개를 날렸습니다. 그래서, 그 때 피의자(후생성 공무원)가 무죄가 되었지요.
우리나라 판사들은 검찰의 조서를 다 들어준다고 하는데, 일본의 판사는 검찰의 조서를 왜 날렸을까요?
저는 아마도, 일본에 국민심사제라고 총선때 대법원 판사를 선거로 파면시킬 수 있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미국에서 총선때 선거로 판사를 파면시킬 수 있는 retention 선거가 GHQ 시절때 일본에 도입된 제도인데, 아마, 그런 시민 통제가 있으니까, 일본 판사는 그나마 검찰의 증거조작 조서들을 날리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그런 retention 선거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한데, 개헌하지 않고서도, 판사의 임명 및 징계에 시민이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심원제나 시민판사도 좋은 것 같구요.
좀 있으면 이화영 결심이 있다고 하던데, 그때, 과연 어떤 판결이 나올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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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 일 있고, 가정도 있고, 운동도 해야 하고... 제 분야도 아닌데, 이런 글 쓰기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벽에다가 소리라도 질러라...라는 것을 페북에서 실천해 왔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분수에 맞게, 소소히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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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media/5a7ee72040f0b62305b83e74/PaceCodeC2014.pdf
https://www.moj.go.jp/content/000099292.pdf
https://www.met.police.uk/foi-ai/metropolitan-police/d/april-2022/record-of-taped-interview-roti-and-record-of-video-interview-rovi-transcripts/
https://www.moj.go.jp/content/00009844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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뎃글에 한 변호사(김필성변호사) 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