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1. 큐티
마태복음 2:7 ~ 12
아기께 경배
관찰 :
1) 헤롯의 괴악한 술수
- 7절.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헤롯의 의도는 그 아기에게 경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아기를 죽이고자 함이었습니다.
- 8절.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교활한 헤롯의 술수입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나이스하게 마치 헤롯 자신도 그 아기에게 경배하고픈 것처럼 대했습니다. 교활한 헤롯은 순진한 박사들을 이렇게 속였고, 유대인의 왕으로 오는 아기를 죽이고자 하는 그의 모략이 발동되었습니다.
2)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
- 9절.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있는지라” => 헤롯의 말을 듣고 가는 박사들을 동방에서 보던 별이 앞서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창조과학회의 김명현 교수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당시 팔레스틴에서 이와 같은 움직임을 보인 별이 목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10절.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왕중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께 경배하기 위한 기쁨입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마땅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 중에 이렇게 준비된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3) 동방박사들의 경배
- 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 “집에 들어가” 태어난 아기 예수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장소는 이제 말구유가 있는 마굿간이 아닙니다. 아기를 낳은 후 집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있고, 그곳으로 동방박사들이 와서 예물을 드리는 장면으로 생각해 왔는데, 사실 해산 직후에 그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오고, 경배하고 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한 상황입니다. 아기를 낳은 후 좀 안정이 된 상황에서 아기를 더 이상 말구유에 누일 수 없기에 어떤 조치가 취해져 집으로 옮겨진 뒤에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여기서 아버지 요셉의 존재는 스크린 처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셉 곧 남자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 그리고 바벨론 포로,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지는 14대의 계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여기에서 기록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이 준비한 최고의 예물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암시하는(황금은 왕, 유향은 제사, 몰약은 죽음) 것으로 아기에게 드리기에는 부담스러운 의미들의 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물로 말미암아 가난해서 말구유에 아기를 놓을 수밖에 없던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으로 피신할 수 있는 재정적인 보탬이 되었을 것입니다.
4) 동방박사들의 귀환
- 12절.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들어가니라” =>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하심을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순수한 이들의 경배가 다른 용도에 쓰이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탄의 악한 궤계를 막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헤롯은 궤계를 꾸몄고, 동방박사들을 속였지만, 주님의 역사는 그들이 헤롯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가르침 :
1) 동방박사들의 순수한 경배를 더러움 음모에 사용하려는 헤롯 vs 이 술수를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동기의 순수성입니다. 우리는 끝을 알 수 없기에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다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선하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의도는 그 과정이 아무리 괜찮은 듯이 보여도 하나님이 결코 기뻐받으시지 않게 됩니다.
2) 창 3:15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태는 구약의 말씀들을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많이 인용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실 열심히 듣고 배웠던 듯싶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글들 속에는 구약의 핵심 메시지가 면면하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께 경배할 때, 그 곁에 있는 마리아는 언급을 하지만 의도적으로 요셉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그러한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마 1:23에 인용한 이사야의 글에 대한 성취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3) 황금과 유향과 몰약 세 가지 예물은 모두 예수님의 생애를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이렇듯이 하나님의 철저한 준비와 계획 속에서 오셔서 그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성취하는 자인가? 인생을 허비하는 자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적용 :
1) 동방박사들의 순수함을 악용하려던 헤롯의 의도는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으로 허탕을 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완악함은 3살 아래의 많은 사내 아이들을 죽이는 잔인함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와 사탄의 궤계가 하나님의 모략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 역시 하나님을 향해서 순수함을 견지하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잔머리를 쓰면서, 나의 유익과 본전을 계산하며 사는 자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 김태수는 보다 순전해야 할 것입니다. 뱀의 해에 뱀같이 지혜롭되 비둘기같이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2) 창조주가 아기로 오셨습니다. 가장 위대하신 분이 가장 연약한 존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역설 중의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약함으로 강함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한다는 것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주님의 연약함으로 승리하시는 그 길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됨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경배함이 오늘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3) 주님이 이 땅에 오셨고, 그 은혜로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오늘 내가 충만해 지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 경배하고, 나의 중심이 주님께 드려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