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을 맞아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 전문 하단 첨부)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을 주제로 발표한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에서 염 추기경은 한반도의 평화와 주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남북한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서로 화해하고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지향해야 할 것”이라며 “정치 지도자들은 한반도 주변의 평화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고의 임무를 한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또 “평화가 파괴되고 있는 현장에서는 무고하고 약한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어떤 처지에서든지 평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 탈출한 난민 등 우리 주변에는 소외되어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들의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가톨릭교회는 매년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기념한다. 초대 교회부터 지켜온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 생활을 마친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불려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이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8월 15일은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다. 이에 한국 천주교회는 광복을 성모 마리아의 선물로 여기고 광복의 기쁨에 동참하며, 민족의 해방과 세계 평화의 회복에 감사하는 미사를 전국 성당에서 집전한다.
오늘날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광복절도 함께 기념하고 있다. 명동대성당은 매년 8월 15일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제대 옆 기둥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한다.
▣ 2018년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전문(全文)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내리시길 기원합니다. 또한 북녘의 동포들과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재해, 빈곤 등 갖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은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올려지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실천한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성실하게 따라 걸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언제나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믿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우리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 목표가 됩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삶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도 성모님처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분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라고 칭송을 하며 ‘교회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로 존경을 드립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포근함과 한없는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성모님도 우리 신앙인들의 어머니가 되시어 하느님께 전구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신앙의 자녀들을 돌보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가장 원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광복절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남북의 분단과 6.25전쟁으로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남북한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도 가장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다행히 최근,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큰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화해를 통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이사 2,4)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서로 화해하고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정치 지도자들은 한반도 주변의 평화와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고의 임무를 한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평화가 파괴되고 있는 현장에서는 무고하고 약한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평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인간적인 욕심이나 폭력과 전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인간이 겪는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과 각자의 고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나의 적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최대한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특별히 따듯한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마음을 닮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시는 분입니다. 어머니라면 무릇 자식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자녀에게 더 마음을 쓰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제4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 이웃에 대한 무관심들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 탈출한 난민 등 우리 주변에는 소외되어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의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도 어머니의 심정으로 다른 이들을 품어 안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며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는 성모님과 함께할 때 가장 큰 힘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지난 역사에서 분명하게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이 미사 중에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 마리아의 전구에 힘입어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우리 신앙인들의 위로자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 땅에 평화가 함께하기를 하느님께 전구해주소서. 아멘.”
2018년 8월 1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