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1
요즘 들어 기분이 들쑥날쑥합니다. 대체적으로 심히 우울해서 셀프 디스를 하였는데 어제는 우리 공주들을 보았더니 살맛이 나더이다. 나는 이 찬란한 세상에 태어나 외적으로 이룬 것 하나 없고-내적으로 큰 깨달음도 없고-하루하루를 그저 하찮고-허접하고-존재 의미가 불투명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참으로 우울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에게 그리 하셨듯이 주의 손으로 나를 어루만져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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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 받지 않은 자요 외인이었던 저를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받으셨고 매번 당하셨는데 또 선악과가 즐비한 세상에 방목해 놓으신 것은 내게 자유의지로 세상을 뚫고 나오라는 뜻일 것입니다. 예, 압니다. 그런데 왜 잘 안 되지요? 죄는 아는 만큼 집니다. 어쩌면 안다는 것은 고집이 세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배제할 개연성이 아주 높습니다. 죄란 하나님에 대하여 독립하는 것이기에 죄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입니다. 그것은 자존감과 달라서 독한 욕심을 위해 타인을 배제하고 객체화하며 심지어 사물화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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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수직적인 불화이고 이웃과의 관계도 불통과 불목이기에 갈등, 분열, 시기, 분노를 자아낸답니다. 따라서 예수 믿고 변했다는 증거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데서 이타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하나님을 아는 성도들과도 원수로 살고, 배척했고 경멸했습니다. 당근, 평안은 뭔 놈의 평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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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유일한 소통공간인 ‘악동 죽이기‘ 카페에 댓글 하나가 달려있습니다. “연락 할 방법이 없어서 카페에 글 남겨요 내가 어디에 진학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서 게시판이름으로 지정 해 놓을 만큼 애정 깊으신 거잖아요. 자꾸 들어가려고 하지 마시고 나오셔서 우리 봐요. 급한 연락이라 짧게 남겨요. 외할아버지 어제 밤에 돌아가셔서 새벽부터 오늘 내일까지 장례식하고 내일발인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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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12시 화장이니까 올 수 있음 연락 줘요. 010**650650 화성장례식장이에요“ 예주의 글을 접하고 한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검정 양복을 입고 적토마를 몰았습니다. 안개가 음산하게 깔려있는 처갓집 가는 길은 10년 만입니다. 1시간 정도 곡예 운전 끝에 도착한 장례 시장은 오직 ‘최가네’가 한 곳 뿐입니다. 식당은 불이 꺼져 있었고 빈소에 준철이 그리고 낮선 놈이 잠들어있었습니다. 오늘이 발인이라 다들 지쳐서 자는 모양입니다. 조금 있다가 부조 담당이 허둥지둥 들어왔는데 큰 동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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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몇 번 하느냐고 물었고 가르쳐준 대로 향을 피우고 국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놓은 다음 큰절 두 번을 했는데 영정 속, 장인어른께서 막내 왔느냐고 반겨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큰 동서와 몇 마디 주고받았지만 왠지 썰렁합니다. 역시 괜히 왔나 싶었습니다. 멋쩍게 1시간쯤 서있었더니 예주가 검정색 상복을 입고 와서 유관순누나처럼 아빠를 안아주었습니다. 이렇게 고맙고 반가울 때가 없습니다. 9년 전 장모님 돌아가셨을 때 그 장소 그 분위기인데 저는 이방인 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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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시간쯤 빈소에서 얼쩡거리다가 영자처형이 밥을 먹으라고 말해줬고 상주인 호성이 형이 오자 못이기는 척 밥 먹으러 갔습니다. 식당은 우리 식구들뿐이라 그 많던 쪽수가 한산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영애처형을 제가 맞았는데 초점 없는 시선으로 저를 반겨주면서 “왜 그동안 안 왔느냐”고 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처형, 미안해요. 처형 생신에 미사리에 가서 음악을 듣던 때가 생각이 났고, 그녀와 장인의 영정이 나도 모르게 캡-쳐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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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몰고 온 경신이의 얼굴 속에서 그동안의 맘고생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종민, 종혁이 이모부한테 인사해야지“ 8.23일 만났던 큰 처남이 아들들에게 강단 있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일등으로 했어요. “ 벌 쭘 한 시간이 흘러가는 내내 제 눈에는 아내의 뒤통수만 보였습니다. “예주야, 경신이가 많이 늙어 보이더라. “ “아빠는 언니 나이가 몇인데, 지금 마흔 하나야”
