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완벽한 부부처럼 보였다. 미국 뉴욕주의 워터 밀에 있는 자택에서 브랜든과 캔디스 밀러 부부는 왕족처럼 보였다.
결혼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버지니아주 햄프턴에 있는 1.6km² 크기의 휴가 별장에서 펼쳐진 파티는 “한여름밤의 꿈”으로 불렸다. 가운을 걸친 아름다운 여인들이 잘생긴 남편들과 더불어 밀러 부부가 풀장 근처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약속하는 것을 지켜봤다. 캔디스는 이 파티를 기록한 라이프스타일 블로거에게 남편의 연설이 “진실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낭만적인 단어들로 끝까지 날 울게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캔디스의 인스타그램 계정 '마마 앤드 타타' 팔로워는 8만명가량 됐는데 시기심이 일 정도인 휘황한 그녀의 인생 사진들과 동영상들이 가득했다.
"한여름밤의 꿈" 파티가 열린 것은 2019년의 일이었는데 5년 뒤 캔디스가 그토록 자랑하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상심과 분노, 한때 비밀이었던 빚더미로 대체됐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집은 모기지 담보로 넘어갔다. 알고보니 자신들의 집도 아니었다. 빚쟁이들과 사업 파산, 사기 투자 피해자들이 줄줄이 소송을 걸었다. 부부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재산은 설사 실존했더라도 엄청 부풀려진 것이었다.
브랜든은 지난달 3일(현지시간) 사우샘프턴 병원에서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서가 발견돼 스스로 극단을 선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포크 카운티 사법기관 담당자에 따르면 아내와 자녀들이 이탈리아 아말피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이었다. 담당자는 브랜든이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줄 것으로 희망했던 거래가 좌절된 것이 극단을 선택한 이유라고 유서에 적었다고 전했다.
물론 가족은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햄프턴의 부유층 입길에 올랐고, 소셜미디어 이용ㅇ자들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으려고 분주했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자산 기록들과 소송 서류들, 브랜든의 지인들과 사업 파트너들 인터뷰를 통해 밀러 가족이 부를 쌓고 무너지는 과정을 파악했다고 10일 전했다. 워낙 긴 기사라 줄이고 줄여도 상당하다.
‘마마 앤드 타타’
미국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잘 준비된 곳이 햄프턴 아닐까 싶다. 부를 과시하고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뻐기기에 좋은 자양분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캔디스(42)는 언니 제나와 함께 2016년 부유층 여인들에게 패션, 쇼핑, 집안 치장 팁을 제공하는 '마마 앤드 타타'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이방카 트럼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아리엘르 차르나스, 피트니스 강사 트레이시 앤더슨, 패션 디자이너 레이철 조 등이 자주 캔디스 계정을 찾았다. 사적 삶과 취향을 과시하던 이 계정은 일종의 대체 자아(alter ego) 겸 마케팅 기계로 바뀌었다. 캔디스와 몇몇 친구는 패션 레이블을 만들어 로스앤젤레스의 벨에어 호텔에서 출범 파티를 열 정도였다. 캔디스의 팔로워들은 맨해튼과 사우샘프턴의 호화로운 저택들, 유럽 리조트들, 전용기들, 클래식 스포츠카, 스피드보트를 배경으로 얼마나 활기찬 삶을 누리는지 구경했다.
빈티지 디자이너 가운들과 한 달 스튜디오 회원권이 900달러(약 122만원)이며 시간당 250 달러(약 34만원)를 내야 하는 피트니스 개인 강습을 촬영해 온라인에 공유했다.
자녀들 생일 잔치에는 온라인 팬들까지 초청해 떠들썩했다. 한 딸의 생일은 코아첼라 축제를 주제로 열렸는데 플로리스트, DJ, 운전기사, 보트 선장, 개인 셰프를 동원했다.
이렇게 인스타그램 피드를 열심히 올린다고 돌아오는 수입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 브랜든은 소셜미디어를 삼가하는 편이었다. 주로 플립폰을 썼다. 친구들은 그를 영화광, 농구 팬, 자동차광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적극 지원한다고 주장했다.
가족과 가까운 이는 카메라가 없으면 밀러 부부는 전통적인 부부의 역할 분담을 따랐다. 남편은 바깥 일에 몰두하고, 집안 살림은 아내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둘이 상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내가 남편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단 한 차례였으며, 최근 남편 묘를 참배한 것을 별도로 치고 남편의 동업자를 만난 것도 세 차례 뿐이었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사람’
브랜든은 뉴욕시의 트리베카, 할렘, 미트패킹(Meatpacking) 지구를 상업 거주 구역으로 변신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무렵, 회의 도중 울먹이기 시작했다고 세 사람이 전했다. 자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하나로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털어놓았다.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 뒤 그는 부동산 일을 시작한다며 아버지 회사에 들어갔다. 결혼 초기 부친 회사는 트리베카에 주거용 건물을 개발했는데 그는 가족을 위해 펜트하우스를 매입했다. 부자는 햄프턴의 주차장 둘을 샀는데 하나는 물 위에, 하나는 지상에 있어 연결된 것이었다.
그들은 집을 두 채 지어 하나는 시장에 내다 팔고, 브랜든이 다른 채를 가졌다. 친구 60명을 불러 좌식 만찬을 즐길 수 있는 마당이 확보된 사치스러운 주택이었다. 부친 회사 소유여서 밀러 가족은 마치 슈퍼리치마냥 그냥 사는 것이었다.
