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에서 스무나흘째 저녁을 맞습니다.
항상 매끼 하는 고민이지만
'뭘먹지?'
길건너 모란관 음식도 슬슬 질려오는데..
아침은 라면으로 때웠고 점심도 그 국물을 데워 밥말아 먹었는데...
'뭔가 저녁이라도 근사한 꺼리가 없을까?'
참 황량합니다.
최소한 10년은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 보겠다 결심 했거든요.
근데 아직 한달도 채우지도 못한채
슬슬 서울이 그리워 집니다.
음식도 낮설고,
당근 말도 안통하고, 전혀!
버스도 택시도 신기한 삼륜차도
가이드 없이는 한 발자욱 내딛지 못하는 눈뜬 봉사 올습니다.
여러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9월 학기에 청도대학 국제교류센터에 등록을 할 생각입니다.
한 1년 귀를 뚫고 입을 열어놓은 후에야
제가 이 청도에서 뭘 할 것인지를 판단할 생각이구요.
근데 말입니다.
인생은 유한한 것이라고 대선배들께서 하시던 말씀이
요즘들어 자꾸 떠오릅니다.
'그렇죠. 당연히 끝이 있는 길이죠.
뭘 새삼스래 그런 염세적인 말쌈을 하시옵니까?'
라고 속으로 흘려 들었는데....
정말 바쁘게 살때는-바로 몇달전 까지- 젼혀 생각지 않았거든요.
일년 열두달 정장 차림에
또 똥폼은 얼마나 재는 넘인지
집에서도 셔츠에 면바지만 고집했습니다.
뭔 지랄이었는지..
그러다가 하던 일을 접고 몇달을 쉬면서
슬슬 불혹이 두려워 지는걸 느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청춘시대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고
워크홀릭 증후군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조차 두려워 하지 않았었죠.
근데 이제 마흔 하나에 제 나이가 두렵습니다.
아.. 혹여 연세 많으신 선배님들께는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사람마다 백인 백색이라고 생각의 차이는 있는법 이니까요.
폐일언 하옵고,
청도에 와서도 한국에서의 생활패턴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둘렀습니다.
3일만에 석노인쪽에 아파트를 임대하고,
5일째는 차를 덜렁 계약하고,
위성에 pc에 인터넷에 별별 지랄을 떨었습니다.
웬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리곤 다 후회합니다.
아파트는 남들보다 비싸게 바가지를 썻네요.
인터넷은 필요없는 용량을 넣었구요.
위성은 이상한 방송만 나옵니다. 다섯개 씩이나....
혼자 몸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될만큼 이상한 화면에 잠을 못이룹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이드의 말만 믿고 차를 계약 하고보니
중국 면허증도 없고, 더 더 중요한 사실은 거류증이 있어야 한다나요?
부랴 부랴 거류증을 의뢰했습니다.
제 차는 아직 혼다 매장에서 먼지를 마시며 바닷바람에 녹슬고 있습니다.
저 미친거 확실하죠?
한번 돌아봅니다.
왜 그렇게 미친듯이 살아왔는지를....
몸이 조금씩 망가지고난 후에야 그냥 퍼져 않아 그렇게 돌아봅니다.
청도에 와서는 똑같은 청바지에 때타지 않는 검정색 티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래도 꼭 그 위에 콤비는 걸치게 되네요.
후배놈은 아직도 폼생폼사 하냐고 하던데 그래도 꼭...
여름의 뜨거운 날씨가 지나고
가을의 선선한 바람도 스러지는 늦가을,
그 늦가을에 한번씩 한 여름의 뜨거운 폭양보다 더 뜨거운 날이 있답니다.
그걸 인디언썸머라고 한다네요.
몇년전 박신양하고 이미연이 나왔던 그저 그런 영화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죠?
'가을도 다 갔는데 왠 더위야?' 하면서 생맥주를 기울이던 그런 날이
꼭 한번씩 있잖아요?
그게 인디언 썸머라네요.
제 인생의 인디언 썸머가 청도에 있을지 궁금합니다.
돌아봤던 고개를 바로 하고
다시 앞을 향해 달릴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아직 인디언 썸머가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다가올 인디언 썸머를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어느날 활활 타오르는 때를 당황해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창밖으로 파도소리가 아련합니다.
