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주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언어가 꼽힌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특징으로 몇 가지 든다. 중등 국어교과에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기호성, 자의성, 사회성, 역사성, 규칙성, 창조성 등이 그것이다. 여기 한 가지 더 보태면 분절성이 있다. 분절성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대상을 불연속적을 끊어 표현하는 특성을 이른다. 주변에 그런 현상이 더러 있다.
우리는 무지개 색을 일곱 가지로 한다만 영국과 미국은 여섯 가지다. 다섯 가지로 보는 나라도 있다. 일본 오키나와와 동남아 쿠키 여러 부족은 두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무지개 색이 나라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분절성에 있다. 동서남북 방위의 구분, 영아기 유아기에서 노년기까지 인생의 시기, 얼굴 부분의 명칭도 그렇다. 이마와 뺨의 경계는 사람마다 같을 수가 없다.
계절의 구분과 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 현상도 분절적인 표현에 의한 것이다. 봄과 여름의 경계가 어느 날 하루 차이로 무 자르듯 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월은 봄으로 보고 유월은 여름으로 친다. 가을과 겨울도 마찬가지다 십일월까지는 늦가을로 보다가 십이월은 초겨울로 본다. 십일월 중부권에선 첫눈이 오고 얼음이 진작 얼었음에도 우리는 계절을 그렇게 구분 짓는다.
날이 가고 달이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제와 오늘이 1초 차이로 날짜변경선이 달라진다. 해가 바뀜도 그렇지 않던가. 세밑 방송국에선 생중계로 종로 보신각 타종행사에 카메라 앵글을 맞춘다. 깊은 밤 자정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타종 행사에 야외의 무척 추운 날씨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환호성을 지른다. 언젠가 밀레미니엄이 온다던 2000년 해맞이는 더 그랬다.
십이월, 섣달 첫날이다. 올해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앞서 이야기대로 가을을 뒤로 보내고 겨울에 드는 즈음이다. 한 달만 지나면 한 해가 가고 온다. 뒤돌아볼 틈도, 곁눈 팔 사이도 없이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온 날들이다. 이런 날 들이 쌓여 한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또 한 해가 저무는 즈음이다. 시간은 미리 당겨 쓸 수도 없지만 아껴 저장해 두었다가 훗날 쓸 수도 없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느냐와 귀착된다. 한정된 재화인 돈이나 땅은 소유와 축적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더 많이 차지하려 안달이다. 권세도 마찬가지다. 더 높은 지위에 올라 위세를 부려 보려는 이들이 많다. 돈이나 땅이나 권세는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모두들 먼저 차지하려고 부나비처럼 달려든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두 사례를 들어보련다. 누구나 다 아는 이건희 회장 아닌가. 창업주의 유산이긴 하나 삼성 그룹을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분이 병상에 누운 지가 수년이 흐른다. 이건희 회장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있다.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해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럴 가능성이 멀어져 가는 듯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다른 한 예다. 아무리 권력의 부침이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박근혜 만한 경우가 있을까? 세기적 재판이 아직 미완이긴 하지만 그 결과는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우리 국민만이 아니라 나라 바깥에서도 관심거리지 싶다. 차디찬 감방에서 추운 겨울을 몇 해나 보내야 할지 모른다. 그의 지지자들은 시간이 빨리 흐르라고 재촉할 수도 감옥을 허물 수도 없는 지경이다.
올해 남은 마지막 한 장 달력 앞에서 잠시 두 인물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서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이 반백년 넘게 사는 내가 왠지 초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살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 생이 다하는 어느 날까지 건강하였으면 싶다. 그날이 가깝든 멀든 상관하지 않으련다. 내일이 주말이구나. 어디론가 두 발로 훠이훠이 걸을 수 있음만도 한없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17.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