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8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루카 18,1-8
믿음이 있는지 알아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
오늘 복음도 예수님의 ‘믿음’에 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선 ‘주님의 종’이 됩니다. 계속 주님의 뜻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엔 주님의 종이 된 것에 ‘감사’해 합니다.
사탄의 종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그리고 오늘은 ‘꾸준히 기도’한다고 마무리하십니다.
기도는 무언가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꾸준히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물건을 잃어버려 찾을 때 조금 찾다가 포기한다면 그 물건이 거기에 있을 것이란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과부와 재판관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재판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과부가 올바른 판결을 내려달라고 끊임없이 청하자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그 청을 들어준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신 다음에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바쳐야 한다고 하시며
밤에 빵 세 덩어리를 얻으려고 친구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린다는 비유입니다.
세상의 것을 달라고 끊임없이 청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것들도 들어주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를 통해 청하게 되어있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한다면 반드시 그 사람에겐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는지 알아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규칙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른 것처럼, 기도하며 주님을 뵈면 나에게 영향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노인 신자분이 아침 일정한 시간이 되면 성당에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단 1분이라도 좀 앉아계시지’라고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병원에 입원하여 임종을 앞두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자성사를 주기 위해 그 병원에 찾아간 신부님은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신부님이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좋으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매일 성체 대전에 나가 ‘예수님, 저 왔어요’라고 인사만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당에 갈 수 없으니 그분이 매일 찾아오셔요.
제 이름을 부르며 ‘요셉아, 내가 왔다’라고 인사하고 가십니다.
아침마다 예수님께 이렇게 인사를 받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보상을 받습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그 보답이 ‘성령’입니다.
만약 그 보답을 받았다면 기도를 멈출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은 기도 안에서만 오시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한 청년이 코로나로 성당에 나가지 못하다가 견딜 수 없어서 다시 미사에 다니기로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주일미사에 빠진 적이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안 좋은 일도 있고 해서 한 달 정도 주일미사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일도 꼬여 화를 많이 내게 되고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말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기도 안에서 받아오던 것이 끊어졌을 때 꾸준히 기도하던 사람은 대번 그 은총의 끊어짐으로 오는 고통을 체감합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고 고프고 물을 안 마시면 목이 타는 것처럼 너무도 명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를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보아 전쟁(1899-1902) 중에 한 사람이 아주 특이한 죄명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죄명은 ‘낙담시키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군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적이 얼마나 강한가, 왜 방어하기 어려운가, 또 이 도시는 필경 점령될 거라며 여러 불안한 말을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그는 총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반역죄가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끊임없이 ‘기도하면 뭐해?’라고 반역을 일으키는 자아의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꾸준한 기도는 이 자아의 목소리를 이겼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게 만듭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주님의 기도 꼭 한 번씩이라도 바치며 성령을 청합시다.
지옥에 가면 하루 단 2분도 꾸준히 기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청해서 은총을 받아보기만 한다면 절대 기도를 멈출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 됩니다.
기도가 꾸준하지 않다면 아직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루 가장 적게 기도한 시간이 나의 믿음의 정도입니다.
기도를 몰아서 많이 하는 것보다 짧더라도 꾸준한 것이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 최소한의 기도시간을 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지켜나가도록 합시다.
믿음이 있는지 알아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꾸준함’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1월18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루카 18,1-8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집요하게 졸라대는 과부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자들과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가르침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낙심(落心)이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떨어질 락에 마음 심자입니다.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뭔가 추구하던 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맥이 풀리고 마음이 상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경우 많이 체험하실 것입니다.
한 가지 특정한 목표를 정해놓고, 9일 기도를 넘어 54일 기도를 바친다든지, 한 달 내내 새벽 미사를 다닌다든지, 정말 열심히 기도했지만, 목적했던 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을 때, 우리는 그야말로 낙심(落心)합니다.
지향이 적당한 것이면 청이 수락되지 않아도 그려러니 할텐데, 심각한 문제라면, 누군가의 일생이 달려있고, 생사가 좌지우지되는 문제라면, 낙심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산산조각 부서지고 깨어지는 느낌일 것입니다.
요즘 주변을 둘러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낙심을 넘어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울부짖습니다.
더이상 한 발자국도 나아갈 힘도 없어, 엎어져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힘을 내어보라 초대하십니다.
지금 하루 두 시간 기도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으로 부족하다, 밤낮으로 부르짖어보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루카 18,7)
따지고 보니 지금 우리가 바치는 기도에 조금 더 추구될 사항이 있습니다.
보다 간절함입니다.
보다 절박함입니다.
그냥 간절한 기도가 아니라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육체는 물론 지니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한 기도, 정신과 영혼, 일생 전체를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바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내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 기도의 지향이 정말 올바르고 순수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청원의 수락 여부보다는 나와 하느님 사이에 주고받는 친밀한 대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솔한 대화, 그것이 얼마나 좋은 기도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나 늘 그렇게>
2023. 11. 18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루카 18,1-8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나 늘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8)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그렇게
곧으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곧게
바르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바르게
착하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착하게
부드러우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부드럽게
따뜻하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따뜻하게
맑으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맑게
밝으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밝게
깨끗하신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깨끗하게
내 님께서
내 편 들어주시도록
나 늘 그렇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