안경 쓴 사내가 누군가 했더니 준태입니다. 제가 악수를 청하자 "이제 오는 법이 어디 있냐?"며 까칠하게 얼굴을 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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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철아, 미안하다......,”올해 70이 된 둘째 동서가 제 악수를 의미 없이 받아주었고 둘째처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외면했습니다. 준철 이는 어엿한 청년으로 변해있었고 여전히 멋쟁이입니다. 발인 예배가 시작되기 전까지 소파에 앉아 종민, 태진, 호성과 토킹어바웃을 하는 동안 모처럼 쉬어가는 타임입니다. 태진 이를 제가 열 살 때 보았는데 지금 37세랍니다. 김태원, 최민수 소속사의 스텝으로 일하고 있답니다. 결혼에 회의적이라는 녀석의 말에 태진 이도 요새 신세대들 중 한 명이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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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민 이가 25세 뮤지션인데 데뷔 한지 2년 되었고 랩을 만들고 래퍼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미우새‘에 출현했던 도끼가 저작권요로 엄청난 돈을 받는다고 했고 제가 한 달에 8,000만원을 쓴다며 방송 분량을 채웠습니다. 종민 이놈 브라운 머리에 세련된 비주얼이 어쩐지 조만간 히트를 칠 기세입니다. 안 예은처럼 색깔 있는 뮤지션이 되라고 말해줬습니다. 발인예배를 하려고 1층으로 내려갔는데 9년 전 장모님 모실 때랑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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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장례 때는 관 뚜껑을 열고 주검을 오픈 했는데 이번엔 태극기로 꽁꽁 싸놓았습니다. 관을 싼 태극기가 5.18과 태극기 집회를 이미지모션되었습니다. 아마도 장인어른이 월남파병용사이었기에 그럴 것입니다. 생전에 어른께서 연금을 타고 있다고 하셨거든요. 주보를 보다보니 상주 명단에 제 이름 석자가 눈에 띠어서 괜히 서러웠습니다. 사위가 넷인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셋째 동서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도 내게 하수상한 시절을 타이머시하도록 만들었고 까닭모를 슬픔이 나를 더욱 옥조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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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목사가 아닌 젊은 목사가 ‘요단강 건너가‘와 고린도전서 13장을 설교하면서 어설픈 부활설교를 하였고 찬송가를 타고 여기저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윽고 운구를 버스까지 옮기는 일을 자청해서 30m쯤 걸어갔는데 주검이 몹시 가벼운 것이 고인께서 투병 중에 많이 수척하셨을 것입니다. 운구가 끝난 후 호건이 처남이 보여서 악수를 청했는데 나중에 얘기하자며 한사코 저를 뿌리칩니다. 무안하고 창피했지만 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마터면 처남에게 달릴 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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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화장터를 향해가는 동안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내 딸 예주 때문에 호건이 일도 잊어버리고 기분이 유쾌했습니다.수원어느 곳인지 모를 화장터는 가을이 완연합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예배한번 하고 5,000원 짜리 점심도 먹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아내는 우리의 동선을 하나도 빼지 않고 체크하고 있을 것입니다. 반찬이 뭐였더라......,식사 후에 1시간 정도 공주랑 이성교제를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울 예주가 비주얼이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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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인이었는데 살이 빠진데다가 검은 색 코디로 가릴 데를 다 가려줘서 그럴 것입니다. 공격적인 이성교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주가 건전 연애를 하다 보니 금방 시시해져서 이성교제의 맛을 정확히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빠의 진단으로는 황순원의‘소나기’ 같은 애송이 감정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상황과 상대를 잘 읽을 수만 있다면 좀 더 공격적인 사랑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임신만 아니라면 더 한 것도 경험할 수 있다고 그냥 말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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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사랑의 감정을 경험합니다. 아빠는 우리 딸내미가 가능한 한 많은 남자와 이성을 경험하길 원하면서도 더 나빠질 불안 때문에 자식을 단속하고 모순투성인 훈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주는 성장합니다. 언제까지나 아이를 껴안고 살 수도, 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성 관계에서 오는 모든 불안 요소들을 지내놓고 보면 그냥 성장 통의 스크래치로 생각할 만큼 예주가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우리 딸이 지적이고 섹시한 여자로 10대의 사랑 하나쯤 갖고서 청춘을 출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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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돼서 다시 흰색 장갑을 끼고 운구를 화장터로 운반했습니다.