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동백꽃’과 인공지능 ‘알파고’
소설가 김유정은 1908년 태어나 서른의 나이인 1937년 삶을 마감한 작가이다. 단명했던 삶만큼이나 안타까운 것은 조선에 대한 그의 모든 기억이 ‘식민지시기 조선’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에 강제 합병되기 2년 전 태어난 그의 삶은 일본의 식민정책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그는 일본이 새롭게 구획정리한 도시에서 성장했고, 일본이 근대적으로 개편한 교육제도에 따라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전문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일본이 개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학과목을 공부하고, 일본어를 필수로 배웠다.
20대의 김유정은 조지야, 다카시마야, 미츠코시 등 일본 백화점들이 들어선 경성의 근대적 거리를 걸으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카페에 들러 일본식 이름을 내건 조선 기생들과 맥주를 마시는가 하면 일본어로 번역된 세계문학 서적들을 읽으며 문학을 이야기하고 근대의 우울함을 논했다. 1930년대 조선 문화를 이끈 신세대들은 김유정처럼 식민지 조선이 시작되던 무렵 태어나서 성장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일본어에 능숙해서 일본문화를 거부감 없이 쉽게 수용할 수 있었고, 근대적 일본문화와 더불어 성장한 탓에 일본과 일본인에 익숙했다. 그들은 조선과 일본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 존재였던 것이다. 기억할 만한 조선적 전통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있어서 조선의 기억은 고향에 대한 기억과 중첩되고 있었다.
김유정의 ‘동백꽃’(1936)은 이 점에서 흥미로운 소설이다. 강원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의 키워드는 ‘짝사랑’이다. 그러나 그 짝사랑의 표현방식이 참으로 과격하고 투박하다. 연모의 감정을 상대가 몰라주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소설 속 점순이라는 소녀는 자신의 수탉을 데리고 가서 상대 소년의 수탉에게 애꿎게 싸움을 거는 방법으로 상대 소년에게 연모의 감정을 전한다. 시골에서 자라 농사일 돕기에 바빴던 점순이인 만큼 하얀 손수건을 살짝 떨어트린다거나, 사랑의 시를 곁들인 연애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세련된 연애 감각 따위는 익힐 틈이 없었던 것이다.
김유정은 수탉 간의 대리전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연애소설 같지 않은 투박한 이 연애소설에 ‘동백꽃’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서 동백꽃은 겨울에 피는 붉은 색깔의 그 유명한 꽃이 아니라, 김유정의 고향 강원도에 주로 서식하는 생강나무 꽃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다. 김유정에게 동백꽃은 언제나 고향 강원도에 피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었으며, 그 꽃의 알싸하고 화한 향이야말로 고향의 냄새였다. 그래서 동백꽃이라는 용어를 떠올리는 순간, 투박하고 직설적이지만 정겨운 고향의 풍경과 정서가 한꺼번에 그의 기억을 헤집고 솟아오른 것이다.
1930년대의 김유정은 나라와 기억할 전통은 없어도 돌아갈 고향은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를 사는 우리는 나라와 기억할 전통은 있지만 돌아갈 고향은 없다.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첫 번째 대국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하면서, 현대과학의 가공할 힘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나라와 고향과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인문학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 조광(朝光) 1936년 5월호에 실린 김유정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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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
출처
:
매일신문 2016.03.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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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 김유정의 ‘동백꽃’과 인공지능 ‘알파고’
새벽애(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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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3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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