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차 소식>
-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을 생각하는 하루 순례길 -
아무런 것을 가지지 않았으나, 세상이 사람다운 얼굴을 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냉혈과 독선으로 가득찬 권력자가 문제라 합니다. 그러면서 그 권력자가 사과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권력은 여전히 냉혹하고 진심어린 사과는 없습니다. 그의 독선과 독단도 결국 우리가 만든 결과였다면, 바뀌어야 할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아니었나 합니다.
<벌써 20일이 되었습니다.>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한 지 벌써 20일이 되었습니다. 굼벵이처럼, 지렁이처럼 땅을 기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한 존경과 희망의 연대를 일구겠다며 출발한 순례 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느 곳까지 갈 수 있으며, 그 순례의 끝이 어떠할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었습니다. 다만 하루 하루 단 한 번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겠다 하였습니다. 이제 그 순례길이 20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참 먼 거리를 걸어왔습니다. 아직도 진행팀은 그 먼거리를 무탈하게 왔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20일차를 맞이한 9월 23일. 날은 흐리고 비가 올 듯 구름이 가득찬 날이었습니다. 사실 순례단은 이런 날을 가장 선호합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서 흐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 두 순례자가 오체투지를 수행하기 가장 좋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그러했습니다.
아침 8시. 춘향이 고개에 모여 순례를 출발하였습니다. 순례에 앞서 두분의 순례자는 항상 그러했던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명상을 합니다.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스님은 도로변 농로를 오가며, 농로에 앉아 하루 명상을 합니다. 이 시간이 이 두분에게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오늘은 두 분의 순례자와 진행팀만이 참석하여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순례길 중 가장 적은 인원으로 시작한 아침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출발 지점이 외지고, 이른 아침에 출발하니 하루 순례길에 참석하는 분들이 순례에 참여하는 시간은 오전 일정 중 9시를 넘긴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오늘은 아침 시간에 ‘순례단만 오붓하여 참여하는구나’ 하며 일정을 나아갔습니다.
<서로의 종교는 다르는 우리는 하나다>
오늘 순례길. 오늘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두 분 순례자께서 진행하는 오체투지 순례 속도가 정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진행팀으로서는 ‘이제 오체투지가 익숙해졌구나’라는 생각보다는,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두 분 몸 상태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가이 들었습니다. 확인해보니 무릎을 사용하지 못하는 수경스님의 팔 근육이 뭉쳐있었습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진행하는 속도를 줄이고, 매 쉬는 시간마다 수경스님의 팔 근육을 풀어주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쉬는 시간, 수경스님 주변으로 진행팀이 모여들고, 모두 팔 다리를 부여잡고 근육을 풀기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순간에 문규현 신부님이 가세합니다. 신부님께서 자신의 쌓인 피로를 풀기도 부족한 시간에 수경스님의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얹고 안마를 하기 시작합니다. ‘어. 이게 오체투지 아닌가’ 하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 웃기만 합니다.
함께 길을 가는 도반이자 동반자처럼 보이는 두 모습. 서로 다른 종교의 모습이나 그 속에는 ‘진리를 추구하며 이 땅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서약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에 대해>
오전에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부론성당의 안승길 신부님이 순례단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순례길을 함께 하고자, 어제 길을 나서 오늘 오전에야 함께하게 되었다 합니다. ‘아이고’ 하는 수경스님의 신음에 안승실 신부님은 ‘농담이 진담이 되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신부님은 “생명과 직결될 정도로 위험한 순례기에 ‘설마 가려니’ 했는데, 마음이 아프다”며 수경스님과 한참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안승길 신부님은 ”남북통일 문제, 사회 양극화, 물질의 노예화 등 심각한 문제에 닥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이길 뿐이 없는 것 같으니 안타깝다.”며 심경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의 문제이다. 물질과 돈을 위해 우리는 생명을 쉽게 파괴 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자연 재해 등이 그 결과물입니다 우리 모두 각성을 해야 한다.”며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 저마다 공동으로 선악의 업을 짓고 공동으로 고락(苦樂)의 과보를 받는 일. 우리 모두의 공통된 잘못을 말하는 불교식 표현)이라고 지적하며, ‘말과 행동, 생각이 오도된 현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그 길에 순례가 현실화된 상황을 또한 아파했습니다.
순례길은 우리 모두의 공업을 아파하고, 누구의 잘못이 큰지 잘잘못을 논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번 더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며, 나 스스로 다른 속도와 가치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서약이자 실천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않았으나,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혔던 촛불처럼, 우리 시대의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롭고 사람답게 소통되는 세상을 위해 순례단도 노력하겠습니다.
<오수 가시연꽃 생태공원>
춘향이 고개를 출발하였던 순례단은 전북 임실군 오수면 대정리에 있는 ‘오수 가시연꽃 생태공원’에서 점심식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도로변에 있어 찾아오는 길이 어렵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희귀 멸종식물로 알려진 가시연꽃을 보기에는 좋을 듯 합니다. 저수지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주변 소나무 군락과 제방길, 정자는 모두에게 훌륭한 안식의 공간이었습니다. (참고로 가시연꽃은 7-8월 낮에만 볼 수 있으며, 정부에서 선정한 보전가치 순위가 높은 식물자원이라 합니다.)
