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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오순절 휴거를 지지하는 근거
인터넷에서 오순절이 휴거의 절기일 수 있다는 번역글이 있어 이를 읽어보던 중 번역의 오류가 꽤 발견되어 이를 수정하였습니다. 물론 저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이를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비록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희년(2015-2016년)이 제가 알고 있는 희년(2016-2017년)과 다르지만, 오순절이 휴거의 절기일 수 있다는 중요한 점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이 지났어도 다음 새해가 시작되는 나팔절이 오기 전까지는 하나님 자신이 내시는 나팔 소리가 휴거 때에 울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일 수 있습니다. 즉 오순절 이후부터 나팔절 이전까지의 기간 중 언제라도 휴거가 발생하더라도 그 시기는 성경적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시기가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확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한 글 중에 제가 확실하다고 언급한 내용은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부터가 번역글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원저 : Does Scripture Support a Pentecost Rapture?
By T.W. Tramm [이 분이 원저의 저자]
목차
{1} 언제 휴거가 발생할 것인가?
{2} 오순절은 추수의 절기입니다.
{3} 흔드는 제사
{4} 부활의 순서
{5} 마지막 나팔
{6}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합니다.
{7} 50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8} 에녹
{9} 룻
{10}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
{11} 성령님의 두 번 부어지심
{12} 셋째 날
{13} 오순절과 관련된 성경 기록
{14} 마태복음, 예레미야, 잠언에 언급된 주목할 만한 여름 시즌의 언급
{15} 오순절/희년 사이의 연관성 : 유사한 주제, 동일한 성취?
{16} 시편 67장
{17} 기타 : 오순절과 2015-16년에 있는 마지막일 가능성이 있는 희년 사이의 연관성
{18} 다윗왕
{19} 결론과 요약
{20} 다니엘의 일곱의 일곱 배 예언
{1} 언제 휴거가 발생할 것인가?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첫 번째 곡식이 수확된 날로부터 49일을 세어 오순절 절기를 관찰하라 지시하셨습니다. 명시된 3개의 추수 절기들 중 하나인 오순절은 모든 이스라엘 남성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가 받은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표하며 기뻐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파괴 이후 순례자들과 참석자들의 제사가 더 이상 행해지기 어려워지면서 오순절의 초점은 "추수"에서 바로 이날에 유대인 역사에서 이날 (오순절) 발생했던 한 지정된 사건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나이산에서의 언약(십계명)이 주어진 사건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오순절과 관련된 한 역사적 사건으로 관심이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AD 33년에 “성령의 부어짐” 사건입니다.[역자 주 : AD 33년이 아니라 AD 30년이 확실함] 이 사건은 바로 오순절 아침에 발생했는데, 예수님 부활 후 50일째로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오순절에 대한 가장 유명한 가르침은 성령의 부어짐이 오순절을 예언적으로 성취시켰다는 것인데, 이것이 완전한 성취는 아닙니다. 성령님의 부어짐은 단순히 부분적 혹은 예비적인 오순절의 성취를 나타낼 뿐이며 추수라는 측면이 더 성취되어야 완전하게 성취될 것으로 봅니다.
오순절의 궁극적인 성취는 우리가 휴거라 부르는 마지막 시대의 추수에서 구속의 과정의 완성이 되어야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나팔절이 아니라 오순절이 휴거의 절기라 보는 것입니다.
오순절-휴거 시나리오 :
교회는 예수님과 오순절에 "약혼"하고 교회시대를 시작하였습니다. 약 2,000년 후에 교회는 역시 오순절에 주님(예수님)과 결혼하고 교회시대를 마무리할 것입니다.
이것은 두 단계로 구성되는 성경적인 결혼과 어울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약혼의 단계입니다. 이때에 신랑과 신부는 기록된 결혼 서약을 통해서 법적으로 정혼한 사이가 되지만 같이 거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는 충만함과 융합의 단계입니다. 결혼식이 거행되고 결혼식이 마무리되게 되면 신랑과 신부는 함께 거합니다.
오순절 휴거는 새로 도입된 해석이 아닙니다. 많은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승천하심이 오순절 즈음이라는 사실에 기초해서 동일한 시즌에 돌아오신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현대 신학자들도 동의합니다. 척 미슬러(Chuck Missler)와 게리 스티어맨(Gary Stearman)이 논리적으로, 설사 논리적이지는 아닐지라도, 오순절이 휴거의 시기라고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 속합니다.
