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더'전이 열렸던 그라운드갤러리 공간에서 김범의' 바위가 되는 법' 전시가 한창이다
작품 앞에 서서 작가의 메시지를 상상하며 갸우뚱
그리고 제목을 확인하고 나면 내내 웃음이 떠나진 않던 전시
이렇게 발칙할 수가
이렇게 상상력이 기이할 수가
이렇게 해학적일 수가
김범 작가 작품은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보면서
한국의 데미안 허스트 아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데미안 허스트가 자본주의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대규모 투자를 받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김범 작가는 소박한 연필과 종이만으로도 관람자를 놀라게 하고 웃게 하고 어이없게 만든다
이 작품을 처음에 진지하게 다가갔다가
어이없어 웃고 났더니 김범이란 작가의 해학과 작품 방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공간을 차지한 작품이 분명한데 그것도 제목이 떡하니 '풍경'이라 붙어있는데
어디에도 이미지는 찾아볼 수없다
푸른 하늘을 보세요
이곳엔 거리의 나무들이 있답니다
강을 바라보세요
한참을 웃다가 어느새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이 캔버스 안의 하늘과 나무 그리고 흐르는 강물을 상상하며
이미지를 만들어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참 묘한 경험이다
이 작품은 <두려움 없는 두려움>이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품전에서 바닥을 뚫고 비죽 얼굴을 내민 작품이 생각 나
리움미술관은 바닥도 벽도 수난이 많네 했다
이 작품은 실제 벽을 뚫고 나오진 않아 다행이다
이 작품은 사나운 개가 난폭하게 벽을 뚫고 나온 듯 하지만
우리가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작가의 상상력에 우리가 살짝 놀라는 시늉만 해도 되니까 말이다
이 작품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작가의 수많은 해학을 발견했던 터라
이건 분명 사자나 그와 비슷한 맹수를 단순한 평면으로 나타낸 것일 뿐이지만 뭔가가 있을 거야 하며 다가갔는데
반대편에 서 있는 짠딸의 눈이 이미 푸하하 하며 웃고 있다
뭐지? 하며 나도 얼른 반대편으로 건너갔더니
세상에, 이렇게 친절하게 아니, 적나라하게 사자의 장기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건 아마도 내부를 표현했을 테고 그럼 외부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자머리의 갈퀴, 가죽, 꼬리 즉 사자의 외부는 이렇게 한켠에 잘 놓여있다
그것도 분리되어......
이 작품이 전시된 방 모습이다
몸체(내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외부(가죽 갈퀴 등)를 잘 개켜두었다
그러니 자꾸만 웃게 되고 무한 상상을 하게 된다
오늘 이 전시회 오길 잘했는 걸 하는 마음이 전시장을 나설 때까지 계속된다
작가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3개의 평범한 오브제
뭐~~ 다리미와 라디오 그리고 주전자네 하며 그냥 지나치려다가
제목을 보면 또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
제목이 이러니 가던 길 다시 되돌려 자세히 볼 수밖에요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이라는 작품이다
실제 정지용의 시를 읽어주면서 설명하는 교육과정이 담긴 영상이 있어 또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진지함을 볼 수 있다
'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위 두 작품 역시 교육과정이 담긴 영상이 있다
우리 인간도 역시 이런 이념교육으로 지배당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앞에 칠판이 있고 모니터의 영상으로 교사가 교육 중이다
나란한 의자에 앉은 학생은 사람이 아닌 사물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이다
이 사물들은 현재 자신들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교육을 통해 개인의 개성과 다양한 정체성이 획일화되고
사유를 하기 전에 이미 정의되어 버린 의미만 학습하게 되는 것에 경고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캬~~
분명 평범한 백자청화로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스피노사우르스가 그려져 있는 것 보소
조선사람들은 이미 쥐라기의 생태계를 다 알고 있었나 보네 하며 그저 웃지요
인간은 혼자일 수 없어
인간관계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얽혀있는데 멀리서 보면 하나의 물체로 보인다
이 영상은 <노란 비명>이란 작품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이다
제목이 노란 비명
그야말로 다양한 노란색을 만들며 다양한 비명을 질러대며 캔버스에 붓을 그어댄다
절망에 찬 비명, 공포가 담긴 비명, 후회의 비명 등등
수없이 많은 상황의 비명을 들어야 하니 내 목이 쉰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제목 < 서 있는 사람>
발자국 만으로 서있는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었으니 가성비 높은 그림이다
단순한 음영만으로 산수화를 표현했나 보다 하며 다가가 제목을 보곤 또 푸하하
제목은 < 현관 열쇠>이다
자기가 설정한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봤을 때 그 사물은 이미 본래의 모습을 잃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형상화 된다
이 밖에도 자동차 열쇠, 서 있는 여인, 누드, 무제 등 작가의 다양한 시점으로 본 작품이 함께 있는데
어느새 우린 원래의 모습을 찾아내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하 이건 이거였구나 하며 자신의 추리력에 만족스런 점수를 주고 미소를 짓는다
이번 전시는
작가 김범의 1990 년대 초부터 2010년 중반까지의 작품으로
초기의 회화나 해외소장품 등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한다
소박한 캔버스에 연필로 간결하게 터치한 작품들이 주는 여운은 절대 소박하지 않다
인간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을 더 진지하게 접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비범한 아이디어가 관람자를 웃게 하고 사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