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소나기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점점 생각나는 소설이다.
특히, 홀로 되고 나서는 특히 더하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마구 뛰어 나가 소녀를 찾고 싶다.
황순원의 유명한 단편 <소나기>에는 들꽃 이름이 여럿 등장한다.
갈꽃, 들국화, 싸리꽃, 도라지꽃, 마타리꽃, 칡꽃이 그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해는 1953년. 아직 국가표준 식물명이 확정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지방에 따라 달리 부르는 식물 이름에 약간의 오차가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갈꽃’은 갈대꽃이거나 억새꽃 중 하나일 것이고, ‘들국화’는 산국이거나 쑥부쟁이거나 벌개미취거나 구절초 종류일 가능성이 있다.
소설에 소년과 소녀가 들꽃을 꺾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 꽃이 뭐지?”
하고 소녀가 묻자, 소년은 자신 있게
“마타리꽃”
이라고 대답한다.
마타리…. 언뜻 외래어처럼 들리지만 우리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름다운 여성 스파이로 알려진 ‘마타하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마타리가 꽃대를 밀어올리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면 햇볕 잘 내리쬐는 산길이나 풀숲에서 쉽게 눈에 들어온다.
긴 줄기는 늘씬한 몸매를 좀 봐달라는 듯 당당하고, 상부에 자잘하게 모여 핀 꽃은 노란 양산을 거꾸로 펼친 듯하다.
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꺾일 때쯤, 들판에 영근 나락 알이 보일 때쯤 마타리는 꽃을 피운다.
마타리꽃은 내가 사는 전주에서는 8월 중순이 절정이다. 이 꽃을 발견하면 나는 혼자 신음 같은 소리를 중얼거린다.
“아, 가을을 준비하라고 마타리꽃이 피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