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라고
말하면 상승(常勝)
상쾌하게
어린 나무가 희망찬 미래로 뻗어나는 여름, 기쁜 뉴스가 도착했다.
간사이소카(創價) 고교 댄스부가 일본 제일의 '문부과학대신상'에 빛났다.
또 쟁곡부도 '문화청장관상'을 받았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두달 전 학원생들과 만났다. 6월 18일,
간사이소카고교 2학년 학생들이 소카대학교에서 연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학원생들은 넘치는 기세로 "외국어를 습득하겠습니다."
"세계 제일의 교육자가 되겠습니다." 하고 결의를 말했다.
댄스부와 쟁곡부 등 각 동아리 멤버들도 승리에 대한 포부를 들려주었다.
맹세를 하고 땀을 흘리면서 노력하고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이긴다.
이처럼 통쾌한 일은 없다.
우리 학원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불굴의 투혼'을 배웠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힘내라!"고 성원을 보내면서 "아버지, 어머니를 소중히!"
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뒤를 이을 벗이 성장하는 일이 곧 간사이 그리고
전국의 부모들이 만끽하는 기쁨이다. 내 자랑이다.
인생의 토대가 되는 청춘시절, 열심히 싸운 모두가 승리자이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늘 여러분의 전진을 기원하며 기다리고 있다.
영광의
제왕은 나라고
지휘 드높이
거친 바다일지라도
무적의 키를 잡아라
지금이야 '세계의 대간사이'라고 불리는 우리 벗의 대행진을 선조들도 틀림없이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불가사의하게도 서오사카 지역은
우리 간사이창가학회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오사카 초대 지부장 시라키 기이치로 씨가 첫 절복을 달성한 곳도 니시나리구였다.
더욱이 도다(戶田) 선생님과 내가(이케다 선생님) 사제(師弟) 함께 참석한 간사이 지방
첫 좌담회는 1952년 8월 16일 다이쇼구에서 열린 좌담회였다.
선생님은 엄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간사이에 온 까닭은 가난뱅이와 병자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스승의 구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그러므로
나는(이케다 선생님) 스승의 서원을 내 서원으로 삼아 간사이 곳곳을 끝까지 달렸다.
이곳 서오사카는 다이난코(大楠公) 구스노 마사시게가 통쾌한 승리의 발자취를 남긴
고장이다. "전투의 승부는 반드시 숫자가 많고 적음에 의하지 않는다.
다만 병사의 뜻을 하나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고 마사시게가 말한 것도 이때였다.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 수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로 하는 단결에 있다고 한다.
게다가 마사시게의 유복자 구스노키 마사쓰라가 '어서 성장하라'는 엄부의 기원에 부응해
숙적을 물리친 곳도 이곳에서 벌인 전투였다.
1985년 1월 25일, 나는(이케다 선생님) 니시오사카문화회관(현재 스미노에문화회관)을
방문했다. 이날은 '오사카사건'의 무죄판결을 받은 지 23년이 되는 날이다.
또 '간사이 부인부의 날'이 됐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순식간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동지에게 외쳤다. "불법(佛法)은 승부!"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서라면 싸워야 한다.
비겁하게 물러서면 마군(魔軍)이 증장할 뿐이다. 싸운다면 이기는 수밖에 없다.
마사쓰라처럼 승리만이 후계를 증명한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극중 인물에게 이렇게 맹세케 한다.
"나는 어떤 지독한 어려움과도 싸우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극복해 보이겠습니다."
이런 단호한 기백이 중요하다.
게이오기주쿠대학교 창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 선생도 지금의 오사카 후쿠시마구에서
태어났다. 청춘시절 데키주쿠(適塾)에서 스승 오가타 고안에게 훈도받았다.
후쿠자와 선생은 평생 스승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았다.
만년 자신의 전집 서문에 쓴 글이 상쾌하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무궁하게 사은(師恩)을 삼가 공경하는 자(者)이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무궁한 은혜를 삼가 받아, 깊이 존경하는 자이다.