저는 지금 휴거가 오순절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휴거는 언제든지 또는 가을 절기 또는 소수가 기대하고 있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점은 수많은 휴거/ 절기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2016년 현재 우리는 희년을 살고 있습니다.[역자 주 : 희년은 2016년 9월~2017년 9월임]
희년은 성경이 구속의 해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레 25:10 ; 사 63:4)
하나님께서 희년에서 하루가 아닌 일 년 전체를 구속과 해방의 해로 신성하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 절기들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을 제쳐놓고 그 어떤 날도 구속의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2} 오순절은 추수의 절기입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추수를 가을 절기와 관련지으려 하지만, 성경은 실제로 매년 세 번의 추수의 절기가 있습니다.
① 초실절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Firstfruits)]
② 오순절 [The Feast of Pentecost]
③ 장막절 [The Feast of Tabernacles]
연 중 세 번의 추수의 절기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특별히 중요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매 세 번의 절기마다 각각의 이스라엘 남성이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할 때마다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따라 예물을 드리도록 했습니다.[출 23:17 ; 신 16:11-12, 16, 17]
추수의 절기는 일 년에 3번으로 한번은 봄, 한번은 이른 여름 그리고 한번은 가을에 추수가 있었는데, 꼭 하나님 앞에 모이도록 했습니다. 성경에서 추수와 주님 앞에 모이는 것은 부활 또는 휴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추수의 절기가 부활에 의해서 성취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에 의해 입증됩니다.
①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로 성취되었습니다.
② 장막절에 있을 추수는 많은 이들이 믿는 대로 대환난 이후에 성취될 것입니다.[계 20:4-6]
부활과 공통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유일한 추수의 절기는 바로 오순절 추수입니다.
이것은 왜 그러한 것일까요?
한 이유로, 오순절의 원래의 성경적 주제인 밀 수확이 다른 주제에 의해서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시나이산(Sinai)에서 율법이 주어진 것이 오순절의 다른 주제입니다.
오순절의 강조점이 “추수”에서 “시나이산에서 율법이 주어짐”으로 이동된 것은 아마도 산헤드린(Sanhedrin) 공회에서의 결정에 따라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흩어진 이후에 성전으로 덩어리 빵을 가져오던 의식이 더 이상 행해질 수 없었습니다.
축제의 활성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산헤드린 의회는 기원 후 140년에 소집되어 오순절의 초점을 추수에서 유대 역사상 이날에 발생한 한 정해진 사건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시나이산에서의 율법이 주어짐” 사건입니다. 오순절과 시나이산 사이의 연관성은 곧 정착되어 오순절이 율법이 주어짐이 오순절의 주된 주제라는 것이 정립되었습니다. 율법의 주어짐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예언적인 형태이지만, 이에 대하여 타당한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오순절의 주제가 희미해질 수 있으며, 오순절의 궁극적 성취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마찬가지로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은 결국 추수의 절기입니다. 성경에서 추수와 주님 앞에 모이는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3} 흔드는 제사
주(主)의 절기들 중 두 절기(초실절, 오순절)의 중간부에 소위 “흔드는 제사”라고 불리는 한 신비로운 의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 흔드는 제사는 초실절에 드려집니다. 이날에 첫 번째 여문 곡식 한 단을 수확하여 성전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제사장은 주(主) 앞에서 이 곡식 한 단을 들어 올려 흔듭니다.[레 23:10,11] 두 번째 흔드는 제사는 오순절에 드려집니다. 이날에 발효된 빵(첫 번째 수확된 밀로 만들어진) 덩어리 두 개를 구워 성전으로 가져오게 됩니다. 제사장은 주(主) 앞에서 그 빵 덩어리들을 들어 올리고 그것을 흔듭니다.[레 23:17,20]
각각의 흔드는 제사는 무엇을 나타낼까요?