브랜든의 주된 관심사는 상업개발이었다. 전형적인 프로젝트는 설계를 맡기기 전에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으고 부지를 담보로 맡겨 장기 리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브랜든은 일단 막히면 리스와 건축 계획을 다른 개발업자에게 이윤을 붙여 매각하거나 건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냈다.
뉴욕의 부동산 변호사 제이 네벨로프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브랜든의 부친 마이클 역시 몇년째 위험을 견뎌내고 있었다. 부친이 2016년 예기치 않게 세상을 등졌을 때 그의 자산은 레버리지를 잘 받았다. 소송이 잇따랐다. 브랜든이 부친 회사를 물려받았는데 부친의 동업자도 함께였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쳐 설상가상이었다 . 뉴욕의 부동산 시장이 죽어버렸다. 주거 시장이 반등했지만 사무 공간 수요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브랜든은 엔더믹이 가까워진 2021년, 트리베카 집을 단돈 900만 달러에 팔았다. 가족 눈높이는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어 브랜든이 자라난 코옵(co-op) 건물에 꽂혀 있었는데 상당한 현금을 필요로 했다.
대신 가족은 파크 애버뉴와 이스트 71번가 코너에 있는 1.33km² 면적에 침실만 5개인 아파트를 임대했다. 월세만 4만 7000달러(6400만원)였다. 가구도 렌트했는데 봄에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일년 뒤부터 달마다 1만 2000달러(1637만원)를 지급해야 했다.
허리띠를 졸라 맨다고 될 일이 아니었는데 브랜든은 아파트 관리비와 심야 파티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 보트 정박료 등을 내지 않는 식으로 대응했다. 햄프턴 별장의 모기지 상환이 닥치자 은행으로부터 610만 달러를 대출받고 다른 모기지로 200만 달러를 빌려 갚았다.
이런 상황에도 밀러네의 호화 생활은 계속됐다. 2022년 8월 몬타욱의 해변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러브 보트” 파티를 열었다.
운명적인 만남도 헛되이
지난해 가을 무렵, 브랜든은 더 이상 어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들은 사치스러운 라이프스타일과 침체된 부동산 시장 탓에 그가 빚 문제로 힘겨워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세 친구가 그를 돕기로 했다. 브랜든이 브루클린의 개발에 매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한 친구가 1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50만 달러를 추가하도록 했다.
100만 달러를 투자한 친구는 나중에야 그 부지가 한 달 전에 브랜든과 아무런 관계 없는 개발업자에게 팔린 사실을 알게 됐다.
세 친구와의 모임에 나온 그는 부친 7주기 묘를 참배하고 온다며 침울해 보였다. 앞의 친구는 따지며 추궁했고, 브랜든은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도 친구를 실망시킨 점은 후회한다고 했다. 15년 우의를 나눈 친구와 브랜든은 그 뒤 다시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 뒤로도 악화 일로였다. 친구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눈치를 챘는데도 캔디스는 한사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난 1월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철딱서니 없게도 800달러 나가는 필러 주사와 성형수술의 이점을 얘기했다. “매주 아니면 격주로 하면, 이런 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의 느낌을 갖게 된다.”
휴가를 취소해놓고선...
연초에 밀러 부부는 모기지 중 하나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로부터 바하마 집에서 며칠을 보내자는 초청을 받았다. 여행 날짜가 가까워오자 그 친구는 아내에게 빚에 대해 얘기하고 휴가는 잊으라고 브랜든에게 조언했다. 브랜든은 여행을 취소했다.
지난 5월 그 친구는 캔디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남편이 자신에게 빚이 있으며 가족은 파산했고 그녀의 집 역시 여러 모기지에 잡혀 있다고 알렸다.
아내는 남편에게 재산 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다. 남편은 변호사에게 아내를 안심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키려 했다.
6월 말 가족은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브랜든은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미국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용도 모두 지불했으니 아이들과 잘 다녀오라고 했다.
캔디스는 두 딸을 데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한참 뒤에야 여행 비용이 지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신용카드 거래는 거절당했다. 여행사가 대신 호텔 숙박료가 지불될 것이라고 보증을 섰다.
6월 28일 브랜든은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 돈 문제를 해결하는 거래가 끝났다고 알렸다. 하지만 그는 그 주에 한 친구에게 접근해 1000달러가 계좌 잔고에 있어야 대출받을 수 있다며 돈을 부탁했다. 다음날 그는 햄프턴의 폴로 경기와 바베큐에 참석했다.
6월 30일 경찰은 밀러네 집에서 일산화탄소 냄새가 새나온다는 신고를 받았다. 흰색 포르셰 카레라 안에서 의식을 잃은 브랜든이 발견됐다. 차 안에는 가족이 행복하게 어울려 있는 사진이 발견됐다.
그는 죽기 전 아내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했다. 그가 원한다는 거래는 애초에 성사 가능성이 전무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들을 사랑했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두 건의 생명보험으로 1500만 달러가량 있다고 했다.
그는 몇년이나 어두운 감정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가족과 몇몇 친구만 참석해 썰렁한 장례식 후 그는 부친 곁에 영면했다. 곧바로 그들의 꿈같은 삶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모기지 업자가 캔디스를 상대로 80만 달러의 상환과 이자를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다. 보트는 곧바로 다른 이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마마 앤드 타타” 인스타그램 계정은 정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