인간은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려 할 때, 가장 존귀하고 가장 강인한 생명을 발산한다.
우리 대간사이가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효고
광포의 백마에
그대 타고
마지막까지 싸워 이겨라
거침없이 이겨라
꽃다운 젊은 무사 미나모토 요시쓰네가 등장한 '이치노타니 전투'.
기습적인 '히요도리고에 낭떠러지'와 인연이 있다는 명승부를 펼친 무대이다.
요시쓰네는 바위가 솟은 절벽을 앞에 두고 안내인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헤이케의 성곽 이치노타니까지 말 타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물며 말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하고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그러면 "사슴은 다니느냐."고 묻자, "사슴은 다닙니다."하고 대답했다.
요시쓰네는 결단했다.
"요시쓰네의 뒤를 따르라!" 자신이 앞장서서 절벽으로 뛰어들었다.
죽음을 각오한 기습전이 반격하는 헤이시를 패주시켰다.
솔선수범의 과감한 결단과 용기 그리고 승기를 놓치지 않고 벽을 깨는 돌파력,
망설이지 않는 정신이 역경을 이겨내는 비결이다.
대성인은 성훈에 광선유포의 공방전에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이 일을 만나기 위해서였도다." (어서 1451쪽)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름을 높이느냐 이름을 낮추느냐 이다." (어서 1451쪽)라고 강조하셨다.
'지금 이때'에 사력을 다해 후회 없이 끝까지 싸워야 한다.
'광선유포의 투사로서 귀감'이 되어 후세에 그 이름이 빛날 것이다.
대성인은 "모두 나의 일념에 갖추게 되는 공덕선근(功德善根)이라고 신심(信心)을 취해야
할지니라."(어서 383쪽)라고 가르치셨다. 신심 도상에서 한 고생은 전부 큰 복운으로 바뀐다.
간사이에서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운 내가(이케다 선생님) 그 증거이다.
간사이의 아버지, 어머니가 나와(이케다 선생님) 함께 끝까지 투쟁해 쌓은 대복덕의
실증을 보라!
"용기를 내는 것이 좋다. 후세 사람도 칭찬해 줄 것이다."
이 말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 씌어 있는 한 구절이다.
지금도 역사에 빛나는 효고총합본부 결성대회가 1964년 9월 13일 고베시 나가타구
이쿠에이고등학교에서 열렸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1956년 '오사카 투쟁'을 뒤돌아보며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기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장(長)으로서 어본존에게 철저히 기원하자, 철저히 활동하자,
회원을 위해 끝까지 이기자고 결심했다.
어떠한 싸움도 '장의 일념'으로 결정된다.
리더는 동지가 이길 수 있게 만들 중대한 책무를 짊어졌다.
지금 간사이의 용장들이, 그 중에서도 장년부 맹우들이 나와(이케다 선생님) 똑같은
결의로 동지를 위해, 지역을 위해, 사회를 위해 분골쇄신하며 싸우고 있다.
어쨌든 간사이의 영원한 동지가 건재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이것이 창가가 싸움에서 이기는 리듬이다.
오, 사카이!
만나면 눈동자가
빛나는
명랑한 구원의
즐거운 동지로구나
사카이라는 이름은 셋쓰, 가와치, 이즈미 세 지방의 '경계'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참으로 왕래가 활발한 요충지였다.
1956년 '오사카 투쟁'에서도 눈부신 결과를 낸 곳이 야마토가와강 이남 지역인 사카이지부였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사카이가 크게 발전하기를 염원하며 '번영하는 사카이여라'고 말씀드렸다.
내가(이케다 선생님) 처음으로 오사카 땅을 밟고 맨 처음 참석한 회합도 사카이에서 열린
좌담회였다. (1952년 8월 14일) 각자가 처한 경제고와 병고를 어떻게 타개할지를 진지하게
말하고, 나는 세계 광포의 로망을 내다봤다. 그것은 세계로 열린 사카이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근거로 한 이야기였다.