처음 익은 열매의 흔드는 제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예언적 계시로 이해됩니다. 약 2,000년 전의 초실절에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천국으로 올라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서셨습니다. 이 곡식 단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는 곡식 한 단은 사람 혹은 사람들을 나타내는 전형일 수 있습니다.[창 37:5-11]
오순절에 흔드는 제사는 교회의 탄생의 모양으로 이해됩니다. 약 2,000년 전 이 날에 하나님께서는 처음 믿은 자들 안에 거하시도록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두 개의 누룩 있는 빵 덩어리들은 두 그룹(유대인과 이방인)을 상징하는데, 이들을 통해서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위에서 설명이 이뤄진 그 관점에서, 타당한 질문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동일하신 분인데 어떻게 초실절에 드려지는 흔드는 제사가 “부활”을 상징하는데, 그로부터 7주 후 오순절에 드려지는 흔드는 제사는 “교회의 출생”을 상징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적어도 예표학의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입니다. 그렇다면 이치에 맞는 것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오순절의 흔드는 제사가 초실절의 그것처럼 부활의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빵 덩어리는 방금 휴거된 성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있는 것을 묘사합니다. (계 7:9)
이 관점의 타당성은 두 개의 흔드는 제사가 관련되어 있으며, 성경에서 유사하거나 관련된 성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관련 요소는 일곱을 일곱 번 세는 것입니다. 그 셈은 이전의 흔드는 제사에서 시작되어 나중의 흔드는 제사 때에 끝납니다. 이런 방식으로 나중의 흔드는 제사는 이전의 흔드는 제사에 예속됩니다.
두 번째 관련 요소는 각각의 흔드는 제사의 본질 또는 실체입니다. 후자의 제사(빵 덩어리들)는 이전의 제사(곡식 단)에 예속됩니다.(처음 익은 열매로 나중의 빵이 구워집니다.) 그 곡식 없이는 하나의 “몸”으로 함께 결합되어 구워지는 빵 덩어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 가지 이상의 이유로 후자의 흔드는 제사는 이전의 흔드는 제사에 예속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교회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에 예속되는가와 유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열매로서 최초로 부활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교회의 부활이나 휴거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순절의 흔드는 제사가 부활/휴거라는 관점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가 된 이방인들이 “위로 바쳐지는 것”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방인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제공함으로써 이방인들을 바치는 일이 [성령님]을 통해 거룩히 구별되어 주께서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함이라.』(롬 15:16)
사도 바울은 교회가 궁극적으로 구속될 것임을 기술하기 위해 논증할 수 있도록 흔드는 제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4} 부활의 순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여러 차례 부활이 한 특정 순서로 발생할 것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전 15:20,22,23)
이 구절에서 언급한 첫 번째 부활은 초실절에서의 예수님입니다.
그 다음으로 언급한 부활은 예수님 오실 때 휴거 때의 교회입니다.
여기에서 “언제 또는 어느 절기에 이 두 번째 부활이 발생하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이 있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초실절과 오순절의 상관관계를 인용하면서, 그것이 오순절에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다음을 지적합니다.
① 초실절과 오순절은 둘 다 추수의 절기입니다.
② 초실절과 오순절은 둘 다 흔드는 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둘 다 처음 익은 열매 또는 그 열매로 만들어진 빵들이 주님 앞에서 들려집니다.[레 23:16]
③ 초실절과 오순절은 둘 다 순례의 절기입니다. 이 절기 때에 이스라엘의 각 남자들은 예루살렘의 주(主) 앞에 나와야만 했습니다.[신 16:11, 출 23:14-17]
④ 초실절과 오순절은 7주를 세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후자의 관찰은 전자에 예속됩니다.)
상기 제시된 것들에 기초한 관점에서, 일부 사람들은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부활에 대한 가장 논리적 시기를 가장 유사하면서 순서상 다음인 절기, 즉 오순절이라고 제시합니다.
{5} 마지막 나팔
많은 사람들은 고린도서의 마지막 나팔을 나팔절에 들리는 마지막 나팔이 불리는 것으로 지칭합니다.
명백해 보입니다. 맞을까요?
그러나 다음을 고려해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나팔은 실제로 모든 절기에 불렸습니다. 나팔절에만 불린 것이 아닙니다.[민 10:10 ; 시 81:3,4]
② 성경 그 어느 곳에도 마지막 나팔이 나팔절에 지정된 것이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혹은 그 어느 다른 절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점은 성경적으로 말해서 마지막 나팔은 아무래도 나팔절이라기보다는 어느 한 절기에 울리는 나팔을 지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뭔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마지막 나팔이 다른 절기를 지칭할 어느 성경적 타당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설명하자면 우리는 마지막 나팔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언급하는지 먼저 분류해야만 합니다. 마지막 나팔은 휴거를 알리는 나팔 소리이자 교회의 종결의 순간에 불리는 나팔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마지막 나팔 소리는 단순히 특정한 날 또는 특정한 시즌에 마지막으로 부는 소리가 아닙니다. 마지막 나팔은 기술적으로 말해서 한 천년의 기간을 마무리하는 순간의 나팔 소리입니다. 이런 천년 기간의 관점으로 마지막 해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성경적인 한 해가 나팔절에 시작됨을 안다면, 여기서 질문이 발생합니다.