우연히 점심식사를 위해 찾아간 공간이었으나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문규현 신부님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공원 전체를 산보하며 관찰하였고, 몇몇 분은 저수지 전체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주변에 도로를 제외하고 연못 자체도 아름다웠으며, 특히 주변 산책길의 소나무 등은 감동이었습니다. 자연이 그대로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하지만 순례단 진행팀은 여기에서 아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나무를 따라 산책길을 가던 문규현 신부님께서 상의를 탈의한 순간. 상체에는 온통 부황뜬 자국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밤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은 서로 부황을 뜨며 한동안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순례길의 고단한 육체의 피로를 풀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오늘 일정은 애초의 목적지였던 대정리를 지나, 오수면 오수 삼거리를 목전에 두고 끝났습니다. 애초 계획보다 약 1km 정도를 더 진행하였으며, ‘10km도 할 수 있겠다.’는 두 분 성직자의 장담에도 신음소리 듣기에 바쁜 날이었습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팔근육까지 뭉쳐야 하는 수경스님에게 오늘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도로에 몸이 던져지듯 떨어지며 ‘헉.. 헉.. 아이고’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오고, 문규현 신부님의 마른 기침 역시 정기적으로 들려옵니다.
그동안 순례를 멀리서 바라만 본 것이 마음의 짐 이었다는 박찬중(임실)님은 순례에 참여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박찬중 님은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민중이라는 것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성향으로 흘러 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아파했습니다. 또한 “민중이 스스로 민중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민주주의가 곧고 강하게, 그리고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다.”며 강하게 주장하셨습니다.
전주에서 오신 임재은(평화와 인권연대)님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다 보니 오체투지의 본질이 생명과 평화가 녹아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을 보태고자 왔다.”고 합니다. “직접 보니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도 오체투지의 행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세상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세우 목사(평통사 대표)님은 “그동안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특별히 오늘 참여한 이유는 도로가 위험하고 사람이 없을 때는 순례단 기운이 떨어질 것 같기에 오늘을 선택해 왔다.”고 합니다. 또, “두분을 보니 참 짠합니다. 저는 개신교 목사로 두 분은 저와 종교가 다르지만 일상적인 목회에 젖은 저를 바라보니 사람으로서 반성하고 투철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들은 꺼져가는 촛불을 밝히고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도의 길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깨우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노병섭(전교조)님은 “저는 생명을 살리고 사람다움을 보이시려는 두 분과 마음을 함께하고자 왔다.”고 합니다. “고난의 길을 걷고 계십니다. 저는 사람의 길이 곧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길이란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삶을 위해 시민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나가는 길의 농민은 차를 세우고 ‘순례단의 일정이 어찌 되는지’ 꼼꼼히 물어보고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겠다며 길을 떠납니다. 멀리 온양에서 온 참가자는 순례길 5분도 되지 않아 일정이 종료되었으나 그래도 행복하다 합니다. 내리는 햇살에 그늘 하나 없어 뙤약볕에 앉아 쉴 수밖에 없으나, 하루 하루 참가한 작은 생명평화의 촛불들은 행복하다 합니다. 우리들의 순례는 아무런 조건이 없는 소통과 연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송희철, 정재권, 윤병일(서울) / 김형근 (평화동 성당) / 안승길 신부(원주 부론성당) / 박찬중(임실) / 정진숙(남원) / 고정배 신부(원주 고한성당) / 주문자, 조윤선(마중물) / 이주철,노병섭 (전교조 전북지구) / 이세우 목사(평통사) / 신희지(지리산) / 주용기(새만금생명평화전북연대) / 박한솔(서울) / 양혜진, 임재은(평화와 인권연대)님 등이 함께 순례를 진행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 9월 24일(수) : 용정리 오수로터리(시작) - 오수관광농원(경유) - 의견공원(종료 예정)
● 9월 25일(목) : 의견공원 앞(시작) - 오수휴게소(경유) - 군평리 SK 주유소(종료 예정)
● 9월 26일(금) : 군평리 SK 주유소(시작) - 봉천역 인근 17번 국도(경유) - 봉강리 보건진료소 앞(종료 예정)
● 9월 27일(토) : 봉강리 보건진료소 앞(시작) - 월평로터리(경유) - 임실제일교회 앞(종료 예정)
● 9월 28일(일) : 휴식 예정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생명평화마중물에서 오신 주문자, 조윤 님께서 과일과 생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남원에서 오신 최석균님께서 후원금과, 음료수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 온양에서 오신 황수진님께서 음료수, 생필품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 남원시 이백면 정원 황토방에서 잠자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참가 일정과 수칙은 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8. 9. 23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첫댓글 글을 읽어보다가.. 퍼왔어요...^ㅡ^*
휴.... 10월 첫째주엔 꼭 참석해야 겠습니다.우리 신부님 만나뵈야죠.... 신부님..신부님....
오거리 촛불 분들도 함께 하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고생들많이하셧습니다
우리 삶이 곧 순례길입니다. 하루 하루 우리 일상을 옳바로 산다면 그 것이 곧 순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을 되돌아 봅니다.
어제 퇴근을 서둘러서 현장으로 달려 가 봤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이 희망을 꿈꾸는 모든이들의 가슴에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울 쇼울셔터님의 매우 적확한 발언에 아주 기분좋은 날이였습니다...근데 장자님? 언제 휴가를 내면 되는지요? 말씀들이 없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