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국가대표 축구 한중전이 있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기전 3:1 이 되자 중계방송이 갑자기 끊어지고, 급하게(?) 다른 방송으로 대체됐죠.
당시엔 중국이 좀 차이나게 지고 있다 싶으면 생중계고 뭐고 중간에 막 끊어 버렸습니다. CF도 많지 않아서 방송이 지금처럼 세련되지 않았죠.
그런데 그 축구 경기의 여파가 몇분 후 우리 유학생들에게 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중국 대학생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유학생 기숙사로 돌과 쓰레기 등을 던지며, 2층부터 5층까지 유학생 기숙사의 유리창을 모조리 박살을 내고 1시간을 넘게 위협을 하다 돌아갔습니다.
당시 청도대 3호 기숙사의 80% 정도는 한국인이었습니다. 2층 9명의 일본 학생들을 제외한 40여명이 3-6층까지 쓰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야외 응원을 했다던가 자극할만한 짓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8시면 깜깜했던 시절이라 (일부 날라리 학생 빼고) 기숙사에서 전혀 나가질 않았습니다.
축구 경기에 졌다고 유학생 기숙사로 몰려와 위협을 가한다는게 대학생들 같지 않았습니다.
지성의 전당, 중국 대학생들의 수준을 보고... '일본인 보다 더 무서운게 중국인이 아닐까?' 란 생각을 잠시나마 갖게 했었죠.
일본엔 양심세력이란게 존재하고 있지만, 14억 인구의 중국엔 아예 없어 보입니다.
역사왜곡 시도에 목소리 내는 학자 한명도 없는거 보면... 정말 중국에 대한 제 첫인상이 맞는 걸까요?
우리 민족인 조선족 동포 학자들 조차 눈과 귀를 막은거 같습니다.
요즘 청도 구시가지 재개발 많이 하잖아요.
지금 청도 사람들이 말하는 시내는 시정부 청사 부근을 말하겠지만, 예전엔 중산로 부근이 가장 번화가였죠.
국영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줄이 백화점 밖에까지 서 있었고, 물건 구경하다가 물건을 안 사고 돌아서면 뒤돌아서는 순간부터 점원들의 욕을 들었습니다. 정말 욕부터 배웠어요 ㅋ
바로 눈 앞의 물건을 지목해서 꺼내 보여달라고 해도 "메이요" 하면서 꺼내주지도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취사반 배식을 예로 들면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배식자 파워... 배식자랑 친하면 치킨 한 조각, 맛있는 반찬 한 숟가락이라도 더 받을수 있었죠?
배급제 사회에서 배급자(복무원)에게 아첨을 떨어야 좋은 물건을 받을수 있었던 배급 사회에서 벗어나온지 얼마 안 됐을때라 그랬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치 감옥처럼 철창으로 도배한 중국 은행들, 오전부터 일찍 갔는데 기다리다 점심시간 걸리면... 자기들 밥 먹어야 된다고 다 내보내고, 줄서기 리셋 ;;;
점심시간엔 셔터를 아예 내려버렸어요.
줄 서 있는데 전산망 에러나면 나중에 오라하고, 한번 가면 적게는 30분에서 1시간 이상씩 줄을 서야하니... 그렇다고 통장을 안 만들수도 없는 노릇인데, 참 난감했죠.
그땐 새치기도 참 많았습니다.
중국사람들끼리 지인들 서로 앞에 세워주며 아는척 막 끼어들고... 그걸 다들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 나 혼자 속만 끓고, 주택 관리비도 은행납부를 시키니깐 안 올수도 없고...
한국의 은행들이랑 중국의 은행들을 비교해서 한국일보에 칼럼을 쓴 중국인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전 이걸 보고 막 화가 났어요. ㅋ
그 친구가 10여년전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서 책으로 냈었는데요.. 거기 보시면 '한국의 은행들은 일찍 끝나고, 주말에도 안 한다. 하지만 중국은행은 그에 반해 연중무휴' 내용의 대부분은... 우리 입장에선 조금 편파적으로 보일듯한 내용들이 많죠.
사실 이 칼럼이 쓰여지기 몇해전만 해도 중국은행들이 훨씬 이해할수 없는 행동들을 보여줬음에도... 아마 글쓴이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산동 출신의 왕샤오링은 한국 교육부 초청 장학생으로 경희대에서 무료로 공부를 했고, 한국을 신랄하게 비평한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왕샤오링의 한국리포트
한국인이 중국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책을 냈다면?? 아마도 협박을 받을수도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미 추방됐을지도 ;;
가짜 콜라 드셔본 분은 꽤 계시죠? 하지만 KFC 에서 가짜 콜라를 팔았단 사실은 많은 분들이 모르실 겁니다.
청도 유일의 중산로 KFC 에선 가짜 콜라를 팔았고, 제가 알던 중국인 지인들도 콜라를 먹어 본 적이 없으니 항의하지도 않았답니다.
우리 유학생들이 영어로 항의하니 점장이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동문서답... 중국어로 항의하니 캔콜라로 바꿔줌. 그담부턴 우리가 가면 세트에 알아서 캔콜라를 계속 내주더군요.
가봐야 앉을 자리도 없고, 자리 차지한 어른들은 아이들이 대부분인 KFC 어디에서든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다 먹고 나서도 안 나가는 사람이 태반... 그러니 자리는 더 없고
그리고 상점에선 냉장고 안의 콜라와 밖의 콜라 가격이 달랐습니다. 시원한 냉장 콜라가 0.5 원 더 비쌌죠. 북경도 상해도... 당시엔 중국 전체가 그랬습니다.
어젯밤이 불금이었죠 ㅋㅋ 중국에서 같이 회사 다녔던 사람들이랑 공부했던 선후배들 만나서 이것저것 얘기하다 생각난것들 또 적어 봤는데요...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네요. 당시엔 불합리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참 많았었는데...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네요. ㅋㅋ
출장 갔을때 4성 호텔에서 권총 강도 당한일, 한집에서 3번 도둑 들은 일, 북경에서 학교 다닐때 면허증이랑 차번호 세트 600원에 발급, 방학때 여학생들이 중국인들한테 기숙사에서 강간당한 일, 한국 유학생 X비자 발급 대기중 에이즈로 추방 당한 일... 등등
중국에 대해선... 아직도 할말이 많은데, 후배들이 뒤에서 배 고프다고 그만 쓰랍니다. 두서없이 썼지만.. 양해 바랍니다. (_ _) 여긴 찜질방 ;;
첫댓글 그당시 청도 중산로에 서울백화점이드라?한국백화점이드라?CD구매 한적이 있는데 그때가 몇년도였나요?지금은 가물가물.한국노래 찬찬찬~이 유행했을때였는데?
네 제목 바꿨어요 ㅋㅋ 원래 북경에 대한 내용도 좀 적으려고 '중국에 대한 첫인상' 이라 제목 적고 내려오던건데... 뒤에서 밥 먹자고 재촉하느라 북경 얘기 안 적은걸 깜박 했네요 ㅎ
CD 팔던 곳은 제 기억에 중산로에서 바다쪽으로 있었던거 같은데요... 한류스타들이나 엽기토끼, 뿌까 인형들도 같이 팔던 곳, 거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거기 말곤 지모루 시장 근처에 플스 게임 CD 팔던 곳만 기억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