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야마의 한국 성공신화에는 대중에 드러나지 않은 설계사가 존재한다. 일본 비정부기구·비영리조직 법인 Answer Asia 대표이자 뉴스재팬(newsjapan.co.kr)을 운영하는 박지일이 바로 그다.
박지일은 한국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수학, 일본 간사이외국어대학교 아시아학 수료·리츠메이칸APU대학원 아시아태평양학 졸업, 미국 머레이주립대학교 텔레비전·라디오학·국제학 졸업, 타이 탐마삿대학교 타이사회학 수료 경력자이며 이를 바탕으로 지정학의 일종인 아시아태평양학의 전문가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일본 법인 대표로 있으며 한국어 일본뉴스사이트를 운영하는 보기 드문 사례 때문에 2006년 6월 18일 일본신문 아사히·산케이에 동시 보도되기도 했다.
격투기와는 전혀 무관한 이러한 경력 탓에 국내에서 ‘추성훈 신화’의 설계사로 언급되자 주변에서도 사실임을 확인하는 질문이 쇄도했다. 작년 한국 인터넷에서 격투기 사이트를 시작으로 포털에도 광범위하게 유포된 ‘아키야마, 추성훈의 진실’, ‘아키야마 혹은 추성훈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에 박지일은 '추성훈 신화'의 설계사로 등장한다.
박지일은 일본 격투기, 미국 프로레슬링 관련 기고·언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현지식 필명으로 쓰고 있으며 이를 국내 언론이 한국인의 글인지 전혀 모르고 인용하기도 한다. 2007년 6월 5일 일본 격투지 가미프로(kamipro.com)에 기고한 것은 본명으로 외부에 공개된 드문 사례다.
[사진: 2006년 미국프로레슬링 WWE 슈퍼스타 보비 래슐리와 인터뷰를 하는 박지일 + 2007년 6월 5일 가미프로 134-135쪽. 당시 래슐리는 WWE 챔피언 등극 직전이었다. 래슐리가 UFC를 목표로 1년간 종합격투기 훈련을 하다가 WWE의 제의를 받아 프로레슬링에 데뷔한 것은 국내 격투기 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박지일은 래슐리 인터뷰를 통해 이를 최초로 미국·일본 언론에 현지 필명으로 보도했다. 한국에는 엑스포츠뉴스를 통한 국내 독점 인터뷰로 이를 알렸다.]
이 글은 박지일과 3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쓰였다. 인터뷰는 비공식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정리해도 A4 11장 분량에 달할 정도로 밀도가 높았으며 박지일은 학문과 스포츠를 넘나들며 능변을 쏟아냈다.
* ‘추성훈 신화 설계사 박지일이 밝히는 아키야마의 진실 1/9’에서 이어집니다.
3. 아키야마의 진실 - 일본유도 1/2
아키야마의 일본 귀화 후 치러진 아시아경기대회 -81kg 일본대표 선발전 우승자는 1996년 올림픽·1997년 세계선수권 -71kg 우승자 나카무라 겐조다. 비록 저 체급 출신이지만 메이저대회 2회 우승을 경험했고 아키야마는 허리부상으로 선발전에 결장했기에 일본에서도 나카무라의 아시아경기대회 출전을 당연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지는 다름 아닌 부산이었고 한국에서 ‘부산시청’ 소속이었던 아키야마에게 경기장은 전 직장이다. 일본유도협회는 이를 근거로 아키야마를 직권으로 아시아경기대회 대표로 선정했다. 아키야마가 재일한국인으로 출생하지 않았다면, 귀화하여 한국계 일본인이 되지 않았다면 한일 양국 모두에서 모두 ‘특혜’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02년 10월 1일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아키야마는 안동진에게 2-1 판정승을 거두고 우승한다. 같은 해 2월 13일 파리국제대회에서 안동진을 우세승으로 꺾고 정상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두 선수의 상대전적은 2승 2패로 팽팽했다.
박지일은 결승이 끝나고 아키야마가 이긴 경기였다고 봤지만, 주변의 한국·일본 유도관계자는 입을 모아 안동진의 우세를 말했다. 업무 대상과는 개인적인 친분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신조를 지닌 박지일은 어느덧 자신이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았고 한국인의 상대적인 피해를 목격하자 아키야마를 돕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당시 결승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조국을 등진 추성훈에게 금메달을 넘겨줄 수 없다는 각오로 무장한 안동진은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지만, 번번이 무위로 끝났다. 중반 서로 방어 위주로 전환하면서 불꽃 튀던 대결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결국 둘 다 소극적인 공격에 대한 주의를 받았다.
이후 안동진은 공격을 재개했지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역습을 시도하는 추성훈에게 기술을 써 볼 기회도 잡지 못한 채 5분 경기를 마쳤다. 심판 판정에 기대를 걸었지만, 예상과 달리 심판은 2-1로 추성훈의 우승을 선언했다. 전날 남자 100㎏급의 장성호(마사회)가 '숙적' 스즈키 게이지(일본)와 팽팽한 경기를 펼치고도 판정패했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두 선수 모두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적극성에서 앞선 것은 분명히 안동진이었다. 중반 이전 공세의 안동진-수세의 아키야마 구도는 확연했고 중반 이후 소극적인 경기로 둘 다 주의를 받았지만 그나마 공격에 대한 의지를 보인 쪽은 역시 아키야마가 아녔다.
그럼에도, 판정으로 웃은 것은 유도 종주국 일본대표 아키야마였다. 한국에서 차별받았음을 공언한 아키먀아가 일본 대표로 한국 선수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꺾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키야마에 대한 국내 언론의 ‘조국을 등진’이라는 수식은 당시 한국 유도계의 당연한 감정이었다. 아키야마는 재일한국인으로 올림픽 대표를 꿈꾼다며 한국에 와서 수시로 ‘일본 귀화’를 거론한 덕분에 특혜로 2001년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했다. 한국 유도에서 특정대학 출신의 이점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아키야마는 ‘피해’를 받아 일본으로 귀화한 것이 아녔다.
(국내 유도계 인사의 비공식 전언에 따르면 현재 안동진은 양지와는 거리가 먼 - 굳이 말하면 음지에서 - 생활을 하고 있다. 아시아경기대회 우승을 발판으로 한일 양국에서 부를 얻은 아키야마와 너무도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