일찍이 사카이는 '동양의 베니스'라고 할 정도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며 수준 높은
자치(自治)로 상인문화를 꽃피웠다. 그 하나가 센노 리큐가 크게 성공시킨 다도다.
센노 리큐는 열아홉살 무렵 다케노 조오에게 사사해 사제정신을 관철했다.
나도(이케다 선생님) 열아홉살에 만난 스승의 마음에 응해 투쟁했다.
그 최고의 증거가 바로 서민의 금주성 대간사이이다.
리큐를 말년에 곁에서 모신 제자 야마노우에 소지는 다도의 '명인'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3개조를 들었다. 그것은 '마음의 각오', '작분(作分)', '공(功)'이다.
'마음의 각오'는 마음가짐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정신도 그 하나다.
즉 한번 한번의 만남이 평생에 한번뿐이라고 마음을 정해야 한다.
'작분'은 창의하고 궁리하는 일이다.
'공'은 실적이다.
이것은 대화의 달인 창가학회원에게도 통한다.
먼저 서원, 결의라는 학회정신이다.
다음은 창조적인 기운으로 지혜를 끌어올려 스스로 투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승리의 실증을 엄연히 남긴다.
대간사이
연전 상승(常勝)
기원하노라
사제의 혼
더욱더 불태우며
내가(이케다 선생님) '오사카 사건'으로 투옥된 1957년 7월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간사이는 다이사쿠와 일체불이(一體不二)이다.
다이사쿠와 함께 대난(大難)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그래서 강하다."
"간사이에는 폭발할 듯한 기세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간사이만 반석 같다면
학회는 암굴왕처럼 50년 후, 100년 후에도 파죽지세로 승리할 수 있다."
선생님은 나와(이케다 선생님) 간사이의 결합에 광포의 명맥을 맡기셨다.
그리고는 오사카사건의 재판투쟁을 맞이했다.
변호사도 유죄를 각오하라고 말했다.
사실상 형사사건의 유죄율은 99퍼센트를 넘는다.
그러나 나는(이케다 선생님) 니치렌(日蓮) 문하로서
"세간의 허물은 조금도 없으나" (어서 958쪽)라는 확고부동한 투혼으로 불탔다.
법화경에서 설하는 참성증상만이 출래해, 학회를 두려워한 권력의 마성이
엄니를 드러냈다. 도다 선생님의 직제자로서 결코 질 수는 없다.
스승의 원수를 갚자!
대성인이
칭찬하고 찬탄하노라
아마가사키
광포의 원점
정의의 모임이여
오사카사건의 심리는 4년반이나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나는(이케다 선생님) 효고의 아마가사키에 자주 다녔다.
효고는 '병사<兵>의 창고<庫>'다. 용감한 전사의 보고다.
효고가 승리하면 간사이가 승리한다. 간사이가 승리하면 전국이 완승한다.
아마가사키는 그 간사이의 전원지(電源地)이고 학회의 심장부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막부를 연 후,
간사이에 대한 포석으로서 가장 먼저 아마가사키에 손을 썼다.
이에야스도 아마가사키가 급소임을 잘 알았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간사이
간부회와 어서강의를 위해 여러번 간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가사키회관 개관식에도 참석해 축하했다.
오사카사건의 최종진술일인 1961년 12월 16일, 나는(이케다 선생님) 증언대에서
사자후했다. "우리가 한 행동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다!"라고
검찰 측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승 도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맺었다.
선생님은 오사카구치소에서 나온 내게(이케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재판이 있지 않느냐. 재판장은 알아 줄 거다.
재판장이 진실을 알도록 하면 된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이 사제의 드라마를 최종진술에서 말했다.
이때 나는(이케다 선생님) 회장이 되어 있었다.