그 해의 언제에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게 될까요?
답변은 “명백히 나팔절은 아닙니다.”입니다.
나팔절에 울리는 나팔은 단지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릴뿐입니다.
대속죄일에 울리는 나팔은 두 번째입니다.
그 해의 마지막에 울리게 되는 나팔 소리는 –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 약 9개월 후에 울리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오순절입니다. 이 시점 이후부터는 가을에 시작되는 그 다음 성경적인 새해가 시작될 때까지는 나팔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나팔에 대한 이런 관점은 마지막이라고 가정한 한 희년에서 다양한 나팔 소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각각의 의미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나팔절에 들리는 나팔 소리는 심판이 다가옴을 일깨우는 처음 나팔소리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대속죄일에 부는 나팔 소리는 희년을 선포합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오순절에 한 해의 표시로서 마지막 나팔이 불리면 무언가 절정에 달하는 이벤트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 기록에서 첫 번째 나팔 소리는 오순절에 하나님께서 시나이산에서 구름 속에 강림하실 때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울린 나팔 소리라는 것입니다. (휴거의 그림자적 예표) 성경의 다른 기록에서 하나님 자신이 나팔 소리를 내시는 경우는 오직 휴거 때뿐입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두 번째로 나는 것이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오순절에 들릴 수 있을까요? (출 19:16, 19, 20; 고전 15:52; 살전 4:16) [역자 주 : 이러한 이유로 오순절이 지났어도 다음 새해가 시작되는 나팔절이 오기 전까지 하나님 자신이 내시는 나팔 소리가 휴거 때에 울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일 수 있습니다. 즉 오순절 이후부터 나팔절 이전까지의 기간 중 언제라도 휴거가 발생하더라도 그 시기는 성경적이라는 뜻입니다.]
{6}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는 예수님의 언급은 나팔절에 대한 비유는 가장 유명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의 기초가 되는 점은 2일간의 나팔절이 시작되는 시점이 새해의 첫 달(moon)이 관측되는 유동적인 시점에 예속되기 때문에, 그것이 시작되는 그 날 혹은 시를 아무도 모르는 절기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나팔절만이 그 시기가 신비롭다고 언급되는 유일한 절기가 아니므로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역자 주 : 마태복음 24장은 휴거(공중 강림)이 아니라 지상 재림의 날과 그 시각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오순절 또한 유사한 신비스런 평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절기들(달력에 날짜가 배정된 유월절은 니산(Nisan)월 14일, 나팔절은 티쉬리(Tishrei)월 1일)과는 달리, 오순절은 달력에 어떤 특정 날짜도 배정되지 않습니다. 레위기에서는 단지 수확한 첫 곡식단을 드림으로부터 50일 째를 기념하는 것으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레 23:15-17)
“오순절의 신비”란 제목의 한 논평에서 게리 스티어맨(Gary Stearman)이 기술했듯이, 오순절이 초실절 이후에 7주를 세는 데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오순절의 날짜는 유동적입니다.
유대력은 여전히 새해의 첫 달(moon)이 나타남을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오순절은 시반월(Sivan)의 다섯째, 여섯째 혹은 일곱째 날일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짜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오로지 니산월과 이야르(Iyar)월이 꽉 찬 30일로 된 달(month)이 될지 아닐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이날까지 누군가가 오순절의 날짜를 성경에 지시된 대로 정확하게 계산한다고 할지라도, 오순절의 정확한 시점은 신비로운 어떤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그것은 휴거에 대한 완벽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날짜가 계산 그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7} 50은 “완성”을 의미합니다.
오순절(Pentecost)이란 단어는 50번째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부터 나왔습니다.
E. W. Bullinger의 저서인 “성경에서의 숫자”란 책에서 저자는 성경에서 숫자 50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50은 희년 또는 구출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곱을 일곱 번 세는 것의 결과물이자 구출을 가리키며 다음 단계로 시간의 완벽한 완성의 결과로서 안식됩니다.”