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입니다.예주에게 아빠가 죽으면 너랑 언니가 상주가 되어 아빠를 이렇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숙연해졌습니다. 인생이 이처럼 허무한데 나는 지금 무엇을 얻자고 아등바등 하는가? 젊은 목사가 한줌의 흙 타령을 하며 벌써 고린도전서 15장을 3번이나 재탕을 했습니다. 더 이상 눈물이 없는 곳으로 가셨으니 슬퍼하지 말랍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누구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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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가 된 운구를 모시고 다시 추모공원에 와서 보로 방으로 나사못을 열고 그 속에 장인을 모신 항아리를 넣고 다시 아크릴 판을 덮어 나사못을 잠그는 일을 지켜보면서 땅 한 평도 못 차지하고 떠난 인생의 마지막이 실감났습니다. 나중에 장모님 영정을 옮겨와 합장을 한 후 밖에 비석을 세울 것이라는 상주의 말이 생각나서 예주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예배(4회)를 드리고 장례식장까지 되돌아왔는데 오후 3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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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시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저는 이방인대접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반겨주셨고, 따듯한 우리 예주를 붙여주셔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예주를 픽업해서 인-서울 하였고 오후에 에스더와 조인해서 부조금을 전달하고 오늘 저를 이방인 취급한
외가 식구들을 일일이 일러 바쳤습니다. “아빠, 그러면 반겨줄 줄 알았어요?” 헐. 예주는 약속 있다고 가고, 건 일 년 만에 에스더랑 동대문 곱창 집을 찾아갔습니다. 누구 딸내미인지 똑 소리가 납니다. 그동안의 모든 시름과 오해가 싹 풀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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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를 통해 부조금을 보내고 돌아와 묵상을 하였습니다. 주께서 제게 에베소서를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주시면서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는 바울기독론의 엑기스입니다. 각 개인이 하나님과 연합되어 모인 공동체를 교회라 부릅니다.
당근, 교회는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나를 희생하여 너를 살리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모임입니다. 샬롬이 군용 모포처럼 감싸는 공동체이고, 가족이고,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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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나로 묶어 주셨고 예수님이 머리가 되어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연합은 우리 각자를 하나님께로 구속하셨다는 전제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할 때 똑같은 사람이 모입니다(마12:48). 그리고 그 무리가 연합되었을 때 최고의 기쁨을 누립니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든 이유는 물어볼 것도 없이 연합이 깨져서 그렇습니다. 아내와 연합이 깨졌고 가족은 물론 공동체와 셀프 디스를 했으니 숨 쉬고 있는 것조차 기적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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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그 어느 날, 그 어느 순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리라 하는 뜨겁고 뜨거운 소망-기대-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 속에 하나님의 신비한 기운이, 거대한 자유의 기쁨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그 믿음 때문에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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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 받지 않은 자요 외인이었던 저를 받아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뜻을 받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라기는 교회와 아내와 가족들과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옵소서.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기위해 당장에 회개하게 하옵소서. 장인의 장례를 잘 끝나게 해주신 주님,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을 위로해 주시고, 다시 한 번 아내와 제가 하나님 앞에 서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연합의 의미를 되새기며 후회 없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2017.11.5.sun.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