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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임진왜란에 대해...
카탁프락트 추천 0 조회 347 04.01.12 23:44 댓글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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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4.01.14 01:39

    여러모로 봐서 지형에 의지한 방어전이 가장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평균정도의 실력과 사기는 갖춘 군대여야한다는 전제하에서입니다. 제 아무리 지형의 이점이 좋아도 사기가 바닥인데다가 훈련도 안된 군대에게는 다 필요없죠.

  • 04.01.14 01:46

    기왕에..히데요시의 의도중에는..사무라이보다는 일본 서부지역의 경제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더 강하지 않았나 싶네요. 무사층을 치려면..도쿠가와가 일번인데...하카타나 사카이같은 반독립적인 상업도시들을 그들의 주고객인 서부 무사층을 붕괴시킴으로서 주저앉히려고 한 의도가 아닐까하네요.

  • 04.01.14 08:35

    쩝 신립 장군은 명장이었지만 고지식했다고 하면 돌맞을지도.......^^! 역사를 보면 변변찮은 병력으로는 패한 장수가 제대로 된 병력을 통솔해서 승리를 거둔 예가 많지요. 하물며 신립 같은 맹장, 용장이 늙고 병든 오합지졸에......

  • 04.01.14 08:37

    기습으로 사기까지 떨어진 병사들을 통솔해서 왜군을 이겼다면 그건 기적이나 다를 바 없겠죠. 무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검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거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검을 버릴 수도 있고

  • 04.01.14 08:40

    더 큰 국익을 위해서는 한번의 후퇴도 명예롭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계백의 배수진은.......전라도 평야 지대에서 더이상 해볼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지만 임란 당시 신립은 시간과 공간을 활용한 전술로 충분히 왜군을 격퇴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 04.01.14 08:44

    조선의 곳곳이 기습과 게릴라전에 유리한 산악지형이고 보급의 유리함에, 시간이 갈수록 조선군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전황이었다면........한 때의 분함을 참고 냉정했다면 이순신에 버금가는 국장으로 광화문에 동상이 새워졌을 겁니다.

  • 04.01.14 08:48

    쩝 로마는 패장에게 전혀 죄를 묻지 않았고 카르타고는 패장에게 극형을 가했습니다. 진정한 명예와 용기는 자신의 비굴함을 극복해내는 데서 찾을 수가 있는 법입니다. 물론 그럴 수가 없는 조선의 문화가 문제겠지만요.......신립 장군은 너무 아까운 인물입니다. T T

  • 04.01.14 08:55

    삼국지에서 하비공방전에서 패한 관우가 옥새하려 하자 장료가 관우를 설득하기 위한 세가지 명분을 주죠. 첫째, 유,관,장 3형제가 도원결의에서 한날 한시에 죽기로 한 맹세를 어기는 일이며, 둘째, 유예주(유비)가 신뢰로 맡긴 두 부인과 가솔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

  • 04.01.14 08:59

    셋째, 대장부로서 한 때의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없애는 일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 04.01.14 11:34

    ㅋㅋ 선조 방통으로 왕위에 올라 왕실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무능함으로 수많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니 그 쥐를 어찌 갚으리오....

  • 04.01.14 19:38

    신립장군패전이후에도 수만명에 달하는 조선군이 일본군에 대항해 반격에 나섭니다. 이광이 이끄는 근왕병 오만(엄청난 오합지졸이지만..)이 광교산에서 일본군에 대패했고 임진강방어선에서도 조선군1만5천이 동원되지요.

  • 04.01.14 21:54

    근왕병이라 휴~~ 칼잡을줄도 모르는.......

  • 04.01.15 01:16

    저 근왕병이라는건 친위대나 호위대 그런게 아닙니다 -_- "근왕"의 이름으로 소집된(즉 긁어모은) 병력이라는 의미죠. 당연히 질은...네임리스님이 한숨 쉴만한 수준이죠.

  • 04.01.15 11:21

    천민에서 양반으로 올려준다니까.. 농사나 짓던 순박한 농부나 노비들을 모아서... 뭘어쩌자는 건지.....

  • 04.01.15 13:48

    누가언제 천민에서 양반으로 올려준다고 병력을 모집했습니까? 그냥 삼도의 병사?(농민이라고 부르는게 낫지만.)를 동원한 겁니다. 또한 조선에서는 보통백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지고있으니 전란중에 동원하는 당연한 것이지요.

  • 04.01.15 13:49

    또 삼들고기병잡이님의 말씀처럼 근왕병이란 근위대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 04.01.15 13:52

    이건 저희학교 사학과 교수가 한말인데..... 글고 어차피 그 정도의 포상을 걸지 않고서 누가 가서 싸우는지....

  • 04.01.15 18:09

    광교산전투에서 5만에 가까운 조선군이 양반직위 준다고 모았다구요? 제가 알기론 그런증거는 전혀 없는걸로 알고있는데요. 노비는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았지만 양민은 당연히 병역의 의무가 있었지요.

  • 04.01.15 20:22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병력을 모으는 과정에서 면천(양반까지는 아니고..천민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정도)도 언급했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네요. 양민만으로는 수적으로 부족했을테고..그렇다고 공식적으로 확약해준건 아니고 구두로 슬쩍 언급한 수준이 아닐까하네요. "~ 수도 있을 것이니라~" 라고 -_

  • 04.01.25 15:00

    신립장군의 초반 배수진은 별루 좋지 않을것 같은데... 아무리 우리군이 뒤떨어 지지 않았다고 해도 조총에는 이기지 못할것 같습니다. 또 우리군이 진것은 부패정권으로 변방에 군사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백성들의 민심도 결코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농성의 펼치며 지구력으로 버티어도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은

  • 04.01.25 15:01

    성은 쉽사리 함락될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저의 민족을 우습게 보는것 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혼을 존경하는 사람에 한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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