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江集》중
'동봉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東峰山人書)
"술이 적당하면 주인과 손님을 합할 수 있고 노인을 봉양할 수 있습니다.
술은 가까이 방 안에서 마셔도 좋고,
멀리 천지(天地) 간에도 두루 어그러지지 않으며,
시름겨운 뱃속은 술을 마시면 풀리고,
답답한 가슴은 술을 마시면 편안해져,
흐뭇한 기분으로 천지와 그 조화가 같고,
만물과 그 조화가 통하여 옛 성현이 사우(師友)가
되고, 천백 년이 한가한 세월이 됩니다.
술이 적당하지 않으면 봉두난발(蓬頭亂髮)로 머리를 풀어헤치고서, 늘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추며, 주인과 손님이 절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제멋대로 소리치고,
주인과 손님이 읍양(揖讓)하는 공손한 때에 넘어지고 자빠져서, 예의를 무너뜨리고 의리(義理)를 없애며 절도 없이 행동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까닭 없이 제 마음대로 눈을
부라리다가, 혹 싸움이 일어나서 작게는 몸을 죽이고,
작게는 집안을 망하고,
크게는 나라를 망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주공(周公)이나 공자가 마시면 정신이 흐려지지 않고 술이 좋지만, 진준(陳遵)이나 주의(周顗)가 마시면 제 몸을 죽였으니,
그 득실(得失) 사이에는 터럭만 한 차이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타고난 바탕이 중간 수준이하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잡고, 술을 절제하면서 마시지 않으면 좋은 술맛이 사람을 변하게 하여, 심신이 더욱 위태롭고 혼란하다가 점점 술주정을 하는데 이르면서도, 자신이 주정하는 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선비로서 뜻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은 응당 몸소 신칙(申飭)하고, 안으로 반성하여 혼란의 뿌리를 막고 끊는 노력을 보통 사람보다 배나 더해야만 술의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술을 경계하는 말은
書經에는 “주고(酒誥)”가 실려 있고,
詩經(시경)에 “빈지초연(賓之初筵)”이 있으며,
양자운(揚子雲)이 이로써 주잠(酒箴)을 지었고,
범노공(范魯公)이 이로써 시를 지었으니,
제가 어찌 조용히 술잔을 잡고서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사례(鄕射禮)에서 進退하고 읍양(揖讓)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음이 약하고 덕이 적은 사람이라 술맛을
탐닉하다 절제하지 못하면,
마치 초파리가 깃털 하나를 짊어질 수 없는 것처럼
저 자신 마음이 산란해져서 술을 못 이기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술을 몹시 좋아하여 중년에 구설에
오른 적이 많았기에 제멋대로 주정뱅이 짓을 하여
세상에 영영 버림받은 사람이 되는 것을 제 분수로 여겼습니다.
몸은 외물(外物)에 끌려가고 마음은 육체에
부려져서 정신력은 예전에 비해 절로 줄었고
도덕은 처음 마음을 날로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점점 부덕(不德)한 사람이 되어 집안에서 마구 주정을 부려 어머님께 수치를 크게 끼치고 말았습니다.
孟子는 “장기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父母님의 봉양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不孝라
하였거늘, 하물며 술주정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술이 깨고서 스스로 생각건대,
그 죄가 삼천가지 중의 으뜸에 해당되니,
무슨 마음으로 다시 술을 들겠습니까.
이에 천지(天地)에 물어보고 신명(神明)께 절하고
제 마음에 맹세한 뒤에 어머님께 아뢰기를
“지금 이후로는 君父의 命이 아니면 감히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한 까닭은 술 취하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에게 제사지내고 제육(祭肉)을 받으면 음복(飮福)이 있고,
축수(祝壽)를 올리고 술잔을 돌려받으면 맛 좋은 술이 뱃속을 적셔도
정신이 어지럽지 않는 경우는, 제가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저의 뜻이 이와 같으니,
선생께서 비록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미 말해놓고 식언(食言)할 수 없는 사정이 이와 같습니다.
제 말은 어길 수 있을지라도 제 마음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제 마음은 속일수 있을지라도 신명을 기만할 수 있겠습니까.
신명은 기만할 수 있을지라도 천지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무시한다면 어느 곳에 이 몸을 두겠습니까.
더구나 어머님께서 저를 기르며 늘 술을 줄이라고
하시다가 제 말을 듣고 얼굴에 기쁜 빛을 보이셨으니,
술을 끊겠다는 맹서를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아아! 술 깬 굴원(屈原)과 술 취한 백 륜(伯倫)이 본래 둘이 아니고, 맑은 백이(伯夷)와 너그러운 유하혜(柳下惠)는 결국 하나의 道입니다.
선생께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저를 억지로
허물하지 마시고 제가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 가부(可否)를 한 글자로 분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전기 奇人,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술을 매우 좋아했던 애주가 남효온은 술의 미덕과 해악으로 풀어본 자신이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편지를 통하여 밝혔다.
남효온이 동봉산인(東峯山人) 김시습에 보낸 편지에서 술을 끊었다고 선언한 남효온에게 김시습이 아주 끊지는 말고 적당히 마시라고 간곡히 권한 데 대해 답한 것이다.
[출처] 시름겨운 뱃속은 술을 마시면 풀리고 - 의 방
/ 작성자 승균이
<게시자 追錄>
소설가 李外秀 씨는 그가 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말아먹은 8할은 술입니다
인생을 되감기 할 수만 있다면 알코올 중독으로
술에 쩔어 살던 한 시절을 가위로 싹둑 짤라서
소각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시작할 땐 으레 한두 잔이나
마시면 갑자기 취하기 쉽고
취하면 본마음 어두워지네
백 잔을 기울이며 정신없이 취하여
거친 숨 몰아쉬며 무진무진 마셔대네.
- 다산 정약용이 25세 때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쓴 시의 일부. 다산은 당시로는 매우 늦은 나이인 28세(1789년. 정조 13년)에 과거 급제하였다고 합니다.
첫댓글 캬~.
이회장님께 딱 맞는 술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이고 도움이 많이되는 술에 대한 교훈입니다.
긴강하십시요.
이제 술도 마음대로 못하니 사람이 점점 작아만 지는 것 같아 기분이 쫌 그렇습니다.
유투브에서 하모니카 연주 실력이 독보적인 존재라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