불링거에 따르면 "50"은 희년에서처럼 휴식, 완성, 그리고 구출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희년의 구출은 종이 자유를 얻고 일이나 짐으로부터 해방됨을 나타냅니다.[레 25:39-41] 이점을 염두에 둘 때, 과연 오순절이 교회의 탄생에 의해 모든 점에서 성취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타당한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의 오랜 도전적 과제인 복음의 전파가 여전히 교회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교회의 탄생이 완성의 주제들을 구체화하거나 혹은 임무나 짐으로부터 해방되게 하였나요?”
정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교회가 탄생한 것은 완성 혹은 임무나 짐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뤄진 시기가 아니라 차라리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의 과제가 막 시작되는 개통식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 "50" 그리고/또는 오순절과 관련된 주제들인 나타내는 완성, 구출, 그리고 안식이 곧 다가올 사건에 의해 성취될 것인가 여부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미래의 사건은 교회의 휴거일 수 있을 텐데, 온 세상으로의 복음의 전파라는 교회의 임무가 완전하게 되어 끝이 오는 때가 언제 올까요?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참조
1. Strong’s #4005
2. E.W. Bullinger, Numbers in Scripture, p. 268
[역자 주 : 마 24:14은 대환난 시기에 전파되는 왕국 복음으로 현재 전파되는 은혜의 복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8} 에녹
에녹은 창세기에 언급된 성경적인 족장들 중 한 명으로 주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교회의 예언적인 모형으로 해석됩니다.
네 세대들에 속한 사람들 중 최초의 설교자였으며, 그의 이름은 “가르침”을 의미하며, 그것은 교회의 주된 기능이기도 합니다.(마 28:19-20)
게다가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진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창 5:24)
이 "휴거"는 대홍수 이전에 발생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교회가 대환난 이전에 지구로부터 옮겨질 것이라는 힌트로 보입니다.
에녹과 교회 사이의 또 다른 재미난 유사성은 – 유대전승에 따르면 – 그는 나중에 오순절이 되는 날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에녹과 교회가 오순절이라는 “생일”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행 2]. 이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또한 동일한 유대 전승에 따르면 에녹은 오순절에 휴거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결정적인 질문을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그와 마찬 가지로 오순절 “생일”에 휴거될 수 있을까요?
에녹 / 오순절 / 휴거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흥미로운 여담으로 성경은 에녹이 세상으로부터 데려감을 당할 때 정확히 365살이었다고 기록합니다.[창 5:23,24]
어떤 이들은 숫자 “365”를 그레고리안력 (365일) 또는 “기독교인” 달력으로 보는데 그것은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달력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의도하심일까요?
나는 이전에 유대인이 1967년에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시점과 2015년의 나팔절 사이에 정확히 17,640일(예언에서 사용하는 360일짜리 1년짜리가 49개)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수학적으로 일치된다는 것에 대해 기술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날짜까지 이렇게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2015년 나팔절이 다니엘서 9장 25절에 언급된 일곱을 일곱 번 세는 것의 종말점과 희년의 시작을 나타낸다고 확정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런 신기한 정렬은 성경적인 일 년인 360일에 기초로 한 해석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계산을 우리가 365일로 된 1년으로 계산하게 되면 무슨 결과가 나오는지 주목해보기로 하겠습니다.
49년 곱하기 365일 하면 17,885일이 나오는데 예루살렘의 탈환을 법령으로 포고한 1967년의 때에서 다시 더하게 되면 2016년 6월 14-15일이 나오게 되는데 오순절로부터 2일 이전이 됩니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크게 의미를 두지는 못할 차이입니다. 우리가 오순절까지의 일곱을 일곱 번 세는 정확한 시작점에 관한 오래된 논란을 포함하여 유대력을 둘러싼 많은 의문들과 논쟁거리들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에녹이 오순절과 숫자 365와 관련된다는 것과 예루살렘이 법적으로 공표된 후부터 2016년에 있는 오순절까지 365일이 1년인 한 희년 주기인 것이 우연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것은 날짜의 정렬에 대해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정렬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그날에 꼭 무슨 일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는 것 또한 안전하진 않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관찰은 여기 앞에 놓인 다른 각각의 것처럼 단지 전체를 큰 그림으로 볼 때 우리가 맞춰야 하는 하나의 퍼즐조각과 같이 “생각의 음식”으로서 간주됩니다.
