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이 무려 꼬리가 99개나 달렸더군요..
저도 간략하게 조선에 대해 한말씀 올리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네임리스원님의 경우 조선이 약했다고 하시는데 절대 약한것은 아니라고봅니다.
율곡이이 선생께서 10만양병설을 주장하셨다 무시 당하셨지만..
하지만 여기서 잘 짚고 넘어가면.
일본군 선발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선발대 약 1만 8000명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제2군 2만 2000명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제3군 1만 1000명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도토 다카토라[藤堂高虎] 등의 9,000여 수군(水軍)
합계 6만여 정도..
이 임란 발발당시 조선군의 병력이고
규슈와 일본내의 총병력을 따지면 20만에 이르럿다고 합니다.
그런데 율곡 선생께서는 왜 10만이면 왜적을 능히 무찌를수 있었다고 할까요..
두배에 가까운 대군인데 말이죠...
저의 짧은 식견보다...율곡선생님의 식견으로 보아서는 10만이면 일본군
20만이 침입해와도 능히 막을수 잇다고 판단하신겁니다.
즉 조선군의 전투력은 다른 주변국가에 비해서 그리 뒤떨어 지지 않다는걸
확인할수 있는 대목 입니다.
사실 조선군이 초기 일본군에게 고전한것역시 전술상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활과 험한 산지에 잘 쌓아진 견고한 산성을 바탕으로 농성하는것이
조선군의 주 장기인데.... 신립장군은 배수에 진을 치고 기병전술로
맞선것이지요... 일본의 야리와 일본도..그리고 신무기 조총을
전혀 모른체... 곧이 곧대로의 전략대로 싸우는 바람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 진것입니다.
조선의 기병은 언월도...활...갑주로 무장했는데 이들기병은 물론 뛰어난
기병들이지만... 이미 일본은 대기병전술에 능한데다가 무기체계 자체도
접근전을 벌이면 매우 불리하지요..
만일 조선군이 주요산성을 거점으로 농성을 벌였다면 서울까지의 진격시간을
매우 지연시킬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명의 참전이전에도 조선군은 반격을 개시합니다.
의병이 도처에 봉기한데다 일본군과의 싸움에 대한 요령이 생기면서
전세를 역전시켜 나갑니다.
정유재란떄의 병력은 무려 14만에 이르렀지만.. 일본은 경상도 이북으로
올라 오질 못합니다. 일본도 혼신을 다하여 경상도 지방에 왜성을 축조한것도
아무리 썩어빠진 나라의군대라고는 하나 조선군을 절대 얕잡아 볼수 없기때문
이었지요.
그리고
정치와 조정이 썩었다 할지라도
결코 조선의 의병들은 약하지 않았습니다.
일도류니 이도류니... 저마다 전쟁기술을 갈고 닦아온 사무라이들도
자손과 땅과...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선 의병들을 쉬이 막지 못했던 것이죠..
뭐 쓰다 보니 주저리 주저리 되었는데..ㅡㅡ;;;
암튼 우리 한민족은 옆나라 일본과 중국에 비해 절대 열등한 민족이 아닙니다.
동양인 치고는 상당히 체구도 큰편이며 강건한 기상을 가진 민족입니다.
지배하기 어려운 민족이지요... 일제강점기에서도 끊임없는 독립운동과
의병활동... 통치방식을 세번이나 바꿀만큼 우리민족을 지배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는 거지요...
제가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은것은 조선을 망친것은 사림입니다.
무능한 왕이 혈세를 탕진하며 주색잡기에 빠져있을때도
그왕이 죽으면 그 이유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어린백성들...
그런왕을 보필하기는 커녕 무능한 왕을 더욱무능하게 만들고
서원을 세워 각가지 폐단을 자행해서 농민들을 착취한 그들..
고려시대 전성을 이루던 무역과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되던 예술품 공업과
활판인쇄 사업.. 모든걸 도태되게 만든 집단입니다.
자신들의 세력유지와 권력을 챙기기에 급급해서 왕을 바보로 만들고
농민을 착취한 결과 그들은 자신의 허수아비왕을 부리며 500년동안
그 세력을 유지해올수 잇었던 것이구요...
우리의 한글... 역법서 칠정산... 등등..우수한 과학기술서의 편찬도 모두
조선 초기 이루어진겁니다.. 아마도 이 훈구세력이 집권했었다면
적어도 정치에 어느정도 참여라도 가능했더라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조선의 방어적 자세와 같은 질문은 적어도 국내사정이 해외로의 진출이나
팽창이 가능한 여건이엇다면 모르지만....
조선시대 사림이 집권하고 나서 부터는 이러한 여건 자체가 마련이 안되었기
때문에 저는 이 논재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 없이 결론을 내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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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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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1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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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봐서 지형에 의지한 방어전이 가장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평균정도의 실력과 사기는 갖춘 군대여야한다는 전제하에서입니다. 제 아무리 지형의 이점이 좋아도 사기가 바닥인데다가 훈련도 안된 군대에게는 다 필요없죠.
