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계 장날
남은 두 달을 채우면 한 해가 저문다. 인디언의 십일월은 이렇게 불린단다. 체로키족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테와푸에블로족은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위네바고족은 ‘작은 곰의 달’, 아라파호족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키오와족은 ‘기러기가 날아가는 달’, 모호크족은 ‘많이 가난해지는 달’ 등이다. 다른 달도 그렇지만 십일월에 붙여진 멋스러움과 운치가 깃든 이름이었다.
십일월도 끝자락이다. 앞 단락은 4주 전 십일월이 시작 되던 첫날 ‘맑은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글의 일부다. 나는 그 글에서 법정 스님과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을 들면서 맑은 영혼을 지닌 분들이라 했다. 내일이 지나면 섣달이다. 주중 수요일 정시보다 퇴근을 조금 이르게 했다. 내가 종신 총무가 되지 싶을 어느 퇴직자 모임 자리를 주선하는 서신을 부치기 위해 우체국에 들렸다.
우체국 용무를 보고 바로 귀가하기엔 아직 해가 설핏 남았더랬다. 그래서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평일 교외로 나가기는 드문 예였다. 내가 북면으로 향한 것은 감계로 가기 위함이다. 신도시 감계에는 4일과 9일이면 닷새 만에 돌아오는 오일장이 선다. 예전 팔용동에 있던 장터가 상가와 택지로 개발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외곽으로 옮겨갔다.
우리 집에서는 웬만한 푸성귀들은 자급자족이 되어 굳이 마트나 시장을 찾을 일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무거운 짐은 내가 나르고 있다. 가을 들어 시골에서 대붕과 단감이 넉넉하게 와 과일을 살 일도 없다. 고구마도 지인 텃밭에서 캐다 놓은 것이 제법 된다. 양파나 마늘도 시골에서 보내온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다른 소소한 생필품이야 가끔 시내 할인 매장에 들려 해결하면 되었다.
나는 자투리 시간 오일 장터를 가끔 찾는다. 창원 도심에 위치한 상남 장도 감계와 같은 날이지만 너무 번잡해 잘 찾질 않는다. 1일과 6일은 지귀장이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찾는다. 장터 구석진 자리에서 파는 부추전으로 곡차를 들기도 한다. 2일과 7일 소답 장터에서는 국밥집에 들렸다. 3일과 8일은 진해 경화장이다 근동에서 규모 큰 오일장으로 그곳에도 내가 들리는 데가 있다.
감계 장터는 신도시 아파트와 원주민 마을 사이 한시적으로 개장 되었다. 장차 공공 청사가 들어설 부지로 개장 초기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 약간의 충돌도 있었다. 내년 봄이면 지금 자리에서 이웃한 신설학교 부지로 예정된 구역으로 다시 옮긴단다. 그곳도 아파트와 자연마을 인접인데 당분간 학교 설립 계획을 없다고 한다. 시내 고등학교가 수용 인원을 채우지 못해서란다.
시내에서 굴현고개 너머 반시간 채 걸리지 않아 감계 장터에 닿았다. 오후의 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봄 고구마 순을 사려고 들렸을 때보다 상인들도 줄었고 파는 품목들도 적은 듯했다. 그때도 있던 야생화 매장에 들렸다. 가을부터 겨울 사이 피는 사랑초가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괭이밥처럼 생겼는데 처음 보는 꽃이었다. 다른 매장들도 빙글 둘러보았다.
이어 장터 국밥을 파는 곳으로 들렸다. 수구레국밥과 돼지국밥이 주요 차림이었다. 나는 식사에는 관심이 없고 곡차를 한 잔 들고 싶었다. 선짓국에 생탁을 한 병 시켜 자작으로 잔을 지웠다. 컨테이너 실내 몇 개 놓인 테이블엔 장날이면 장터를 순례하며 술을 드는 마니아들이 몇 팀 찾아왔다. 늙수레한 중늙은이들로 장날마다 매 번 들러서인지 주인장 내외와도 안면을 트고 지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장터로 나가 뭘 살까 생각해 보았다. 아까 봐둔 사랑초는 겨울을 넘기면 말라 죽일까봐 사질 않았다. 야생화 정도야 들판으로 나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어물 가게에서 봐 둔 생태를 두 마리 샀다. 마트라면 노르웨이나 러시아 산이라고 원산지 표시가 붙여 있었을 것이다. 느타리버섯과 새송이버섯도 한 봉지 샀다. 생선이나 버섯은 내가 자급할 수 없는 품목인지라. 1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