[역자 주 : 이 글을 작성할 때의 시점에서는 충분히 2016년 오순절을 휴거의 시기로서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계산을 시도해 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9} 룻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룻기를 읽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룻기의 이야기가 봄/여름 추수 시기(오순절)에 발생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유대적 믿음을 갖고 있다고 인정받은 룻은 마치 수세기 이전의 오순절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과 닮았기 때문입니다.[역자 주 :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가 이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룻기서를 이스라엘과과 교회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주목할 만한 활자화된 삽화라고 봅니다.
당신이 룻기서와 친숙하지 않은 경우라면, 여기에 클리프스(Cliffs)의 요약본이 있습니다.
이야기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던 시기 동안, 베들레헴의 유대인 가족 엘리멜렉, 나오미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은 이 근처의 모압 지방으로 이주를 합니다.
엘리멜렉은 거기서 죽고 나오미를 과부로 남겨둡니다. 두 아들도 결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고 그 두 아내를 마찬가지로 과부로 남겨둡니다.
나오미와 그녀의 두 며느리는 한 푼 없이 고독하게 남겨집니다.
이스라엘의 기근이 어느 정도 나아지자, 나오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두 며느리중 하나는 모압 땅에 그녀가 친근한 사람들과 이방신을 위해서 남기로 선택합니다.[룻 1:15] 그러나 다른 며느리인 룻은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룻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시점에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룻은 들판에 이삭줍기를 하러 갑니다.
룻이 이삭줍기 하던 땅은 보아스라는 남자의 땅이었고, 그는 우연히도 나오미의 가까운 친척임이 나중에 밝혀지게 됩니다.
시어머니[보아스의 가까운 친족]에게 보이는 룻의 충직함에 대한 감사함으로 보아스는 룻이 남은 추수 기간 동안에 계속해서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다음에 발생하는 일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유대법의 두 가지 측면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레위기에 기술된 대로 어떤 사람이 불행으로 인해서 그의 땅을 잃게 되면(이 이야기서는 나오미의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구매하거나 또는 되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은 그것을 잃은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아가게 됩니다.[레 25:25]
둘째로, 유대법에 따르면 "수혼(嫂婚, Levirate marriage)" 이라 해서 어느 여인이 아들이 한 명도 없이 과부가 되면(룻의 경우에서처럼), 가까운 친척 남자가 그 과부와 결혼해서 그녀에게 후손을 낳아줄 의무를 가집니다.[신 25:5-6]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유대법과 나오미와 룻이 각각 처한 상황들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이 이야기의 핵심 시점과 클라이막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나오미는 땅을 다시 되사줄 구속자가 필요하고 그리고 룻은 그 땅을 다시 물려받을 아들이 없는 과부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모두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접근시킵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가까운 친족이며 구속자의 역할( 땅을 다시 사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에는 룻과 사랑에 빠진 보아스는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나오미의 땅을 다시 사주고 그리고 룻을 자기의 아내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그 가족의 “혈족인 구속 남자”가 됩니다.
상징
룻의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측면은 “어떻게 그 인물들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핵심 역할자들의 본이 되는가?”입니다.
나오미는 그녀의 땅을 잃고 빈민이 된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룻은 기꺼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인 이방인 신부로서 교회를 나타냅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온 혈족인 구속 남자로서 메시아를 나타내며, 그는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자 그리고 우리의 구속자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하나님의 계획이 제정되는 그림입니다.
나오미와 그녀의 땅(이스라엘)을 구속하는 과정에서 보아스(메시아)는 이방인 신부(교회)를 받아들이며 그런 결과 양쪽의 극빈 상태로부터 모두를 구원하게 됩니다.
많은 훌륭하고 상세한 주석들이 룻기서와 그것의 예언적인 암시들에 대해 기록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오순절-중심 연구의 목적을 위해, 나는 아래의 세 가지 주제로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원합니다.
① 이방인 신부/결혼식
② 구속
③ 밀 추수
종말론에 대한 이해가 밝은 기독교인들에게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는 이 주제들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성경 전체에서 신부로 묘사됩니다.[고후 11:2]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에게 오면 이뤄질 행사입니다.[마 25:10]
구속과 혈족 구속자의 주제는 레위기 25장에 언급된 대로 희년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것은 신랑의 또는 메시아의 오심을 가리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구속은 휴거 때에 우리의 육체적 몸이 다시 새롭게 되는 것과 관련된 단어입니다.[롬 8:23 ; 엡 4:30 ; 눅 21:28]
이것은 우리는 세 번째의 룻 주제로 데려갑니다. 바로 밀 추수입니다.
