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雉岳山) 자락의 원주시(原州市)
상원사(上院寺) / 치악산(雉岳山) 정상 미륵불탑 / 법천사 묘탑비(국보 제59호) / 원주시 관내도
<원주시(原州市)의 행정구역(行政區域)>
원주시는 1995년도 시군(市郡)통합으로 도농(都農) 통합시가 되었는데 1읍 8면 16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내도에서 보는 것처럼 문막읍(文幕邑), 소초면(所草面), 호저면(好楮面), 지정면(地正面), 부론면(富論面), 귀래면(貴來面), 흥업면(興業面), 판부면(板富面), 신림면(神林面)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치상으로 보면 강원도 영서지방의 중심지일뿐더러 우리나라 지도에서 거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원주시는 인구가 35만 5천 명 정도로 강원도의 시군(市郡) 중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이다.
<원주시(原州市)의 자연환경(自然環境)>
원주시는 우리나라 교통의 요지로 꼽히는 곳으로, 영동(嶺東)고속도로, 중앙(中央)고속도로, 광주원주(光州-原州)고속도로가 교차되는 곳이며 동쪽에 둘러서있는 치악산(雉嶽山) 줄기가 기막힌 경관을 자랑한다.
치악산은 횡성군과 영월군의 경계에 걸쳐있는 산인데 서울에서 가깝다보니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항상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대부분의 사찰이나 봉우리들은 원주시에 속해있다.
치악산(雉嶽山)은 비로봉(飛蘆峰, 1,288m), 향로봉(香爐峰, 1,048m), 남대봉(南臺峰, 1,182m) 등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가깝게 모여 둘러서 있는 형국인데 계절에 따라 주변 경관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산과 사찰(寺刹)들에 얽힌 전설들이 한도 끝도 없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신라 시대에는 소경(小京)을 두었고, 고려시대에는 도호부(都護部),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감영(監營)이 있었던 곳인데 춘천으로 도청소재재가 옮겨가며 밀려났다고 해야 되나?
치악산(雉岳山)의 사찰(寺刹)들
치악산은 산자락마다 수많은 사찰들이 있는데 치악산의 명칭이 유래된 상원사(上院寺)를 비롯하여, 구룡사(龜龍寺), 석경사(石鏡寺), 국형사(國亨寺), 관음사(觀音寺), 성문사(星門寺), 입석사(立石寺)가 있다. 그리고 절터만 남아있는 법천사(法泉寺), 거돈사(居頓寺), 흥법사(興法寺) 등 사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우리나라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불교의 성지(聖地) 중 한 곳이 이곳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이다.
치악산(雉嶽山) 명칭의 유래(由來)
까마득한 옛날, 활을 잘 쏘는 한 젊은이가 꿈을 이루고자 한양(漢陽)으로 가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곳 적악산(赤岳山-치악산의 옛 이름) 자락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꿩 두 마리를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 하는 중이었다. 젊은이는 재빨리 화살을 날려 구렁이를 죽여 버리자 꿩 두 마리는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저녁이 되어 하룻밤 묵을 곳을 찾다가 마침 작은 암자를 발견하여 다가갔더니 예쁜 아가씨나 나오는데 하룻밤 묵어가겠다고 하자 바로 건너편 방에서 자고가라고 허락을 한다. 감지덕지 방에 들어가 피곤하여 눕자마자 곧바로 설핏 잠이 들려는데 갑자기 숨이 막혀서 눈을 떠보니 아까 그 아가씨가 구렁이로 바뀌어 젊은이의 몸을 칭칭 감고 혀를 날름거리며 젊은이를 쳐다본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아까 네놈이 우리 남편을 활로 쏘아 죽였으니 나는 복수를 위해 너를 잡아먹겠다.’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뎅~~’하고 종이 울렸다. 구렁이가 깜짝 놀라 멈칫거리는데 또 다시 ‘뎅~~’....
젊은이를 감고 있던 구렁이는 스르르 풀고는 사라져버렸다. 구렁이는 종소리를 들으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일설로는 종소리를 듣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도 하고...)
날이 밝자 젊은이는 종소리가 나던 곳으로 다가가 보니 꿩 두 마리가 머리가 터져 종 밑에 떨어져 죽어있었다. 꿩의 보은(報恩)에 감격한 젊은이는 서울 가는 것을 그만두고 그곳에 머물며 꿩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 이후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이라 부르던 산 이름을 꿩 치(雉)를 넣어 치악산(雉岳山)으로 부르게 되었고 그 암자(庵子)가 지금의 상원사(上院寺)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