스승의 뒤를 이은 사람으로서 전쟁 중에 똑같이 무고한 죄로 감옥에 갇힌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원통함을 씻어야 한다.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우리는 사자다. 스승과 제자가 일체불이로 사악을 무찔러 정의를 알려야 한다!
이런 일념을 다한 '기원'과 '웅변', '행동'이 제천선신을 움직였다.
이듬해 1월, 아마가사키에서 열린 간사이 남자부 간부회에 참석한 다음날
나는(이케다 선생님) 떳떳하게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년 후인 1963년 2월,
아마가사키에서 간사이 첫 부인부 간부회가 개최됐고 나는(이케다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했다. 축인근행까지 하며 가장 깊이 내 무죄를 기원한 어머니들이다.
"어떠한 상황이 되더라도 금강불괴의 자신을 구축하자!"라고 외쳤다.
어머니가 부동의 신념을 지닌다면 가정은 평안하고 태평하다.
학회의 전진도 흔들리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장편시 '어머니'를 발표한 것도 1971년 10월, 히가시요도가와에서 열린
간사이 부인부 간부회였다. 남미 아르헨티나 민중시인 호세 에르난데스는
"어둠을 뚫고 압도할 수 있는 것은 태양뿐이다."라고 노래했다.
아무리 깊은 어둠도 한없이 밝은 미소로 물리치는 간사이 어머니들이 바로
세계 제일의 '상승의 태양'이다.
요도가와강에
원초(元初)의 자매가
모였도다.
금주성은
한없이 활기차다
간사이를 윤택하게 하는 어머니와 같은 큰 강이 요도가와다.
에도시대에 요도가와강 유역에는 풍요로운 곡창지대가 펼쳐져 있었는데
배수로가 없어 큰비가 올 때마다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농민들이 앞장서 역경을
타개하기 위해 배수로 개착공사에 착수했다. 농민들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결사적인 각오로 개착공사를 감행하고 결국에는 막부의 지원도 얻어냈다.
이렇게 해 지금의 히가시요도가와에서 요도가와, 니시요도가와를 지나 고노하나에 이르는
일대에 나카지마 대수로가 만들어졌다. 이 배수로에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정치를 움직인 서민의 역사가 빛난다.
1961년 9월, 나는(이케다 선생님) 재판의 공판 전에 잠시 틈을 내어 제2무로토 태풍으로
재해를 입은 니시요도가와로 달려갔다. 나는 2년 전 10월에도 이세만 태풍으로 재해를
입은 아이치와 미에로 급히 갔다.
일단 유사시에는 제일선으로 뛰어가는 것이 리더이기 때문이다.
"대악이 일어나면 대선이 온다." (어서 1300쪽)
이 말은 니치렌 불법(佛法)이 주장하는 불굴의 대확신이다.
1963년 4월 6일, 나는(이케다 선생님) 니시요도가와회관(현재 니시요도가와문화회관)
입불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간사이의 현관인 신오사카역과 가까운 신오사카문화회관에는 다섯차례 방문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들렀기 때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일분일초라도 한 사람을 격려할 수 있다. 환희가 천파만파로 퍼진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 순간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내가(이케다 선생님) 평생에 한번뿐이라는 마음으로 뛰어다닌 곳이 신오사카 지역이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이 지역의 벗에게 선사했다.
"투쟁하는 사람은 제천의 힘이 증가한다. 승리하는 사람은 제불이 만족한다."
언제나
사제(師弟)의 간사이
승리로 장식하는
여러분의
용기 기쁘도다
'영원의 도읍' 로마에서 활약한 상승의 위대한 영웅은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시저는 역사에 찬란한 명장이기에 모든 싸움을 유유하게 이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 승패를 전혀 알 수 없는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었다.
간사이의 투쟁도 이와 같았다.
'상승'은 늘 '사투'를 벌여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 대격전을 승리하는 원동력은 대체 무엇인가.
