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4년간 강민정 국회의원을 응원해 주시고 후원해주신 분들께 후원회장으로서 저의 마지막 감사말씀과 증언을 남깁니다.
지난 4년의 임기 동안 강민정 의원은 수많은 직책에서 본인의 가치를 입증하며 헌신을 거듭했다. 가는 곳마다 일복이 터져서 잠이 늘 부족했을 게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열린민주당에선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민주당에선 원내부대표와 선관위부위원장, 비례연합당에선 사무총장을 두루 맡아 수고했다. 재임 4년동안 준여당과 제1야당을 2년씩 해봤고 3석 소수당과 180석 다수당도 해봤다.
국회에선 임기 내내 교육상임위를 하면서 2년은 예결위원회와 운영위원회까지 동시에 뛰었다. 인사청문위원도 여러 번 했다. 의원연구단체로는 공정사회포럼, 교육문화포럼, 약자의눈 등 4개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민주당 위원회로는 민생ㆍ노동호민관 '을지로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어디서나 그 직책이 요구하는바를 소리없이 120% 해내는 성품이라 보람은 많았겠으나 쉴 틈은 없었을 게 틀림없다.
강의원은 책임감이 극강이다. 이를테면 본회의에 상정된 수십개, 때로는 백개도 넘는 법안을 강의원은 하나도 허투로 넘기지 않았다. 입법자로서 최소한 뭐가 뭔지를 알고 표결에 임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해서 그 많은 법안 부속서류를 웬만큼 다 봤다는 것이다. 법안처리 본회의를 앞둔 며칠동안은 심야까지 그야말로 눈이 빠지게 법안검토 중노동을 감당했다. 소속상임위 법안이나 정치쟁점 법안이 아닌 본회의 법안 모두를 임기내내 자기일로 살펴본 국회의원이 과거에 몇이나 있었으며 앞으로도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대선때는 비례의원 중 유일하게 교육유세단을 운영하며 전국을 누볐다.
강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도 일하는 장소가 바뀌고 권한이 생겼을 뿐 볼성사나운 권력중독이나 권위의식을 찾을 수 없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국회의원은 열이면 아홉은 '국회의원 되더니 사람 변했다'는 소리를 듣지만 강민정 의원에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강의원에게 국회의원직은 공익을 위한 공공재일 뿐 허세를 위한 신분재가 아니었다. 정치권과 언론계의 유력인사는 물론이고 사회각계의 고위인사나 유명인사와 어울리는 사교성 식사자리를 만들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심지어는 임기 중 공식 해외시찰여행조차 단 한번을 안 다녀왔다.
그렇다고 강의원이 교사출신 티를 못 벗은 다소 고지식하고 소심한 초짜 정치인이었던 건 전혀 아니다. 정반대다. 그는 공익을 위한 정치감각과 정치근육이 남다르게 발달된 386운동권의 맏누이뻘이다. 현장과 조직, 투쟁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논리와 공분, 글과 행동으로 싸움의 선봉에 서서 이끌 줄 아는 용기있는 행동파다. 강의원은 각종 중대노동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갔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섰다. 심지어는 거제 대우조선 도크의 철탑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농성노동자의 사정을 청취했다.
이태원ㆍ김건희 쌍특검법 제정을 위해서는 민주당의원 본청앞 천막농성을 제안하고 동을 떴다. 86일의 농성기간 중 '담임샘' 역할을 하며 100명 넘는 동참을 이끌어내서 이상민장관 탄핵소추과 쌍특검법 제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강민정의원은 서이초사태이후 온몸을 던져 교권보호입법을 선도했다. 선거법 관련해선 병립형 비례대표 회귀를 반대하고 비례연합정치 구축을 외치며 가장 선명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냈다. 그런가하면 이태원참사 분향소에도 150번 넘게 혼자 들려 유가족과 함께한 '찐' 공감과 눈물의 여왕이기도 하다.
강한 원칙과 전략, 책임감으로 뒷받침된 강의원의 정치근육과 정세판단은 이미 민주당의원들 사이에선 정평이 나있다. 강의원은 중대 정치쟁점이 부상할 때마다 가장 치열하게 숙고해서 제일 먼저, 뚜렷한 입장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민주당 의원총회나 의원톡방에서 가장 빈번하게 자기입장을 밝힌 똑부러진 국회의원이었을 것도 안 봐도 비디오다. 워낙 탄탄한 논리로 군더더기 없이 글을 쓰기 때문에 속으로 감탄한 의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남았을 뿐인 대학시절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 희생의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는 고문화재급 강민정 '누님'의 모습에 매료된 의원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정의 이런 독특하고 진정성 있는 정치적 실천 때문에 그가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 의아해한 동료의원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21대국회가 촛불혁명 완성의 시대적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을 그 일원으로서 깊이 반성하는 의미로 결심했다는 불출마의 변 역시 강민정다웠다. 나는 강민정이 큰 정치지도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실망보다는 강의원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기대가 더 커졌다.
지난4년간 강의원은 국회의원의 모든 직무에서 자기몫을 넘는 기여와 책임을 다하며 그 최대치의 체험학습을 축적했기 때문에 4년전의 강민정과 지금의 강민정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정치과정과 입법과정은 물론이고 교육정치와 교육행정을 보는 안목이 훨씬 깊어지고 넓어졌을 게 틀림없고 향후 시민사회와 교육계의 중요한 자산으로 보태질 게 또한 틀림없다. 어떤 일이든 잘해내는 강민정이기에 과거와 차원이 다른 많은 할일이 기다리리라 믿는다.
1년전쯤 나는 강의원 사무실에서 '알고 보면 강하다. 우주극강 강민정'이란 표어를 발견하고 이런 '국가비밀'을 누설한 게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보좌진들이 일제히 자기들이 어느날 깨닫고 붙여준 애칭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강민정 의원실은 여의도 보좌진들이 가장 선망하는 의원실이라고 보좌진이 입을 모았다. 4년간 1명도 나가지 않고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강의원을 보좌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단언컨대 강의원은 여의도 극강의 극선망 의원실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강민정의원이 보스가 아니고 리더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후원자님들, 어떠신가요? 안팎으로 이만하면 강민정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내신 보람이 있지 않나요? 덕분에 강의원은 정치자금 걱정 없이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며 무려 200회 넘게 정책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21대국회의원 가운데 최다기록일 겁니다. 더욱이 강의원은 본인이 주최하거나 참석한 모든 정책토론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석없이 자리를 지키며 경청하고 토론했다는 점에서도 남달랐습니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강민정 의원이 이제 5월30일부터 다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옵니다. 그때에도 변함없이 지지와 후원을 당부드리면서 다시 한번 후원인 한분한분께 저의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첫댓글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1&fbclid=IwZXh0bgNhZW0CMTEAAR1cyAl5bCmph-h2TUIZcTd2nldgfN7sVEZC2EGCFh4cas7y1-l2GLWdAxE_aem_AccPOnUKypdQXYpPTfRmaeMnm3dhUTUSbDuWb3x4ydLHbFMSr6O2etdnlY7ZMi8n5p1-HbATX-apsF5P9hbtefx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