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화약무기의 등장 전법의 혁명을 이루다(13세기 ~ 14세기)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2. 27.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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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화약무기의 등장
전법의 혁명을 이루다(13세기 ~ 14세기)
요약 중세 후기 13, 14세기경 출현한 화약무기는 봉건주의 시대의 종식과 전법의 혁명을 가져왔다. 13세기에 중국인들은 폭죽놀이 용도로 사용되던 화약을 이용한 로켓을 개발해 최초로 군사적으로 사용했다. 화약무기는 17세기 말경까지 구식 무기와 혼용되었으며 그 후에는 전장을 지배했다.
화약무기, 무기발달사에 큰 획을 긋다
유럽에서 나온 초기 화포의 형태
고대 · 중세 무기를 살펴보면 석기 · 청동기 · 철기시대의 인류문화 변천과 함께 새로운 것들을 제조하면서 크게 발전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칼 · 창 · 방패 · 활 등 주무기는 보다 편리하게 사용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는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의 근력(筋力)을 활용했다는 차원에서 '근력무기'라고 부를 수 있다.
무기발달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것은 중세 후기 13,4세기경 출현한 화약무기였다. 그것은 봉건주의 시대의 종식과 전법의 혁명을 이룸으로써 전쟁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후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화약무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화약으로 인해 성곽에 의존하는 방어 전술에 기술적 후진 현상이 나타나다
중세의 봉건제도에 의한 전쟁의 특징이었던 기병 위주와 성곽 의존 방어 중심의 방법은 화약무기 이후 반대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전환은 신속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매우 서서히 이루어짐으로써 군대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전쟁에 적용하고 그 방법을 교리로 정착시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를 가리켜 흔히 '기술적 후진(technological lag) 현상'이라고 말한다.
폭죽놀이 용도로 사용되던 화약이 군사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다
원래 초석 · 유황 · 목탄을 혼합하여 화약을 처음으로 개발한 민족은 9세기경 중국인이었다. 서유럽에서 화약 만드는 공식을 처음으로 기록한 사람은 영국의 수도승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었다. 1260년 그는 초석 · 유황 · 목탄을 7:5:5의 비율로 혼합하면 화약이 된다고 밝혔다.
초기 화약은 주로 불을 붙이고 폭죽놀이 용도로 사용되다가, 13세기에 중국인들은 그것을 이용한 로켓을 개발하여 최초로 군사적으로 사용했다. 이 아이디어는 몽골 · 인도 ·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비교적 신속히 전해졌으나, 로켓 실험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화포와 소화기(小火器) 개발로 관심을 돌렸다.
서유럽에서 대포와 소화기가 널리 이용되다
14세기경 대포와 소화기는 서유럽에서 보다 널리 이용되었다. 화약무기의 발전은 화약 제조술과 더불어 용광로를 이용한 철 주조술의 진보가 뒷받침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출발했다.
화약
전장식 총포에 사용되는 흑색 화약.
초기의 소화기는 대체로 무겁고 부정확한데다 사정거리도 짧았으며, 발화가 더딜 뿐만 아니라 작동과 조준이 극도로 어려웠다.
화승총이 개발되어 유용한 무기로 발전되었으나 많은 한계를 보이다
그러다가 점화약과 불 심지를 이용하여 발화시키는 방법의 화승총(火繩銃)이 개발됨으로써 소화기는 상당히 유용한 무기로 발전, 표준적인 무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화승총은 나라별로 약간씩 형태와 성능의 차이가 있었으나 초기의 것은 대체로 길이 2m, 무게 15파운드 정도 되었으며, 약 200야드 이하의 사정거리를 3분에 두 발쯤 발사했다.
화승총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지만 근력무기에서 화약무기로 전환된 획기적인 변화의 상징.
화승총은 건조한 날씨에만 사용할 수 있고, 불 심지를 많이 사용해야 했다. 때문에 불 심지를 늘 보유함으로써 항상 위험이 따랐고, 연기 때문에 적에게 노출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 후 부싯돌과 황철광을 이용하여 불꽃을 일으키고 점화약을 발화시키는 방법이 고안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소화기, 16세기 중반까지 구식 창과 칼, 활을 넘어서지 못하다
실질적으로 초기 소화기는 그 시대의 창 · 석궁 · 장궁보다 덜 효과적이었다. 아직 보편적인 개인용 무기가 되기에는 비싸고 취약점이 많았다. 영국의 장궁과 비교할 때 16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소화기는 정확도 · 신속성 · 사정거리 · 중량과 조작의 용이성 등에 있어서 오히려 뒤떨어졌다. 더구나 백병전을 전개할 때는 유용하게 휘두르는 창이나 칼만 못했다. 그래서 당시 치명적인 무기는 새로 출현한 소화기가 아니라 구식 창과 칼, 그리고 활이었다.
소화기에 비해 간편하고 효과적인 대포가 개발되다
한편 초기 대포는 소화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이 간편하고 효과적인 편이었다. 최초의 대포는 1326년 영국인 월터 드 마일미트(Walter de Milemete)의 논문에 나타난 당시 '포트페르(pot-de-fer)'라고 부른 포였다. 항아리처럼 생긴 이 포는 긴 걸상에 올려놓고 사용했으며, 포탄은 금속 깃이 달린 대형 석궁식 화살 모양의 물건이었고, 포수는 불을 붙인 막대기를 점화 구멍 속에 밀어 넣어 대포를 발사했다.
중세의 성곽들이 대포 공격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다
14세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포였던 '봄바드(Bombard)'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포는 포신이 짧고, 주로 청동이나 철로 주조되었다. 약 300파운드가 넘는 큰 돌멩이나 납덩어리를 발사하기 위해 포신을 거의 채울 만큼 많은 화약을 사용했다. 포신이 긴 대포를 개발하고 돌멩이가 아닌 철포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대포는 위력을 발휘하고 공성전에서 매우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15세기에 중세의 성곽들은 대포 공격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봄바드
바위, 철구 등을 쏘았던 초기의 화약무기 봄바드.
화약무기가 제대로 활용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다
그러나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대포는 전장에서 큰 역할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워낙 무거워 전장까지 옮겨 설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륜마차 위나 토루 혹은 두꺼운 목제 포좌 위에 설치하더라도 적이 공격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으며, 또한 적의 급습을 받을 때 극도로 취약했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의 야전포가 나오는 데까지는 대포의 기동성과 발포속도 및 사정거리 · 정확도 등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에 대한 발전이 요구되었고, 이러한 문제는 17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와 같이 화약무기가 처음 등장하여 그것이 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17세기 말경까지 약 3,4세기 동안은 구식무기와 혼용했던 과도기였고, 그 후에야 비로소 화약무기가 전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약무기의 등장 - 전법의 혁명을 이루다(13세기 ~ 14세기) (세계전쟁사 다이제스트 100, 2010. 7. 16., 정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