시저는 난전(亂戰)이 될수록 '용기' 여하에 따라 승부는 결정된다고 확신했다.
상대가 비록 수적 우세로 덤벼든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용기'에 대해 자신감과
긍지를 지니고 싸워야 한다. 그러면 화를 복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이 시저의 '장군학'이었다.
간사이도 오로지 사제의 '용전(勇戰)'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
시저가 싸움에 임할 때 중요하게 여긴 전통이 있다. 그것은 소리를 내는 일이다.
소리를 질러 '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아군을 분기시킨다.'
시저는 이 목소리의 힘을 무기로 했다. 그리고 시저는
"상대의 우세에 겁내지 않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신속'과 '기세'다.
기원전 48년 8월, 시저는 폼페이우스의 군세와 천하를 겨루는 결전을 벌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파르살루스 전투'다. 폼페이우스군은 5만 4000명.
이에 비해 시저의 군세는 2만 3000명. 반도 안 되는 열세였다.
그러나 시저가 싸움에서 대승리했다. 왜인가. 그 요인 중 하나는,
시저가 이끄는 진열은 끝까지 공격했고 상대는 그 공격을 기다리는 태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시저는 이렇게 말했다.
"돌격한 쪽의 힘이 더 우세하다. 본래의 힘의 두배로도 세배로도 된다."
수동적으로 되지 마라!
용맹한 마음으로 끝까지 공격하라!
이것이 인생 만반에 통하는 승리하기 위한 철칙이다.
게다가 시저가 맞선 폼페이우스 진영은 수가 많았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은 기병이
신분이 높아,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기병대는 귀공자인 체 행동하며
자기 몸과 탈 말을 요란하게 꾸미고 장렬한 싸움터를 만만하게 보았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자 몸과 얼굴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금세 달아났다고 한다.
어떠한 투쟁도 허세나 거드름을 벗어 던지고 일심불란하게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한 쪽이 이긴다. 이것이 서민의 강인함이며 간사이의 강인함이다.
간사이는 인간의 대영웅이 지닌 저력으로 앞으로도 반드시 끝까지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민중이 가슴을 펴고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영원한 상승의 도읍'을 구축해야 한다.
상승의
그 고명한
간사이는
세계 제일인
개가의 성이로구나
"또 하나의 새로운 '창가학회'를 만들 정도의 기개로." 내가(이케다 선생님) 환갑을
맞았을 때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 선생이 보내주신 축사에 있는 구절이다.
마쓰시타 선생과는 깊은 교류를 쌓았다. 1973년에는 초대를 받아 오사카부
가도마시에 있는 마쓰시타전기사업(현재 파나소닉) 본사를 견학했다.
1979년, 내가(이케다 선생님) 제3대 회장을 사임하기 전에 회견한
마지막 일본인 식자도 마쓰시타 선생이었다.
그 직후인 4월 24일, 내가(이케다 선생님) 사임한 날 밤의 일이다.
모리구치카도마문화회관(현재 모리구치문화회관)에서 긴박한 분위기 속에
긴급 오사카본부장회가 열렸다.
내가(이케다 선생님) 예전에 스승 도다 선생님에게 드린 시,
'먼 옛날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섬긴 일을
다른 사람은 변해도
나는 변치 않으리'
니시구치 료조 씨가 간사이의 진심을 이 시 한수에 담아 낭독했다.
그리고 모두가 외쳤다. "간사이의 우리는 영원히 스승과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한다!"
이 '모리구치의 맹세'를 시작으로 모든 창가의 제자가 반전공세를 펼쳤다.
모리구치시, 가도마시, 오사카시의 아사히구, 쓰루미구로 이루어진 상승오사카총현과
맺어진 인연은 폭풍우 속에서 거듭거듭 깊어졌다. 가도마의 벗이 이듬해인
1980년 3월 9일 이른 봄에 "우리가 선생님 슬하로 가자!"며 학회본부로 달려왔다.
