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사다리
조 성 희
시골집 컨테이너박스 창고 속에 나무사다리 하나가 누워 있다. 더이상 사랑 해줄 주인을 잃고 뼈만 앙상한 삭정이로 잠자고 있다. 근육질 다리에 윤기 잘잘 흐르는 알루미늄 사다리에게 자리를 내주고 할 일 잃은 채 삭아가는 분신을 멍하니 바라본다. 일어서고 싶을 것이다. 팔십 키로가 넘는 주인도 거뜬히 올려 주던 다리가 아니던가. 누워서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웃집 친구들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는 것을. 이제라도 밖으로 나가서 두 다리로 서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이사철이 다가 왔다. 한 시간 전부터 901호로 이삿짐이 오르고 있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쉽게 짐을 올릴 수 있다. 튼실한 다리가 딱 버티고 서서 중심을 잡아 주니까 무거운 짐도 가볍고 안전하게 올릴 수 있다. 자석에 끌리듯 베란다 창밖으로 걸쳐진 사다리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다보고 있다. 거동을 못하고 일 년 넘게 누워 있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사다리를 타고 하나 둘 떠오른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들을 조각조각 찾아 내 퍼즐처럼 맞춰본다.
화가인 듯 아름다운 풍경화가 그려진다. 초가지붕 위에서 이엉을 얹고 있는 아버지 모습도 있다. 함석지붕 위에서 고추 말리고 있는 모습도 칼라로 색칠해 본다. 눈 오는 겨울 리어카 위에 사다리를 얹고 나무하러 가는 아버지도 그려 본다. 짚단을 쌓을 때도, 비가 와서 지붕에 물이 샐 때도 아버지 곁엔 항상 바늘과 실처럼 사다리가 그려진다.
아버지는 몸집에 비해 섬세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초겨울이면 집집마다 이엉을 새로 해 초가지붕을 덮는다. 이집 저집 품팔이로 이엉을 덮는 일도 하고, 함석지붕이 유행할 때는 함석 얹는 일도 다녔다. 겨울이면 나무를 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옆구리에는 항상 아버지 손때 묻은 나무 사다리를 갖고 다녔다. 해마다 썩은 곳은 새로 갈고 못질하고 자식 돌보듯 비 맞을까 처마 깊숙이 보관하며 애지중지 했다. 농사일 외에 돈벌이가 쉽지 않던 시절엔 아버지의 손재주와 사다리가 환상의 짝꿍으로 힘든 시절 우리 밥줄이 되었다.
요즘의 알루미늄 사다리는 공장의 상표를 달고 힘자랑과 날씬함을 무기로 현대인들에게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썩거나 녹이나지 않는 강점을 내세워 한방에 나무사다리를 불속으로 던져 버리고 말았다. 각선미만은 자신 있다는 듯, 곧고 미끈한 허연 다리를 내놓고 유혹하는 당당함에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버지는 결혼 후 두 번이나 군대를 갔다 왔다. 할아버지 바람기 때문이다. 제대해서 집에 와 보니 새엄마라는 사람이 들어와 있고, 투전을 해서 빚까지 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돈을 벌기위해 다시 군에 들어가 칠년을 더 근무를 했다. 칠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다녀가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식구들을 위해 배고픔을 참으며 종자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돌아와서도 땅이 없으니 남의 집 품팔이로, 소작으로 농사를 짓고 대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낮에는 남의 집일을 하고 자투리 시간인 새벽과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집 농사일을 했다. 억척스럽게 일한 아버지 덕에 우리 오남매 모두 고등교육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험한 일을 하면서도 장갑을 끼지 않아서 항상 손등이 거북등처럼 트고 갈라져 피가 흘렀다. 지독하다고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리자, 행여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궁여지책으로 낡아서 길가에 버려진 장갑을 주워 끼었다. 구두쇠로 소문이 파다했지만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식들한테만은 내가 겪은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한다.
밤낮으로 일개미처럼 일했지만, 미련스러울 정도로 본인을 위해서는 십 원 한 장 쓰는 것도 허락지 않았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았던 아버지도 세월 앞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고목이 쓰러지면 충격이 배가 되듯이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자식들 다 높은 곳으로 올려놓고 더 이상 필요치 않음을 알았을까. 무릎에도 이상이 생겨 걷지도 못하고 일 년 동안을 방에서만 생활하다가 창고 속에 있는 사다리같이 앙상한 뼈만 남은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어릴 적만 해도 귀한 대접을 받던 나무사다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 기억에서 조차 잊혀지고 설자리마저 내어주고 어두운 창고 속에서 뼈만 앙상한 채 화장당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친정집에 있는 나무사다리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서로 닮아 애처로워 가슴이 아려온다. 철심이라도 박아 주고픈 간절한 마음을 하늘 높이 날려본다. 누군가를 위해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젊음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가슴이 먼저 알아차리고 뜨거워진다.
우리 오남매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버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도 마다 않고, 사다리같이 모든 것 다 내 주고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서 든든히 지탱해준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기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다리가 있어야 높은 곳도 올라 갈 수 있듯이.
나무라는 재질 때문일까, 아버지 때문일까, 도시 총각같이 번지르르하고 세련된 알루미늄보다 투박하고 거친 모습의 아버지를 닮은 나무사다리가 친정집처럼 푸근하니 정이 가고 사람냄새가 나는 것 같아 그리워진다. 나무사다리는 어딘가에 의지하고 기대야만 설 수 있다. 서로 의지하고 조금 부족한 면이 보여야 사람에게도 정이 가고 인간답지 않던가. 조각가의 작품같이 깎아놓은 듯 반듯반듯한 도시생활과, 더 높은 곳을 향해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는 경쟁사회의 답답함인지도 모르겠다.
901호 이사가 끝났나 보다. 사다리가 801호, 701호…, 서서히 고단한 다리를 접으며 내려가고 있다. 아버지처럼 내일도 모레도 계속 어느 집의 행복의 짐을 실어 나르겠지. 드르르륵 소리가 창문 사이로 흘러 들어온다. 흥얼거리는 아버지의 노랫소리도 뒤따라 들어온다. 살며시 머릿속에 앉는다.
기억 속 풍경화 한 점 한 점을 마음속 깊은 곳에 걸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