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 설치
안희연
영혼을 증빙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일어선다
오늘 나는 피망을 요리할 것이다
저대로 두면 비참하게 썩어버릴 테니까
그래도 접시에 담아두면
바라볼 수 있는 무엇이 되니까
장비를 챙겨온다
내게 주어진 거라곤 플라스틱 빵칼뿐이다
칼이 없으면 빵칼로 썰면 되지!
울퉁불퉁해도 썰리긴 썰린다
여기서의 핵심은 피망을 피멍으로 오독하지 않는 일이다
썰면 썰리는 시간이 있다는 걸 믿는 일이다
계수나무 바람에 흔들리듯이
피망을 썰면 무엇이 되나
썰린 피망이 되지
썰린 피망은 무엇이 되나
뭐라도 해보려던 피망이 되지
뭐라도 해보려던 피망은 무엇이 되나
어쩔 수 없는 피망이 되지
어쩔 수 없는 피망은 무엇이 되나
어쨌거나 피망이 아닌 것은 아닌 피망이 되지
그다음은?
그다음은?
노래하지, 계수나무 바람에 흔들리듯이
피망의 풋내를 사랑해
고추과科 피망의 맵지 않음을 사랑해
피망 나무에도 꽃이 맺힌다는 사실을 알아?
피망의 꽃말은 허풍쟁이
영혼을 증빙하라는 독촉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큰 눈을 끔뻑거리며 구석으로 굴러가 숨는 나의 피망을 사랑해
이건 뭘 만든 거예요?
장르가 뭐지요?
아, 이건 제 영혼이라는 건데요……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역시, 절망은 계단을 만들며 오지 않아
물결의 시작
1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누군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살려줄게요, 하지만 심장은 이것뿐
그는 그것이 살인자의 심장이라 했다
대가 없이 줄 수 있으나 기다려줄 시간은 많지 않다고
나는 다시 살고 싶은가
지붕 없는 집으로 되돌아가
쌓인 눈을 치우고 밥상을 차릴 힘이 남아 있나
게다가 그것은 살인자의 심장 아닌가
눈빛이 서늘하게 돌변하고
내 안에서 내가 은밀히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를 일
그래도 한번은 쓰다듬고 싶었다
죽은 나의 곁을 맴돌던 개의 머리
저 축축한 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나를 부축해 집 쪽으로 걷고 있었다
2
한 사람은 어떻게 물결이 되는가
물속에서 흔들리는 나무와 물 밖에서 흔들리는 나무는 어떻게 포개지는가
내 안에 든 것이 누구의 심장인지는 몰라도
삶은 내가 그 안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
내가 있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심장의 주인이여 들려줄게요,
담장 너머 흐드러지게 핀 꽃의 이름이 개미취라는 것도
적이 가까워올 때 타조가 모래에 얼굴을 묻는 건 공포 때문이 아니라
모래 속에서 적의 동선을 예민하게 감각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내일도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3
그래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기 당신 집 맞아요?
어느 밤,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 낯선 이에게는
미간을 가리켜 보일 것이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미간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멈추질 않아요
어떻게 살 거냐고 묻지 마세요
어떻게 살아 있을 거냐고 물으세요
오늘도 무사히 하루의 끝으로 왔다
나의 범람,
나의 복잡함을 끌어안고서
* 윌리엄 포크너.
빵칼로 쓰기
요즘, 나에게는 칼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칼은 흉기도 무기도 도구도 될 수 있는 사물이다. 애초에 나의 삶에 흉기를 들일 생각은 해본 적 없으니 내가 원하는 칼이란 무기이거나 도구로서의 칼일 텐데, 지금 내겐 무기도 도구도 못 되는 어리숙한 칼만이 주어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어떻게 칼날을 갈아야 하나, 고도의 기술력과 끈기로 칼 다운 칼을 제작하는 무형문화재 선생님이라도 찾아뵈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다. 순하게 누워 있으려고만 하는 문장의 각도를 가파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맘속으론 언제나 에베레스트를 꿈꾸지만 현실은 동네 뒷산도 못 되는 나의 문장들을 사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쓰다 말고 방치된 페이지들만 무섭게 불어나는 중이다. 단어나 문장, 단상을 적어놓은 페이지들은 제법 많은데 막상 그것을 한 편의 시로 일으키자니 물먹은 장작처럼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온몸을 풍덩 빠뜨리고 싶은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젖고 싶은데…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영혼을 증명하라는 재촉 전화는 계속해서 걸려오는데 칼 다운 칼이 없으니 맨손으로 애꿎은 흙만 뒤적이다 제풀에 지쳐 주저앉을 수밖에.
그렇게 여름을 통과 중인 어느 날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는데 바로 앞에 선 여성분의 타투에 시선이 갔다. 앞뒤 간격이 밭았고, 오른쪽 팔뚝 뒤편(내 시점에서는 시야의 정면)에 타투가 그려져 있어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마음 안쪽에서 막혔던 물길이 터졌다. 왼편에 작은 점이 나 있고, 그 점과 다정하게 눈 맞추는 물고기 한 마리를 새겨 넣은 그림이었다. 지름 2~3밀리미터 정도 될 법한 작은 점이었지만 신체적 결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 감추거나 지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그 점이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점에 상응하는 새로운 형상을 고안해 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 모습은 나를 끓어오르게 했다. 존재와 존재가 마주보는 장면.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나는 다급히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점과 물고기의 대화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완벽한 시를 원하는 거야?”
“아니, 완벽한 시보다는 온전한 시를 쓰고 싶어. 내가 실리는 시.”
“네가 실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데?”
“음…… 완결되지 않아도, 좀 미숙해 보여도, 읽는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겠고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러니까…… 피망 같은 것?”
“피망이 어때서?”
“피망은 원래 고추과科인데 고추의 고추다움하고는 거리가 멀지. 고추의 세계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취급될 수도 있을 거야. 어쩐지 겁도 많고 여려 보이는 인상이랄까. 피망의 불어 발음은 피멍에 가깝다는데 그것도 좀 웃기지 않아?”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다시 새 창을 열어 시의 첫 문장을 썼다. ‘칼이 없으면 빵칼로 쓰면 되지.’
시를 쓰는 동안 이런 마음들이 다녀갔다. 상상 속에선 집채만 한 공포이고 불안이겠지만 접시 위에 올려두면 별거 아니야. 무딘 문장으로만 말해질 수 있는 진실도 있겠지. 너의 한계 또한 너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마주 봐. 점과 물고기처럼. 점과 물고기처럼.
하지만 계속되는 마인드컨트롤과는 달리 시의 결말은 조금도 긍정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곳이 좌표평면 상의 나의 현재 위치일 것이다. 그 말인즉 이 시의 결말은 내일이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어쩌면 시를 끝맺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환상일지도 모른다. 시에는 맺음만 있을 뿐 끝은 없다. 그래도 어쨌든 잠정적으로나마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결말이 어떻게 바뀌든 한 손에는 빵칼, 한 손에는 피망을 든 내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