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2. 큐티
마태복음 2:13 ~ 18
예언의 성취 - 아기 예수의 수난
관찰 :
1) 애굽으로 피신하심
- 13절.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헤롯은 마치 자신도 경배하고 싶은 것처럼 연기를 했지만 사실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역할은 마리아와 그 아기 예수를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 결국 요셉을 통해서 피신을 시키시지만 보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 14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 15절.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러 하심이라” => 헤롯이 죽기까지 애굽에서 지냈습니다. 예수님이 애굽에 피신하고 애굽에서 돌아오게 된 것은 호세아 11:1의 말씀을 성취하시게 하는 것임을 마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내용으로 여겨집니다.
2)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죽이는 헤롯
- 16절.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박사들을 속인 줄 알고 득의양양하게 그들로부터 소식을 기다리던 헤롯은 박사들이 자신에게 아기 탄생의 소식을 고하지 않고 돌아간 사실을 알고 분을 냈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헤롯이 잔꾀가 많아 자기 자신을 믿었지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꾀에 넘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 헤롯이 신하들을 보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 아래로 모두 죽였습니다.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잔악함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통치자의 전형입니다.
- 17절 ~ 18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 예레미야 31:15절의 말씀이 그렇게 애곡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이 땅에 구속주이신 여자의 후손 메시야의 오심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일련의 행위 중의 하나입니다. 애굽에서 사내아이를 죽이던 일,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죽이려는 많은 시도들, 페르시아에서 하만에 의해 시도된 유대인을 다 죽이려던 음모, 등등 사탄은 여인의 후손이 이 땅에 오는 것을 막고자 나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도는 무산이 되었고, 메시야가 아기로 이 땅에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게 된 것입니다.
가르침 :
1)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훼방하고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죽이려고 하고, 또 죽이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사탄의 궤계를 없이하시고 주님의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략이 사탄의 계략을 앞서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승리로 돌아가는 싸움입니다. 당장은 마귀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귀의 궤계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2) 애굽으로 도망가고, 베들레헴 주변의 두 살 밑의 사내아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위기의 순간이 이어지지만 이 아기야말로 인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요, 소망이시 구세주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위태위태한 모습이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약할 때 강함되시고, 우리의 모든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이기심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3) 헤롯의 악독한 꼼수. 세상의 꼼수는 꼼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꼼수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이 이기십니다. 아무리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도 예수님은 이기시는 분이셨습니다. 아기 때부터 그렇게 수난을 당하신 예수께서 이기시는 삶을 감내하신 것처럼 수난을 당할지라도 이기는 길을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과 환란 때문에 이기는 길을 포기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고 주님의 뜻을 좇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2) 희생. 주님의 일하심을 위해 라마에서 애곡하는 소리가 흘러넘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애곡을 통해 주님을 장차 모든 구속받은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흘려야 하는 눈물이 있다면 그것을 드려야 할 것이고, 또 다른 눈물들을 위로함이 주님으로 말미암게 됨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눈물과 애곡을 이렇게도 처절하게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희생의 중심이 되셨습니다.
3) 주님이 하시는 일도 쉽게 넘어가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제가 계속해서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이 한 번 한 번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참으로 한 순간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구합니다.
4) 아내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고통을 이기게 해 주시고 통증을 경감시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