서둘러 회합장소에 들어간 나는(이케다 선생님) 공전(共戰)의 기세에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를 쳤다.
이 회합은 세이쿄신문에도 실렸지만 내(이케다 선생님)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활자로 기록되지 않아도 사제의 생명에는 금문자로 영원히 새겨져 있다.
실은 지금도 보도되는 것은 내 투쟁의 천분지일, 만분지일이라 해도 좋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은사에게 맹세한 광선유포의 길을 열었다.
이것이 내(이케다 선생님) 인생이다.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신념의 길을
당당하게 끝까지 걷는 것이 남자의 명예다. 아르헨티나의 민중시인 에르난데스는
"힘겨운 고난 속에서 / 나는 남자가 되었다."고 읊었다.
우리 장년부원도 같은 기개라고 믿는다.
대성인이 "법화경의 행자의 기원이 성취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어서 1352쪽)고 말씀하신 묘법(妙法)이다.
모든 투쟁은 기원부터! 이것이 승리하는 요체다.
회장을 사임하고 지금 다시 한번 투쟁을 하자며 일어선 지 30년.
나는(이케다 선생님) 지금 숙연이 깊은 상승 오사카의 동지들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상승 간사이를 구축하자!"고 외치고 싶다.
일어서리
위대한 젊은
지도자는
대간사이를
단연코 무대로
"기쁨에 넘치는 젊은이여 오라"고 영국의 대시인 브레이크는 외쳤다.
나는(이케다 선생님) 열아홉에서 서른살까지 은사 슬하에서 투쟁했다.
도다 선생님의 명으로 난공불락의 금주성을 구축하기 위해 오사카를 비롯해
효고, 교토, 와카야마, 나라로 끝까지 달렸다. 선생님이 가시지 못한 시가와
후쿠이도 선생님의 분신으로서 회장 취임 전에 찾아갔다.
대성인은 <개목초>에서 이렇게 대선언하셨다.
"나는 일본(세계)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세계)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세계)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세한 원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어서 232쪽)
사도유배라는 목숨이 위태로운 대난 속에서 <개목초>를 집필하셨다.
지나치게 가혹한 상황일수록 승리의 서원을 단연코 관철한다.
타협하지 않고 철저하게 해낸다. 그리고 멋진 승리의 실증을 낸다.
여기에 대성인이 몸소 나타내 남기신 광선유포를 승리하는 비법이 있다.
이처럼 투쟁이 어려울수록 사제가 승리의 서원을 혁혁히 불태워
"'설마'가 실현"이라는 승리를 거머쥔 불의불칙의 대성(大城)이 바로 우리
대간사이이다. 간사이는 민중의 기둥이다. 간사이는 사제의 안목이다.
그리고 간사이는 청년의 대선(大船)이다.
오, 내 청춘의 대투쟁을 벌인 고향이자 상승의 혼을 불어넣은 대간사이!
2개 부와 5개 현이 철벽처럼 단결한 사제불이의 대간사이!
생각해 보면 이 30년 사이에 태어난 불가사의한 인연이 있는 청년들이,
온 간사이를 난무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상승, 불패의 대간사이에 드디어
기백이 날카롭고 대단한 신세대가 뛰어나왔다!
어떠한 험난한 봉우리도 통쾌하게 타고 넘어라!
아무리 파도가 용솟음친다해도 단호히 꿋꿋이 나아가라!
백전연마의 장년부여, 지금 진가를 발휘해 모범을 보여라!
명랑하게 전진하는 부인부 여러분, '더욱더' 본래의 특색을 발휘하라!
내 직계인 남자부, 여자부, 대학부 청년들이여, 돌파력이 최강의 무기다!
상승의 사명과 책임을 짊어진 대간사이여,
이기고 이겨서 파죽지세로 승리하라! '상승'은 사제불이의 보관이다.
위대한
상승성
엄연히
솟구치는 기쁨
간사이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