궁극적인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오순절의 추수 시기를 배경으로 교회의 예언적 모형인 룻을 구속하시기로 선택하셨나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이러한 측면은 단순히 우연, 즉 무작위적인 상황의 문제일 뿐일까, 아니면 휴거의 시기에 대한 예언적인 단서일 수 있을까요?
{10}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란 제목을 가진 성경은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사랑을 받는 사람 사이에서의 로맨틱하고 육체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찬양하는 시의 모음집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서를 하나님의 사랑을 기술함에 있어서 풍유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과 관련된 풍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종말론적인 생각을 가진 신앙인들은 더 많은 것들을 찾아냅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서를 휴거를 가리키는 예언적인 모형의 드라마로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흔히 언급 되는 구절에는 주된 인물들 중 한 명인 한 목자가 그의 사랑을 받는 여인인 술람미(이방인)를 불러서 채가기 위해 오는 것을 특징이 있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은 술람미 여인이 그녀의 목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는 관점에서 묘사한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로다! 보라, 그분께서 산들 위로 뛰어 오시며 작은 산들을 뛰어넘어 오시는도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노루나 젊은 사슴 같으시니, 보라, 그분께서 우리의 담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며 격자창을 통해 자신을 보이시는도다. 나의 사랑하는 이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아 2:8-10)
이제 휴거에 대해 글로 보이는 각각의 요소를 고려해보기로 하겠습니다.
8절의 “보라. 그가 오시는도다”는 구는 계시록 1장 7절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라는 어구(語句)와 비슷한 어구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같은 절에서 목자가 다가오는 것은 마치 가젤이나 어린 수사슴이 언덕들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처럼 신속하게 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신속한’ 혹은 ‘갑작스런’이란 용어는 마지막 시대에 주께서 오심의 성경적 특징이 어떠한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마 24:27 ; 계 16:15 ; 살전 5:3]
목자는 "담 뒤에 서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며"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자께서 분리된 영역(하늘)에서 오시되 문 혹은 창문을 통해 오시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빈번하게 비유적으로 문이나 창문을 하늘로의 진입로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받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복을 쏟아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격자창을 통해 자신을 보이시는도다"는 목자께서 부분적으로 드러내심과 부분적으로 감추어짐을 제시하며, 어떤 이는 주께서 다시 오실 때 구름과 함께 나타나시게 될 것을 상기할 것입니다.[눅 21:27 ; 계 1:7]
마지막으로 목자가 그의 사랑하는 자를 불러 모아 도착할 때, 그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
이 단어들은 계시록의 “이리로 올라오라” 또는 이사야서의 “주의 죽은 자들은 살겠고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라는 휴거 구절들을 상기시킵니다.[계 4:1 ; 사 26:19]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대부분 예언적 형태로 기록하심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가 문제의 그 구절을 어떠한 방식으로 휴거를 암시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보기란 쉽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그 구절의 두 번째 절반에 해당하는 우리의 오순절 중심의 연구의 목적이기도 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부분인 목자가 오시는 시기에 대한 일련의 명백한 단서들에 당도하게 됩니다.
『보라,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치고 사라졌도다. 땅에는 꽃들이 나타나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이르러 멧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는 푸른 무화과를 내며 연한 포도가 달린 포도나무는 좋은 향기를 풍기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아 2:11-13)
명백하게도 봄/여름 (오순절) 시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리키는 정도가 아니라 일련의 이스라엘에 특이적인 단서들을 통해 강력하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음의 단서들을 각각 탐구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는 소리입니다.
“비가 그치고 사라졌도다.”
비에 대한 언급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주의 오심(재림)에 대한 비유가 이른 비와 늦은 비로 기술되었기 때문입니다.[호 6:3] [역자 주 : 성경에는 늦은 비와 이른 비의 순서로 나옴]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이스라엘에서는 참으로 한정적인 시즌인데, 이것들은 실제로 다양한 추수의 시기를 보여주는 달력들과 연감에 실제로 표기됩니다.
이른 비는 10-12월 시기와 일치합니다.
늦은 비는 3-5월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렇게 5월부터 6월(오순절의 시기)이 이스라엘의 건기가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서에 언급된 비가 그치고 사라진 시기인 것입니다.
