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스펙터클, 전광판
김현관은 현대 도시풍경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전광판에 주목한다. 그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위용을 자랑하는 전광판이 현대인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를 강요하는 권력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광판의 과잉정보의 폭력성과 무기력하게 배회하는 현대인을 표현한 컬러사진이 전시된다. (02-733-6469)
명동밀리오레(대우차 광고)_2008, digital rambda c-print, 96 X 96cm
2000년 이후로 지금까지 광화문과 종로, 그리고 청계천 등 서울시내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적으로 체인화된 스타벅스 커피점과 유럽식 고급 레스토랑을 지하에 구비한 파이낸스센터도 광화문 대로변에 포진하고 있다. 게다가 청계천과 서울시청 앞 광장이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공간과 놀이터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광화문과 종로거리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것은 현대 최첨단 전자기술로 한껏 무장한 LED전광판이 건물 곳곳에 자리 잡고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번쩍거리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파리를 처음 본 발터 벤야민에게 아케이드가 강렬한 스펙터클이었다면, 지금은 디지털 전광판이 아케이드 자리를 대신해서 가장 인상적인 광경으로 비춰지고 있다. 서울 시내를 여유롭게 걸어 다니거나 승용차를 타고 신호등에 잠시 대기하고 있으면 강렬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전광판이 서울을 점령하고 도시의 정체성이 되어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서울시청(경기도 공익광고)_2008, digital rambda c-print, 96 X 96cm
도시의 주인이 되어 버린 전광판은 오직 한 방향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소통을 원하고 있다. 우리들로 하여금 백화점으로, 대형마트로 어서 발걸음을 재촉하도록 자극적인 시선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도심 구석구석에 난무하고 있는 이미지의 과잉과 정보의 폭력으로 인하여 우리들은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현실과 사유를 배제한 채 부유하는 이미지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며 오늘도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명동A1(Garden5 광고)_2008, digital rambda c-print, 96 X 96cm
도심 속에서 “나는 너를 보고 있다.”라고 노골적으로 밝힐 수 있는 권한은 오직 전광판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가시성과 비가시성에 의한 ‘시선의 비대칭’으로 인하여 권력을 획득한 전광판이 쏟아내는 이미지와 텍스트에 의해 우리들은 그저 소비자로서 또는 의무자로서의 역할만 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이렇게 도심 내 건물 구석구석에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는 전광판은 시시각각 욕망과 소비를 강요하는 유혹의 손짓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전광판은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부여한 질서와 권력을 현대인 스스로 내면화하면서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지배하는 권력장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번 작품은, 도심의 권력장치로 자리매김한 전광판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Kyklops의 외눈이 되어 현대인으로 하여금 미세권력을 내면화하고 정체성을 상실한 채 동시대를 살아가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사진적 시각으로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 작가노트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