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2월1일 * *까페에 올렸던 글)
육백만불의 딸아이
우리딸아이는 21살의 육백만불 아가씨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딸아이에게 육백만불의 돈이 들어갔다는 얘기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딸아이는 우리나라에서 20 여명 밖에 않되는 희귀한병입니다
전세계에서 아마 2천여명이 되는줄 알고 있읍니다.
현재 한달 병원비가 30,000,000원입니다.
일년이면 30,000,000 * 12 = 360,000,000원.
십년이면 3,600,000,000원.
이병이 세상에 나온지가 17년이 되었으니까
17 * 360,000,000 = 6,120,000,000원입니다. ( 개략 6,000,000 $ )
의료보험이 된것은 한 6~7년 되었읍니다.
약이 나오기전의 아이들은 모두 천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이 나왔어도 엄두를 못내어 환자들 거의 하느님곁으로 갔습니다.
이제 의료보험이 되어 20%. 본인부담액이 매월 5,000,000원입니다.
(일부국가의 보조금도 있습니다.)
그 딸아이가 오늘 대학교에 합격하였읍니다.
"우리 예쁜 딸아이를 유치원만 이라도 다니게 하여주십시요. 하느님! "
간절하게 기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딸아이가 대학에 합격하였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오고. 이제 어였한 대학생이 된것입니다.
모두 아내의 헌신과노력이 이루워 낸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읍니다.
하느님 정말 감사 합니다.
그동안의 어려움.
어떻게 필설로 표현하겠읍니까, 만은,
이제 봄눈 녹듯 모두 사라져 버렸읍니다.
일부 우리에게 힘들게 하였던 사람들.
그리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람들.
그들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힘들게하는, 멍애를 지게하는, 또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참에 가슴에 응어리졌던 모든 것들을,...
내가 다 짊어지고, 감당하고, 용서하고, 모두 잊어버리려합니다.
그리고 잘 대하여 주셨던 분들의 고마움은 평생 기억속에 남아 있을것입니다.
세상은 살만하고 선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내는 절대로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사람들에게 하소연하거나, 동정심으로 구걸하거나, 불평불만하거나등등..
단 한번도 어렵다는 애기들을 하지도, 듣지도 않았습니다.
역경과고민.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아내는 항상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표정관리를 하는것인지? 독한것인지?
가까운 주변 사람들 조차도 이런 상세내용들을 아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마, 내가 이렇게 글을 쓴 줄 알면 아내는 많이 실망 할 것입니다.
많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국회, 경제기획원, 복지부, 구청, 동사무소, 학교, 기타사회단체, 등을 찿아다니며,
장관,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그리고 직접 실무를 담당하시는 분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정말로 내가 보기에도 아내는 딸아이의 대단한 엄마였습니다.
아내는 가슴과 마음을 움직여
그분들 스스로가 자기 일 처럼 찿아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이 더 도와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고, 최선의 방법등을 제시하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딸아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법이 생겼고, 법이 개정되었고,
의료보험에 포함 되었고, 부가세, 관세면세, 등등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워냈습니다.
수십만 희귀병을 앓고있는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관련법의 태동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우리딸아이는 다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 딸아이가 있어 사랑과 용서를 알았습니다,
이 딸아이가 있어 세상을 바로 살게 하여주었습니다.
나를 낮추고 겸손함을, 검소함을, 감사함을 알았습니다.
처절함에서도 다시 일어 설 수있게,
내 삶의 무게를 감당 할 수 있게 하여주었습니다.
이제보니 딸아이는 나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준 하느님의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
가족, 친지, 친구,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분들에게
그동안 제가 소통하지못하고, 소홀하였던점 너그러히 용서바라옵니다,
아직은 완성되지못한 딸아이를 위해서도 다시한번 기도를 해주시기 바라옵니다.
내 나이 거의 60 에 육박하여 가고있습니다.,
이제 부터는 돈도 더 들어야 하고, 더 힘들어 질 것입니다.
아니 돈이 더 들어 가야하는 시작점 에 불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 설 것입니다. 아니 꼭 일어서야만 합니다.
떳떳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위하여,
그동안도 그래 왔듯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추 하지않게 버티어 나갈것입니다.
한번 더 가슴으로 진실하게 다가서서 아쉬움없는 삶을 지탱 할 것입니다.
꼭,
딸아이를,
보란듯이 세상에 내어 놓을 것입니다.
의외로 아내가 하는 사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읍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2007년2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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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년후 (2011년 4월 7일)
아내의 억척스러움과 이모의 도움으로 딸아이가 oo 대학교 음악학부 성악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동안 딸아이에게 배움과 도움을 주신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4년을 함께한 이모, 딸아이의 과동료들,...
그리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딸아이를,
사회의 일반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는 그릇이 덜 형성되어 사회에 내놓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얼굴이 많이 밝아지고 건강하게 다녀준 것 만으로도 다행한일입니다..
웃음과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도 감사를드립니다.
우여곡절 격고격고, 많고많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모든것이 다 잊혀 질 것입니다.
좋게만 보이고 좋은것 들 만 보입니다.
요즘 다시 뜨고 있는 어느 그룹가수의 리더가 인텨뷰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장애를 가지고있는 아이가 있는데,
아내의 소원은 그 아이 보다 하루를 더 살고 싶다."고.....
장애아이를 둔 부모님들의 절실한 마음일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랑으로 편견없이 살 수 있는 사회.
그러한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내 가족이고 내 이웃입니다.
부모님들도 그들을 두고 편안하게 안심하게 갈 수 있는 사회가 꼭 올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가 오기를 다시한번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4월 7일
첫댓글 앤드루님

드립니다.
인간사 인연 중에 가장 중한 인연은
바로 자식과 부모의 인연일 것입니다.
옆지기님의 따님에 대한 헌신과 희생과 사랑
넘 감동 감동입니다.
자식 낳는 날 오장이 모두 깨져 풀어진 듯한
몸과 마음 부서져 까무라쳐 피 흘려 낳은 자식이
희귀병이란 것을 알고 얼마나 찢어지는 2중의 고통을 느끼셨을까요.
그러나 운명이라 여기시고 애지 중지 각고의 어려움을 이기시고
대학까지 졸업을 시키셨으니 넘 장하시고 훌륭하십니다.
늘 젖은 자리에 누우시고 따님의 고통 대신 받으시며
앉으나 서나 마음 졸이시며 마음 놓지 않고 긴긴 밤 잠 못이루시며
키우신 따님에 대한 사랑의 결실 진심으로
앤드루님

드립니다.





친인척 형제보다 주변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답니다.
삶에 무게가 넘 힘들어도 모든걸 용서하시면서
이해하시고 마음을 비우시고 작아도 큰 여유를 갖으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큰 축복이기에 진심으로
따님이시여
부모님에게 더 큰 희망과 꿈을 주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