청도 새내기 올림.
첫댓글 한번쯤 사고쳐야 정신 차려지더군요,,한국처럼 생각하면 큰 오산이죠..나 또한 많은 실수를 하고 삽니다. 한발 늦게 가도 결코 늦은길이 아닌곳이 중국인데..
감사합니다. 중국돈 10원이 가볍게 느껴지는걸 보면 아직 정신 덜 차린 모양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랑 동갑이시네요. 기회되면 한번 뵙죠.. 우선 모든것을 급히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현지인들처럼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겉으로만 천천히지 실상 한국사람들보다 더 빠르고 아주 영악해요. 우리가 거기에 농락 당하곤 하죠.) 그래도 아직 여유있어 보이셔서 좋습니다. 참..오래 계실것을 작정하고 오셨으니 여기 사람이 되셔야죠. 음식도. 문화적인 것도. 뜻하시는 일 꼭 이루시고요 힘내세요.. 화이팅 ~
감사합니다. 근데 중국음식의 향내가 참 적응하기 어렵네요. 언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희남편과 비슷..ㅎㅎ서로위로하며.동화되어가며...그렇게사는게삶이 아닐까요.화이팅///
설마 저 같으실려구요? 난 바본가봐...씨.
어이쿠! 저하고도 갑장이시네요. 저도 가족모두 끌고? 이곳 청도에 온지 갓 4개월이 넘어갑니다. 모두들 급할것없이 천천히 생각하라고 하시던데 그게 말처럼 쉽지않네요. 아무래도 앞만보고 정신없이 달리던 습성을 쉽게 놓아버릴수는 없겠지요.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같이... 그래도 가끔 생각해봅니다. 숨고르고 한번더 큰숨내쉬고 온몸에 힘이 느껴질때 그때 뒤 돌아볼줄아는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실상은 지금까지 왔던길속에도 앞으로 가야할 모든 지혜가 녹아 있으니까요! 힘내시고 참고 기다리며 준비합시다.
반갑습니다. 우리 갑장들의 모임은 없나요? 한번 쏠 의향이 있는데 말입니다.
서로 인사하는 자리를 만들어 볼까요? 뭐~ 갑장끼리 만나 신다면 제가 낄~자리가 없겠지만...
강냉이빵님께서도 척보면 저희랑 갑장처럼 보이시던데요.... 기요틴님도???!!!!
강빵님과 기요틴님.. 정신연령은 20대 후반이시죠, 아마
여기는 갑장만 끼는곳인가보네요. 나도 안되겠네요 앞으로 63일만 더 지나면 고참이 되겠군요....
갑장만 끼는곳이란 글자가 자꾸장갑만 끼는곳이라고 읽어져서... 흐이구 우울해지네여!
무진기행이라는 닉네임에 잠시 십 몇 년전으로 돌아갔었습니다.. 신촌역 부근의 허름했던 카페... 무진기행님! 힘내시구요. 우리 모두 그 정도의 수업료는 이곳 중국에 지불했었답니다.^^ 오프라인 소모임에 참석하셔서 중국 정보를 얻는 것도 빠른 적응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구요. 힘내십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무진기행이란 닉네임은 제 은사님의 소설 제목이구요. 오프라인 소모임은 어떤게 있는지 찾고 있답니다.
무진기행님! 반갑습니다! 인디언 썸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님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하동님도 인디언 썸머를 만드시길 빌겠습니다. 수리수리마수리 얏!
ㅎㅎㅎ 저랑 동갑이신 듯.. 언제 소주라두 한잔.. 전 .. 54 광장 앞에 삽니당.. ㅋㅋㅋ
앞 뒤 안가리고 뛰시는 그 모습에서 아직도 젊의 패기를 느낌니다. 한국인 보다는 향후 중국인과 부데끼면서 지내는 것이 언어 향상에 도움이 안될지.... 화이팅.
여기는 마흔한살 동갑내기 모이는 곳인가요 무진기행님, 청도 생활이 한도 안되셨다고 하니..탐색기간을 길게 잡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탐색기간에 뭘 할것인가도 정리하시구요.. 그야말로 탐색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