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王曰 吾惛 不能進於是矣 願夫子輔吾志 明以敎我 我雖不敏 請嘗試之 曰 無恆産而有恆心者 惟士爲能 若民 則無恆産 因無恆心 苟無恆心 放辟 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 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 왕이 말했다. “나는 어리석으니, 여기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원컨대 선생님께서 나의 뜻을 보좌하여 저에게 명확하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아는 비록 영민하지 못하지만, 청컨대 이것을 시험해보고자 합니다.” 말했다. “항산(일정한 생업, 재산)이 없더라도 항심(일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백성이라면 항산이 없으면, 곧 그로 인해 항심이 없게 됩니다. 만약 항심이 없으면 방자하고 편벽해지며 간사하고 사치하게 되어 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따름입니다. 죄에 빠지게 됨에 이르러서 그 후 따라가서 형벌을 가하는 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恆, 胡登反. 辟, 與僻同. 焉, 於虔反.
○ 恆, 常也. 産, 生業也. 恆産, 可常生之業也. 恆心, 人所常有之善心也. 士嘗學問, 知義理, 故雖無常産而有常心. 民則不能然矣. 罔, 猶羅網, 欺其不見而取之也. 恒은 常이다. 産은 생업이다. 항산이란 일정하게(항상)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다. 항심이란 사람이 늘상 갖고 있는 선한 마음이다. 선비는 일찍이 학문을 하여 의로움과 이치를 알고 있기에, 비록 항산, 즉 일정한 생업이 없더라도 항심이 있다. 백성의 경우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罔이란 그물과 같은 것인데, 보지 못하게 속여서 잡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恒産常生之業 則下文所言五畝之宅百畝之田 是也 恒心常有之善心 則下文所言 善與禮義 是也 善又禮義之總名 緣民無恒産所以無常心 故不知禮義而陷於放辟邪侈也 若遂從而刑之 是誠無異於以羅網 罔民欺其不見而取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恒産이란 늘상 살아가는 業이니, 아랫글에서 말하는 5무의 집과 100무의 밭이 바로 이런 것이다. 恒心은 항상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이니, 아랫글에서 말하는 善과 禮義가 바로 이런 것이지만, 善은 또한 禮義를 총괄하는 이름이다. 백성은 恒産이 없기 때문에, 常心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 禮義를 알지 못하고 방자하고 편벽하며 사악하고 사치함에 빠지는 것이다. 만약 마침내 그들을 뒤따라가 형벌을 준다면, 이것은 진실로 그물로 그물질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백성을 그물질한다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속여서 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此心字亦指本心而言 但指其在士民者言之 운봉호씨가 말하길, “여기서 心자는 또한 본심을 가리켜 말한 것이지만, 단지 선비와 백성에게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0 是故明君制民之産 必使仰足以事父母 俯足以畜妻子 樂歲終身飽 凶年免於死亡 然後驅而之善 故民之從之也輕 “이런 까닭에 명군은 백성의 항산을 만들어주되, 반드시 우러러서는(위로는) 부모를 모시기에 족하고, 굽혀서는(아래로는) 처자식을 기르기에 족하며, 풍년에는 종신토록(1년 내내) 배부르고, 흉년에는 굶어 죽는 것을 면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런 연후에 몰아서 선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따르기가 아주 쉬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畜, 許六反, 下同.
○ 輕, 猶易也. 此言民有常産而有常心也. 輕이란 쉽다는 말이다. 이는 백성들이 항산이 있고 또한 항심도 있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21 今也制民之産 仰不足以事父母 俯不足以畜妻子 樂歲終身苦 凶年不免於死亡 此惟救死而恐不贍 奚暇治禮義哉 “지금은 백성의 항산을 만들어줌에 있어, 우러러서는 부모를 모시기에 부족하고, 굽혀서는 처자식을 기르기에 부족하며, 풍년에는 종신토록 고통스럽게 일하고, 흉년에는 굶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이것으로는 오직 죽음을 구제한다고 해도 부족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禮와 義를 다스리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治 平聲. 凡治字爲理物之義者, 平聲; 爲己理之義者, 去聲. 後皆放此. 治는 평성이다. 무릇 治자가 남을 다스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면 평성이고,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면 거성이다. 뒤에도 모두 이와 같다.
○ 贍, 足也. 此所謂無常産而無常心者也. 贍은 풍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항산도 없고 항심도 없는 경우를 말한 것이다. 22 王欲行之 則盍反其本矣 “왕께서 그것을 행하고자 하신다면, 곧 어찌하여 그 근본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盍, 何不也. 使民有常産者, 又發政施仁之本也. 說見下文. 盍은 어찌 아니라는 말이다. 백성이 항산을 갖게 만드는 것이 또한 선정을 펼치고 인정을 베푸는 근본이다. 설명이 아래 글에 보인다.