“땅에는 꽃들이 나타나고”
이스라엘에서는 꽃들은 연중 계속해서 피고 집니다.
그러나 봄이 (3월부터 6월) 가장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서에서 백합이 특별하게 언급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이로다. 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 같도다.』(아 2:1-2)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가시들 사이의 백합화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솔로몬의 노래(솔로몬의 아가)’서에 기술된 것처럼 늦은 봄과 이른 여름의 시기입니다.
『땅에는 꽃들이 나타나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이르러 멧비둘기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 2:12)
멧비둘기는 이주하는 새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4월 중순이 되면 들판에 있는 클로버들을 먹는 비둘기 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땅 전체에 퍼집니다.
『무화과나무는 초록색 무화과를 내며 연한 포도가 달린 포도나무는 좋은 향기를 풍기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아 2:13)
초록색 무화과와 연한 포도는 이스라엘에서는 4월부터 5월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모두가 여물기 시작하는 때는 전형적으로 늦은 5월부터 이른 6월 정도가 됩니다.
봄/여름 시즌에 대한 여러 참조 구절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목자께서 오시는 시기에 대한 일반적인 “시간의 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참조 구절들이 단순히 미학적인 것, 즉 목자와 술람미 여인 사이의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기 위한 알맞은 배경일 뿐일까요?
아니라면 그것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선한 목자께서 오셔서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떠나가자.”라고 신부에게 말씀하실 시기를 알려주는 힌트일까요?"
첫댓글 오순절에 휴거라는 주장하는 곳은 말보회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 의견을 쓰겠습니다.
먼저 추수 감사절기는 초실절과 오순절과 나팔절입니다.. 장막절은 추수 감사절기가 아닙니다.
둘째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십계명을 받은 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오순절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구약은 약속의 대표가 십계명 즉 죄와 사망의 법이라면.
신약은 오순절에 성령님의 강림으로 성령의 법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법의 개념에서 오순절에 의미를 둡니다.
로마서 8 :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나팔절은 추수 감사 절기가 아니며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절기입니다.
장막절은 Fruit Harvest - Firstfruits presented to the Lord (출 23:19, 14:1-5)로 추후 절기가 맞습니다.
세째로 절기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즉 절기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의 시간표을 예측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예수님의 십자가
무교절- 예수님의 장자
초실절- 예수님의 부활.
오순절= 성령님 강림..
이까지는 우리 시점에 모두 성취 된 것입니다.
남은 절기는 나팔절과 대속죄일. 그리고 장막절입니다.
절기 중 초실절은 첫 열매 즉 첫 단을 드리는 추수 감사절기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보리 농사에 대한 추수 감사절기이고요
나팔절은 바로 밀 농사에 대한 추수 감사절기입니다.
즉 구약의 마침과 신약의 시작은 바로 오순절이 될수 있다는 것이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령의 법으로 전환되는 시점
http://www.jesus.org/early-church-history/pentecost/where-did-pentecost-come-from.html 사이트로 들어가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So Firstfruits is the beginning of the barley harvest and Pentecost the celebration of the beginning of the wheat harvest.
Barley : 보리
Wheat : 밀
오순절은 보리의 첫 수확으로부터 세어 50일째가 되는 날로서, 밀 수확이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는 추수 절기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2장에 성령강림으로 본격적인 복음 전파와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오순절은 의미는 구약 성도의 마침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까지는 모두 성취된 사건입니다.
이제 남아 있은 사건은 나팔절과 대속죄일과 장막절
나팔절이 추수 감사절기이며 본수확을 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휴거가 있은 시점이 이 시점이 됩니다.
즉 교회가 바로 예수님의 신부이기 때문이며 이날이 바로 본 수확인 나팔절이 되는 것입니다.
대속죄일은 바로 이스라엘의 회개입니다.
즉 환란기가 되는 때입니다.
이 때를 추수로 보면 이삭 줍기에 해당되며...
마지막 기회이자 마지막 추수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으로
나팔절이 휴거일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추수 절기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것이고 이 것이 바로 장막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 :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처럼 절기는 하나님이 시계와 같습니다.
순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장막절에 유대인들의 대 회개가 있으면서 유대인들이 추수가 이루어지고, 이방인들 중 아주 소수가 추수될 것으로 생각하며, 이 때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막절에도 휴거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100%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