기왕에..히데요시의 의도중에는..사무라이보다는 일본 서부지역의 경제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더 강하지 않았나 싶네요. 무사층을 치려면..도쿠가와가 일번인데...하카타나 사카이같은 반독립적인 상업도시들을 그들의 주고객인 서부 무사층을 붕괴시킴으로서 주저앉히려고 한 의도가 아닐까하네요.
쩝 신립 장군은 명장이었지만 고지식했다고 하면 돌맞을지도.......^^! 역사를 보면 변변찮은 병력으로는 패한 장수가 제대로 된 병력을 통솔해서 승리를 거둔 예가 많지요. 하물며 신립 같은 맹장, 용장이 늙고 병든 오합지졸에......
기습으로 사기까지 떨어진 병사들을 통솔해서 왜군을 이겼다면 그건 기적이나 다를 바 없겠죠. 무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검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거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검을 버릴 수도 있고
더 큰 국익을 위해서는 한번의 후퇴도 명예롭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계백의 배수진은.......전라도 평야 지대에서 더이상 해볼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지만 임란 당시 신립은 시간과 공간을 활용한 전술로 충분히 왜군을 격퇴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조선의 곳곳이 기습과 게릴라전에 유리한 산악지형이고 보급의 유리함에, 시간이 갈수록 조선군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전황이었다면........한 때의 분함을 참고 냉정했다면 이순신에 버금가는 국장으로 광화문에 동상이 새워졌을 겁니다.
쩝 로마는 패장에게 전혀 죄를 묻지 않았고 카르타고는 패장에게 극형을 가했습니다. 진정한 명예와 용기는 자신의 비굴함을 극복해내는 데서 찾을 수가 있는 법입니다. 물론 그럴 수가 없는 조선의 문화가 문제겠지만요.......신립 장군은 너무 아까운 인물입니다. T T
삼국지에서 하비공방전에서 패한 관우가 옥새하려 하자 장료가 관우를 설득하기 위한 세가지 명분을 주죠. 첫째, 유,관,장 3형제가 도원결의에서 한날 한시에 죽기로 한 맹세를 어기는 일이며, 둘째, 유예주(유비)가 신뢰로 맡긴 두 부인과 가솔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셋째, 대장부로서 한 때의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없애는 일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ㅋㅋ 선조 방통으로 왕위에 올라 왕실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무능함으로 수많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니 그 쥐를 어찌 갚으리오....
신립장군패전이후에도 수만명에 달하는 조선군이 일본군에 대항해 반격에 나섭니다. 이광이 이끄는 근왕병 오만(엄청난 오합지졸이지만..)이 광교산에서 일본군에 대패했고 임진강방어선에서도 조선군1만5천이 동원되지요.
근왕병이라 휴~~ 칼잡을줄도 모르는.......
저 근왕병이라는건 친위대나 호위대 그런게 아닙니다 -_- "근왕"의 이름으로 소집된(즉 긁어모은) 병력이라는 의미죠. 당연히 질은...네임리스님이 한숨 쉴만한 수준이죠.
천민에서 양반으로 올려준다니까.. 농사나 짓던 순박한 농부나 노비들을 모아서... 뭘어쩌자는 건지.....
누가언제 천민에서 양반으로 올려준다고 병력을 모집했습니까? 그냥 삼도의 병사?(농민이라고 부르는게 낫지만.)를 동원한 겁니다. 또한 조선에서는 보통백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지고있으니 전란중에 동원하는 당연한 것이지요.
또 삼들고기병잡이님의 말씀처럼 근왕병이란 근위대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이건 저희학교 사학과 교수가 한말인데..... 글고 어차피 그 정도의 포상을 걸지 않고서 누가 가서 싸우는지....
광교산전투에서 5만에 가까운 조선군이 양반직위 준다고 모았다구요? 제가 알기론 그런증거는 전혀 없는걸로 알고있는데요. 노비는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았지만 양민은 당연히 병역의 의무가 있었지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병력을 모으는 과정에서 면천(양반까지는 아니고..천민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정도)도 언급했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네요. 양민만으로는 수적으로 부족했을테고..그렇다고 공식적으로 확약해준건 아니고 구두로 슬쩍 언급한 수준이 아닐까하네요. "~ 수도 있을 것이니라~" 라고 -_
신립장군의 초반 배수진은 별루 좋지 않을것 같은데... 아무리 우리군이 뒤떨어 지지 않았다고 해도 조총에는 이기지 못할것 같습니다. 또 우리군이 진것은 부패정권으로 변방에 군사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백성들의 민심도 결코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농성의 펼치며 지구력으로 버티어도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은
성은 쉽사리 함락될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저의 민족을 우습게 보는것 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혼을 존경하는 사람에 한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