新安陳氏曰 則盍反其本矣 與前蓋亦反其本矣 當對觀 發政施仁 是所以王天下之本 使民有常産 又是發政施仁之本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그렇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이키지 않습니까?’라는 말은 앞의 ‘대체로 또한 그 근본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라는 말과 더불어 마땅히 대조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선정을 펼치고 仁을 베푸는 것은 천하에서 왕 노릇을 하는 근본이고, 백성으로 하여금 항산을 갖게 만드는 것은 또한 선정을 펼치고 仁을 베푸는 것의 근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23 五畝之宅 樹之以桑 五十者可以衣帛矣 雞豚狗彘之畜 無失其時 七十者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八口之家可以無飢矣 謹庠序之敎 申之以孝悌之義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 老者衣帛食肉 黎民不飢不寒 然而不王者 未之有也 “5무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나이 50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를 기름에 그 시기를 잃지 않으면, 나이 70된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무의 밭에서 그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8식구의 집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제의 의로써 거듭한다면, 반백의 노인이 길에서 짐을 이고 지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젊은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데, 그렇게 하고도 천하에 왕 노릇 못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此言制民之産之法也. 이는 백성의 생업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趙氏曰: “八口之家, 次上農夫也. 此王政之本, 常生之道, 故孟子爲齊ㆍ梁之君各陳之也.” 조씨가 말하길, “8식구의 집은 차상(두 번째)의 농부다. 이는 왕도정치의 근본이자, 항생(항상 먹고 사는)의 방도이기 때문에,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 임금을 위하여 각각 진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趙氏名岐 詳見序說中註 조씨는 이름이 기이고, 상세한 것은 서설 중의 주석에 보인다.
楊氏曰: “爲天下者, 擧斯心加諸彼而已. 然雖有仁心仁聞, 而民不被其澤者, 不行先王之道故也. 故以制民之産告之.” 양씨가 말하길,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더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비록 어진 마음과 어진 평판(소문)이 있을지라도,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생업을 만들어주는 것으로써 알려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 此章言人君當黜霸功, 行王道. 而王道之要, 不過推其不忍之心, 以行不忍之政而已. 齊王非無此心, 而奪於功利之私, 不能擴充以行仁政. 雖以孟子反覆曉告, 精切如此, 而蔽固已深, 終不能悟, 是可歎也. 이 장에서는 임금이 마땅히 패도의 공을 내치고 왕도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또한 왕도정치의 핵심은 그 不忍之心(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미루어 不忍之政(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을 행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제나라 왕은 이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리의 사사로움에 (정신,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그것을 확충함으로써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없었다. 비록 맹자가 반복하여 일깨워 알려줌이 이와 같이 정밀하고 간절하였지만, 가려진 것이 본래 너무 깊어서 결국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는 정말로 한탄할 만한 것이다.
南軒張氏曰 孟子如對鴻麋之問 及對好樂好色好貨 皆徐引之 當道何 其辭氣不迫也 至於利國之問 則應以何必曰利 桓文之問 則對以無道無傳 論管晏 則曰管仲曾西之所不爲 言交兵之不利 則曰號則不可 又何其嚴也 自後世觀之 後數說比之 前數者宜若未至甚害 而攻之反甚切 何歟 蓋前數者一病爲一事耳 故紬繹其性之端以示之 使之曉然知反躬之要 則天理可明而人欲可遏矣 至於覇者功利之說易以惑人 人或趨之 則大體一差 雖有嘉言善道 亦何由入 戰國諸侯其失正在乎此 故闢之不可不嚴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맹자가 가령(如) 큰 기러기와 큰 사슴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고 재화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답한 경우에는 모두 서서히 이끌어서 도에 합당하였으니, 어찌 그 말하는 기세가 절박하지 않겠는가?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질문에 이르러서는, ‘하필 이끗을 말합니까?’라는 말로써 대응하였고, 제환공과 진문공에 관한 질문의 경우에는, 말하는 사람이 없어 전하는 바가 없다고 대답하였으며, 관중과 안영을 논한 경우에는, 관중은 증서도 하고자 하지 않는 바라고 대답하였고, 交兵의 불리함을 말함에 있어서는, 號則不可(구호는 불가하다)라고 말했으니, 또 어찌 그것이 엄한 것이겠는가? 후세에서 살펴보건대, 뒤의 몇 개의 설과 견준다면, 앞의 몇 가지는 아직 심한 해악에 이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해야 마땅한데도, 그것을 공격하기가 도리어 더욱 심하고 절실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체로 앞의 몇 가지 것은 하나의 병통이 하나의 일이 되었을 따름이기 때문에, 그 본성의 단서를 풀어내어 보여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환하게 제 몸에 돌이키는 요체를 알게 한다면, 천리는 밝아지고 인욕은 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霸者의 功利之說에 이르러서는, 사람을 미혹하기가 쉽고, 사람이 혹시라도 그쪽으로 달려간다면, 大體가 일단 어긋날 것이니, 비록 훌륭한 말과 선한 道가 있다 할지라도, 또한 무엇을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겠는가? 전국시대의 제후들의 잘못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물리침에 있어 엄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此章甚詳集註斷之甚約 蓋欲黜覇功 則心之所向者正 能行王道 則心之所充者大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 今雖有不忍之心 而不能推之以行不忍之政 無他奪於功利之私也 功利二字依舊是向覇功上去 入于彼必出於此 世安有不能黜覇功而能行王道者哉 此孟子所以斷然以爲仲尼之徒所不道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이 장은 대단히 상세하지만, 집주에서는 단언하기가 대단히 요약되었다. 대체로 패업과 공리를 내치고자 한다면, 마음이 향한 바가 올바르고, 왕도를 능히 행할 수 있다면, 마음이 채운 바가 큰 것이다. 先王께서는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비록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이를 미루어서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를 행할 수가 없는 것은 다른 것이 없다. 그저 功利의 사사로움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功利 이 2글자는 여전히 패업의 功 위를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에, 저기에서 들어가면 반드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니, 세상에 어찌 패업의 공을 내칠 수 없으면서도, 능히 왕도를 실행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맹자가 (패업의 공은) 중니의 무리가 말하지 않는 바라고 단정하여 말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