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시장이 불안하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과 한국 증시는 9% 가까이 뒷걸음질쳤다. 통화가치는 경제 기초체력을 반영한다. 미국 경제의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 때문에 다른 통화도 약세지만 환율 상승은 특히 심하다. 엔화를 제외하면 주요국 통화에서 가장 크게 하락했다.
증시는 더 좋지 않다. 전쟁 중인 러시아를 제외하면 한국만큼 후퇴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코스피는 9%, 코스닥은 21% 하락했다. 개인투자자의 유출 흐름도 이어졌다. 한국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올 들어 50% 이상 늘어 145조원에 이른다. 미국 증시에서는 (투자수익으로) 세금을 내고, 한국 시장에서는 (자산이 줄어) 원금을 낸다거나 한국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개인투자자들의 자조 섞인 표현이 외면당한 한국 증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 대선 후 금융시장이 흔들린 것은 제2차 트럼프 행정부에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격화하면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트럼프 복귀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흐름에서 보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 등 한국 수출 주력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가계부채 부담에 원리금 이자를 내느라 구조적으로 내수가 부진하고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적으로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정공법뿐이다. 재정적자가 91조 5000억원(9월 말 관리재정수지)에 이르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양극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재원 대책은 말하지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봉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국내총생산(GDP)의 7%에 달하는 100조원이 넘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임금체계 개편을 포함한 노동개혁의 진전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10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주주 환원이라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근본 대책이 되기에는 어렵다. 삼성전자가 한국 대표주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길은 압도적 경쟁력으로 반도체 초격차를 다시 유지하는 것이다. 나라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혼란에도 정부가 거시경제 기조를 잘 관리하고 있어 중장기 구조개혁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현재와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매도 금지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같은 인기영합 정책은 구두를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격화소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