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위한 실천 법
가난하게 살거나 부자로 사는 것, 남에게 존대받거나 멸시당하는 것,
오래 살거나 일찍 죽는 것, 이 모든 게 다 자작자수(自作自受)라.
행복이나 불행은 부처님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요, 무슨 절대적인 신이 있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전부 자기가 지은 대로 자기가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무엇 하나 남을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은 잘 사는데 이놈의 팔자는 어째서 이렇게 타고났나.” 하며 원망합니다.
이렇게 운명이나 사주팔자를 탓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약 어떤 며느리가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스럽게 아침상을 내오면,
“어디서 저런 복덩어리가 들어왔을꼬.” 하며 시부모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시어머니가 밥 다 짓고 깨워야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며느리가 있다면
“저런 못된 것, 어디 저런 걸 낳아서 우리 집에 보냈나.” 하면서 그 부모부터 원망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라고 하여 금생을 통해 전생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고,
내생이 어떻게 될지 알려면 지금 그 사람이 하는 이력을 가만히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모든 일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른 결과라고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실천 법
부처님께서는 인생은 팔고(八苦)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로병사 네 가지 고통에,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수와 만나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
오온성고(五蘊盛苦, 색·수·상·행·식의 다섯 가지 요소의 변화로 인한 고통)가 더해진 여덟 가지 고통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비교부족고(比較不足苦)가 빠져있습니다.
포교를 위해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세상 사람 중에 부부간에 혹은 부모-자식 간에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내들은 ‘친구 남편은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잘 버는데 우리 남편은 왜 이거밖에 안 되나’라며 비교합니다.
반대로 남편들은 ‘다른 부인들은 요조숙녀처럼 인물도 잘나고 마음씨도 곱던데
우리 집사람은 매일 바가지만 긁어댄다.’라며 불평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해 서로의 잘잘못을 탓하고,
또 자녀는 자기의 부모를 다른 집 부모와 비교해 재산이 적음을 속상해합니다.
이렇듯 서로를 비교하고 불평하는 것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인생은 구고(九苦)-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을 모두 끊어 버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경계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뜻과 생각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 직전 마지막 법문을 통해, 재차 이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조심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수구섭의 신막범(守口攝意 身莫犯) 여시행자 능득도(如是行者 能得道)’,
항상 입을 조심하여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열 번 생각하고 말하고,
몸을 태산 앉히듯 하여 꼭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열 번 이상 생각해서 움직이라고 했습니다.
불교를 믿고 잘 실천하기 위한 또 한 가지 방법은 자신만의 원력을 세우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를 건설한 아미타불은 48대원을 세웠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도
저마다 열 가지씩의 대원을 세우고 중생을 제도했습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비라 성에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난 사실만을 알고 있지만,
실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과거 500대원을 세우고
그 원을 이루기 위해 사바세계에 무려 8,000번이나 다녀가셨습니다.
저 역시 수좌 시절 걸망을 걸치고 다니면서 열 가지 원을 세운 바 있습니다.
첫째, 탐진치(貪瞋痴) 삼독을 속히 끊기를 원합니다.
둘째, 몸이 항상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셋째, 지혜가 뚜렷이 밝기를 원합니다.
넷째, 속히 모든 법을 알기를 원합니다.
다섯째,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여섯째, 삿된 도를 멀리 여의기를 원합니다.
일곱째, 중생이든 미물 곤충이든 다 같은 몸을 나타내서 제도하길 원합니다.
여덟째, 불법을 널리 퍼트리기를 원합니다.
아홉째, 정각을 원만히 이루기를 원합니다.
열째, 중생을 모두 제도하기를 원합니다.
열 가지 원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니 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절을 짓고자 마음먹으면 어느새 땅 주인이 찾아와 산을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원력을 세우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원력을 세우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도 한 가지든 두 가지든 반드시 원을 세워서 밀고 나가십시오.
어느 날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불하는 데는 따로 정함이 없습니다.
염불하다가 성불할 수도 있고, 공양주가 반찬을 만들다가 성불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백 천 가지 방편 문을 다 열어두셨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열심히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역대 조사 스님들은 불교를 신행하는 데 있어 다섯 가지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도적을 그릇 알아 아들로 삼지 마라(不得認賊爲子).
중생이 아뢰야식에 있으면서 깨침에 이르렀다고 잘못 알고
그것을 근본 자성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양고기를 달아놓고 개고기라고 팔지 마라(不得縣羊賣狗).
거짓된 감언이설로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으려고 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말꼬리에 붙은 파리가 제힘 하나 들이지 않고 천리를 가듯 하지 마라(不得馬尾付蠅).
화주나 시주를 해놓고 모든 일을 스님한테 미뤄버리는 안일한 자세를 경계하는 말입니다.
넷째, 똥 빗자루나 고목 나무에 금칠하지 마라(不得鍍金糞帚).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목에 힘주고 다니는 허장성세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라(不得將心待悟).
이는 곧 실천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참선하던, 염불하던 ‘어서 성불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하면 절대로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일체 망념을 다 치워버리고 일념이 되었을 때
비로소 무심과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러 찰나에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지혜를 배워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어느 날 시절 인연이 도래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을 잘 알고 실천하면 절대 후회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시’라는 말을 풀어보며, 오늘 법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주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남이 무슨 얘기를 하면 “얘기를 들어줬다.” 하고 또 음식을 먹고는 “먹어줬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보시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대가 없이 주려는 마음에 언어에서조차 모두 보시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모든 일체 보살의 만행 가운데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보시입니다.
그러니 이 보시를 실천하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종주국이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나라에 태어나서 더불어 불교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 고산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