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苦海淨土’ 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슬픈 미나미타’ 라는 이름으로 해석되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특이하다. 기존의 화자 중심의 소설이 아니라, 르뽀 형식의 철저한 타자 중심의 소설이다.
그녀는 야학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할머니 밑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등잔불 밑에서 공부를 해서 소설가가 되었다.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슬프 미나미타’는 미나미타병이라는 환경재앙으로 생긴 환자들의 현실을 기록한 책이다.
그 소설의 대단한 특징은, 작가 자신이 객관화가 되어 객체 속으로 침투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환자가 되어 환자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심지어는 죽어가는 환자가 되기도 했다.
동경대 출신 가와바따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일본 니가타 현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작가와 동네 기생들과의 사랑 이야기다.
철저히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다.
전혀 객관화 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나 가와바따 야스나리는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내가 너가 된다는 것. 이것은 소설가로서 최고의 덕목이다. 물론 작가는 객체를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주된 임무지만, 객체의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시무레는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 어려운 작업을 너무나 쉽게 해냈다.
나는 가와바따 야스나리와 더불어 그녀를 일본 최고의 작가로서 존경한다.
내가 너가 된다는 것. 그것은 공유의 정신이기도 하지만, 장자의 齊物論에서의 주된 주제 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 보는 것, 보수의 편에서 진보를 바라보고, 진보의 편에서 보수를 바라보고, 북한의 편에서 남한을 바라보고, 남편의 편에서 아내를 바라보고, 아내의 편에서 남편을 바라보고, 적의 편에서 아군을 바라보고, 아군의 편에서 적군을 바라보고, 중국의 편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미국의 편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나의 과거에서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현재의 나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고,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가수가 관객을 바라보고, 관객이 가수의 입장에서 노래를 듣고.......
이 모든 것은 주체와 객체가 서로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이해하는 길이다.
김대중의 고려연방제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라는 것이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이해 하자는 것이다.
남과 북은 대화 하면서 교류 하는 길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