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다가는 12월 요사이, 명상은 별로 되지 않고 외부에만 기웃거리며 끌려다니는 마음에다 노년의 조급함이 겹쳐 약간 좌절해 있었다.
내면에 보다 집중해야 할 노년에 아직 에고의 경험인 애착과 두려움에 빠져들어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굳이 따지자면 모두 시한부 인생인데 나는 노,병,사만 남은 이 나이에 아직 삶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아난다 수트람에서 행위하는 나인 아함인 에고도, 경험하는 나인 찌따도 마하트인 ’I Am’의 변형이라는 논리가 생각이 났다.
나는 바바가 말만 많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가장 혼을 많이 내는 지성인 축에 낀다.
바바가 살아계신다면 맨날 날 보며 ’쯧쯧‘하였을 것 이다.
그러나 워낙 사랑이 많으신 바바는 내게 ’너의 욕망이 그러하니 지성의 끝까지
가보라‘고 아난다 수트람을 번역하게 하셨다.
그 번역을 끝마치자 나는 지성적으로 이 우주에 대해서, 기독교적인 신에 대해서, 불교적 무의 관념에 대해서 더 이상 헤매지 않게 되었다.
이전만 해도 나는 지성인의 특성인 의심과 두려움에 종종 빠져있곤 했다.
지금도 오랜 습관으로 그러하지만 아난다 수트람은 이런 때 얼른 나를 본질로 되돌아가게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라디오에서 프랑크 교향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리듬, 박자, 멜로디로 여러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단지 소리가 결합하고 흩어지면서 스토리와 감정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라디오 진행자는 프랑크가 이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마차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하늘을 보니 구름들이 여러 모양으로 햇빛과 놀이를 하고 있다.
어제는 디디랑, 조카랑 김장 놀이를 했다.
이 모든 놀이를 본질적으로 말하면 그냥 소리와 빛과 물질과 청각, 시각, 촉각, 미각, 후각을 통해 경험했을 따름이다.
경험하는 나, 즉 찌타는 소리로, 빛으로, 배추라는 물질로 이야기 놀이까지 경험한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 ‘모든 것이 서로 하나’라는 사랑, 하모니에 귀결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아난다 수트람에서는 브라마가 자신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물질성이라는 분열로 나왔고 자신을 경험하며 놀다가 본래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모두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창조된 우주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