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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낙랑군의 정확한 위치를 알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평화 추천 0 조회 295 07.06.12 19:27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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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6.12 19:33

    첫댓글 이 글의 의도가 뭔지 궁금하군요. 지금까지의 유물,유적으로 봤을때 평양지역이 낙랑군의 치소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식민사관에 물들어서도 아니고 동북공정에 대응을 못해서도 아닌 순수한 학문적인 결과입니다. 님은 그럼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 절대 한반도에 낙랑군이 있으면 안되니까 유물이건 유적이건 다 무시하고 무조건 낙랑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으신건가요?

  • 07.06.15 00:51

    참으로 이상하군요. 낙랑군의 치소라는 낙랑토성이 과연 중국식 토성의 특징을 가지는가? 왜 40만을 다스리고 인구 통계치 까지 하는 행정력을 가졌다는 낙랑토성이 단순히 사서의 규모를 통해 남부 까지 지배력을 가지고 백제와 신라는 수세기동안 기지개도 제대로 펴지 못했다는 일제의 학설로 이어져 왔는데 어찌해서 남부에는 풍납토성이라는 대규모의 반대되는 토성의 인프라가 나타날까. 왜 낙랑토성은 수세기를 성공적으로 지배하면서 인프라는 남부보다 더 초라한걸까?. 무엇이 학문적 근거인가??? 일제의 조선 식민지의 획일적 일환과 그들 스스로의 논고와 의도속에서 진행된 연구와 그 연구 내용도 전체 고분

  • 07.06.15 00:52

    일부분에서 진행된 내용을 가지고 .. 일제 당시의 논고에서도 낙랑 토성의 허접한 인프라를 지적했고. 그리고 지금의 동북 공정을 보아도 과거의 역사적 해석과 그외의 여러 그들의 행태에 대해 왜 단순한 시각으로 그것을 학문적 확고한 근거라고 되뇌이기만 하는걸까??

  • 07.06.15 10:03

    낙랑토성이 낙랑25현 전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니 좀 어이없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합니다. 약간 길어질거 같아 답글로 달아놨으니 읽어보고 그런 착각은 그만 두길 바랍니다. 너무 어이가 없다보니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 지 좀 당황스럽기도 하군요. ㅡ.ㅡ;;

  • 07.06.16 14:07

    역사님. 기존의 주장에서 낙랑군 치소=낙랑토성 이라는 보장은 어디있는지요? 낙랑군 치소가 평양인것과 평양부근의 낙랑시대 토성이 발견된다고 해서 그 토성이 낙랑군 치소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 치소 성은 아직 발견이 안되었을 수도 있지 ㅇ낳나요? 그리고 소요자님께서도 역사님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 뒤에 어이가 없다 난감하다라는 상대방이 기분나빠할 표현을 사용했다면 제가 납득이 가겠습니다만,,

  • 작성자 07.06.12 19:42

    학문적인 결과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님이 그런 의도도 보셨다면 제가 두서없이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도 중국처럼 무슨 공정 하자고 하는 거 아닙니다. 여기 글들은 수준 높은글들 많이 있고 배울점도 많습니다. 생각나는 데로 적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편파적으로 쓴 것 같아서 부끄럽군요. 여러 학설이 있으니 어느 한쪽의 주장이 불변의 진리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학문적인 결과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님이 그런 의도도 보셨다면 제가 두서없이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도 중국처럼 무슨 공정 하자고 하는 거 아닙니다.

  • 작성자 07.06.12 19:44

    강력한 대응을 하자는 말이 학술적인 면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실증적이고 객곽적인 문헌과 유물.유적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한사군 문제가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왜곡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07.06.12 21:06

    현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하지만 이 낙랑군이 한나라가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낙랑군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낙랑군이 광무제 이후 어느 순간 후에 세력이 약해져서 한의 직접세력권에서 벗어난 듯 보입니다만..아직도 밝혀져야할게 많습니다.

  • 07.06.12 22:15

    낙랑군에 대한 설이야 분분하죠 뭐 유물에 근거한 주류적인 입장은 대동강지역에 전한시절부터 낙랑군이 있었다는건데 다른쪽에선 원래 평양지역엔 낙랑국이있었고 평양지역에 있는 낙랑군은 전한때부터가 아닌 후한광무제때 생겨난거라고 주장하시는분들도 있구요(저도 갠적으로 이설을 믿습니다만)또 어떤학자는 원래 평양지역에 있었다가 3중반경에 요서지역으로 밀려나서 4세기에 폐지되었다는 견해도 있더군요 그래서 요서지역에 낙랑에 대한 지명이나 기록이 남아있는거라고

  • 07.06.12 22:18

    재야사학자들의 의견은 절대로 용납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야사학자들은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팔아넘겼는지..

  • 작성자 07.06.12 23:05

    재야 사학자들의 의견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 아닌가요? 그들의 의견중 님 말씀처럼 극단적인 부분이 있다 해도 모두 용납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흑백논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 07.06.12 23:11

    재야학자의 의견의 절대로 용납해선 안된다.........역사가 뭔 수학공식도 아니고 역사에 여러 이견이 있을수 있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그리고 재야사학의 경계가 뭔지 궁금하군요 강단에있는 학자라도 자기들 맘에 안들면 다 재야사학이라고 폄하하던데--;;;;

  • 07.06.15 13:23

    재야 사학자라고 하여 반드시 강단사학자 보다 못한다는 법도 없으며 강단사학자라고 하여 반드시 식민사관에 물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재야든 강단사학자든 모두 우리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학자들입니다. 다만 서로 반목하여 학문적 논리가 아닌 선동적 역사의 정통성 논리로 상대를 폄허하는 풍토 즉 역사관이 다르다 하여 적으로 간주하는 풍토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두고 진위의 찬반 논란으로 10 여년을 학문적 토론으로 이끌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던 방법으로 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학문의 고증을 유도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보다 역사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 07.06.17 22:01

    강단사학의 문제는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무시하는게 문제고 사료에 의하는것만 문제고, 하지만 재야사학또한 엄청 황당한 주장을 하니 머라고 말해야 할지 ............... 그냥 재야든 강단이든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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