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간경향 1577호(5.6~12)에 실린 연금개혁 관련 기사를 봤다. 경향신문이 연금에서만큼은 재정론의 시각에 편향되어 있음은 익히 아는 바이지만 이 기사 역시 재정론에 편향되어 있다.
우선 기사는 "현 추세로라면 1990년생이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라고 기금소진을 기정사실로 그냥 쓰고 있다. 이건 재정론자들이 그동안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마치 미래를 증명한 것인양 기정사실화했고 경향신문이 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계산은 여러가지 불확실한 가정들을 전제로 하고 그런 불확실한 가정들이 그 모든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다 실현된다고 가정했을 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추정한 것이다. 우리가 일기예보에 대해 그것이 미래를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재정계산에 대해서도 그것으로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일어날 것으로 정해진 것처럼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10년 후나 20년 후의 일기예보를 보고서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일어날 것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처럼 웃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재정론자들은 자주 재정계산의 결과를 팩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걸 팩트라고 하면서 받아들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이상한 말이다. 그건 팩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공적연금의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고 말하면 일반국민들은 어느 나라 국민들이나 다 불안해 한다. 하지만 언론은 달라야 한다. 재정계산은 국민연금제도가 향후 70년 동안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가정하고 그 외 인구변수나 거시경제변수에 대한 미래전망치를 투입하여 실시한다. 70년이면 사람이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결혼해서 그들의 아이를 낳을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제도의 모습이 가만히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실시하는 것이고 그것도 예측도 아니고 그야말로 추정,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태에서의 추정이다.
이렇게 말하면 재정론자들은 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의 기법으로 재정계산을 한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외국은 우리처럼 기금소진에만 주목해서 나라가 망할듯이 떠들어대는 언론이 없다. 이런 언론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은 재정계산을 매년 실시하는데 내가 알기로도 벌써 몇년째 2030년대 중반에 기금소진이 추정되고 있어 몇년이 안 남았지만 미국의 제대로 된 언론 중에 기금소진으로 나라가 망할듯이 떠드는 언론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미국의 일반인들은 불안해하기도 하고 사회보장연금에 대해 기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의회에서 기금소진을 가지고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논란 중에 연준의 그린스펀 의장은 연금에서 중요한 것은 기금이 아니라 재원동원능력이며 생산성이라고 말했다. 이게 맞는 말이다. 우리가 연금이라고 하니까 노후에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개인에게나 해당하는 것이고 사회전체적으로는 퇴직한 사람들에게 GDP의 얼마를 배분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인구고령화는 GDP의 배분방식을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변화이지 기금을 쌓아둘 것을 요구하는 변화가 아니다.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노인을 개별 가정에서 그 자식들이 부양했다. 이런 개별부양방식은 자본주의가 출범하고도 한참 동안 계속 됐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넘어가면서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화하게 되면서 상황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본은 이윤추구를 위해 동작이 느린 고령노동자를 내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해서 2차 대전 후에 퇴직이 본격화하고 공적연금도 본격화했다. 퇴직과 공적연금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한다. 중요한 것은 자본은 고령노동자의 퇴직으로 이윤을 사유화하고 비용을 사회화했는데 그 비용사회화를 제도화한 것이 바로 공적연금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비용을 사회화한 바람에 기업이 노동자들의 공적연금 기여금의 일부를 부담하게 된 것이다.
퇴직이 보편화하기 전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부모세대를 각자의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부양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퇴직이 보편화하자 국가가 나서서 부모세대의 부양을 집합화하고 공영화했다. 이것이 공적연금이다. 이런 공적연금을 운영한지 이제 70-80년이 지나가면서 상황이 다시 변화하고 있다. 인구구조가 변화하고 노동시장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즉, 퇴직제도가 없을 때 개별적 부양이 있었고 퇴직이 보편화하자 집합적 부양이 제도화되었다. 이제 인구구조가 변화하면 어떤 부양방식이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일각에서 말하는 신연금(KDI가 대표적이다)은 인구구조가 변화하는 미래에 적절한 부양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개별적 부양방식을 상업화한 것이다(가입은 의무가입이지만). 전환비용 때문에도 불가능하지만 미래변화에 비추어서도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다. 인구구조가 변화하는 미래에 우리가 퇴직을 없앨 수는 없다. 기대여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퇴직은 더 필요하다. 따라서 미래에 노후부양은 집합적 성격을 더 강화해야 한다. 퇴직이 없을 때의 개별적 부양과 퇴직의 보편화 후 집합적 부양의 공통점은 둘 다 세대간 부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래에 노후소득보장은 세대간 부양만이 아니라 계층간 부양이 함께 가미되어야 한다. 계층간 부양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을 위한 방법 중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방법은 국고를 지원하는 것이다. 세금을 지원하면 그것은 예컨대 상층의 노인이 하층의 노인을 지원하는 것도 되며 상층의 경활인구가 하층의 노인을 지원하는 것도 될 수 있다. 재정론자들은 유럽국가들이 공적연금지출의 1/4을 국고로 지원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조세가 들어간다 아니다의 차원으로만 보는 것 같은데 필자가 보기에 국고지원을 하는 유럽은 아주 서서히 미래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하여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의 제도변화를 모색해야 하고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구상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