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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6070 낭만길걷기 원문보기 글쓴이: 미션
누와 정은 상류층인 양반들을 위한 여흥시설이다. 여기에서 좋은 경치도 감상하고 책도 읽고 시도 짓고 여럿이 모여 술도 마시고 활을 쏘며 운동도 하기도 했다
만일 일반 백성들이 이런 누정을 이용했다면 큰일이 났을것이다.
일반 백성들을 위한 시설은
원두막이 있으리라. 원두막은 개인들이 사용한 시설이고 여러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없었을까?
민속화를 보면
이런 그림이 보인다. 이걸 모정茅亭이라 한다. 초가로 만든 정자라는 뜻이다
위의 그림은 모정은 모정인데 양반들을 위한 모정이고 일반 백성들이 사용한 모정은 2층형태가 아니고 1층형태로 초가지붕에 네기둥이 있는 정자형태이다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지금은 거의 지붕이 기와로 되어있다. 지금이야 신분차별이 없으니까
모정에 대해 알아보자
여름철에 마을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세운 마을 공용건물이다. 여름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방이 없이 마루로만 된 작은 규모의 건물로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분포의 정도가 다르며 명칭도 모정, 시정, 우산각, 농정, 양정凉亭 등 여러가지로 불리고 있다. 여름철 마을 주민의 휴식처로 남성들의 전유물이고 남성중에서도 일꾼이 주로 이용하는 정자이다. 논농사가 발달하고 머슴들이 많은 곳에 많으며 마을 촌락공동체의 성격도 있다
茅亭과 樓亭의 차이점
1, 모정은 정자의 이름 亭號가 없다.
누정은 예외없이 정호가 있다
2, 모정은 마을 공동체의 공유재산이고 누정은 부유한 개인이나 세력있는 동족집단의 소유이다.
3, 모정은 일하는 일꾼들의 휴식처로서 청장년층이 많이 이용했고 누정은 양반, 유한계급의 집회장소로 노년층이 많이 이용했다
4, 모정은 초가지붕에 규모가 적고 누정은 기와지붕에 대체로 규모가 크다
5, 모정은 마을 입구에 있거나 마을과 농장 사이에 있다. 누정은 농사작업과 관계가 없으므로 경관이 좋고 한적한 곳에 있다.
6, 모정은 농군들이 휴식하는 곳이기 때문에 노래와 잡담을 하고 대중적 서민적인 분위기였고
누정은 한시와 시조를 읊으며 시국담을 나누는 귀족적인 분위기였다
ㅡ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인용ㅡ
모정은 정자나무에 제사 지내는 곳의 기능을 하기도 하였고 집회장소의 역할도 하였다.
누정은 현재 경상도 지역에 많이 남아있는데 이는 중소양반들이 많이 있었고 벼슬을 못한 선비들이나 벼슬을 하다 낙향한 선비들이 자연을 친구삼아 지내는 시설이었기 때문일것이다
특이한 것은 모정이 주로 호남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전남지역에서 많이 보인다. 게다가 호남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전남 곡성에서 섬진강을 건너 경남 하동에 이르면 모정은 사라진다. 전북 익산에서 금강을 건너 충북 부여에 가도 그 흔적도 없어진다
이는 대규모의 논농사를 지을수 있는 드넓은 토지가 있는 곳의 특성이 반영된것이고 또 호남의 마을 공동체 문화가 발달해서일것으로 추정된다. 또 소작농이 많고 농지가 넓어 중간에 햇빛을 가리고 쉴만한 그늘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겨났을 수도 있다.
호남은 드넓은 평지에 논농사가 주다보니 소작농이 많았고 그외의 지역은 논농사를 지을수 있는 평지가 부족해 소규모의 자영농이 흩어져 농사를 지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자는 동학이 경상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경상도에서는 그 세력이 미약했고 호남에서 확산되어 민란으로까지 확산된것이 모정이라는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도 추측하기도 한다.
호남이외의 모정의 기능은 큰 정자나무 밑의 평상이라고 볼수 있다
다른 지역은 넓은 평야가 드물어 모정까지 필요치 않아 그늘이 큰 나무밑의 평상이면 족했을수도 있다
대규모 농장이 많은 호남은 부호들의 별서정원이 발달해 개인 소유의 누정이 많았다한다
경주 최부자집이 호남에 가면 큰 부자가 아니었다고 하니 호남의 특수성이 보인다
겨울에도 이용하기 위한 호남지역의 정자. 방이 중앙에 위치한다. 경상도지역의 정자의 경우 보통 방이 바깥쪽에 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