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0](화) [허균 얼 톺아보기] 성소부부고 살피기 015#
지난번에 이어 ‘석주소고 서(序)‘를 이어 가려고 합니다. 먼저 신호열 선생님의 풀이를 가지고 오겠읍니다.
✦문부1 서(序) / 석주소고 서(序)2
https://youtu.be/M6CnW8syeoo
여장은 명망과 지위가 남들을 움직일 만하지 못한 데다가 세상이 당장 눈으로 보았다 해서 천히 여기지만 그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사람들의 우러름이 어찌 점필 정도일 뿐이겠는가?
혹자는 여장이 학력이 적고 원기가 모자라 당연히 점필 보다 한 단계 모자란다고 하는데, 더욱 시도(詩道)를 모르는 자이다.
시란 별취(別趣)가 있는 것이니 이(理)와는 관계치 아니하며, 시란 별재(別材)가 있는 것이니 글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오직 그 천기(天機)를 놀리고 현조(玄造)를 빼앗는 즈음에 있어 신(神)이 빼어나고 울림이 밝으며 격(格)이 뛰어나고 생각이 깊은 것이 가장 상승(上乘)이 되는 것이니, 저 온축(蘊蓄)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비유컨대 불문(점문漸門)에서 교(敎)를 말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감히 임제(臨濟) 이상의 지위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여장은 본래 게을러 지은 것을 모으지 않았는데 심생(沈生)이 정승되는 것 수백편을 모아 석주소고(石州小稿)라 제목을 붙이고 내게 보여주므로 나는 흐뭇하여 ’내 말이 거짓이 아닐진저. 이에 나아가 여장의 전모를 볼 수 있으니, 고인을 압도하고 일대에 제일가는 자가 여장이 아니고 그 누구이랴? 세상이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해서 여장에게 무슨 병이 되랴? 하물며 뒷 세상에 양자운(揚子雲, 자운은 양웅의 자)을 알아주는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 때로 소리 내어 외어 보면 이와 볼 사이로 바람이 으스스 일어나 저도 모르게 신기가 멀리 높은 하늘까지 날아오르니, 아, 지극하도다.
여장은 안동 권씨로 이름은 필(鞸)이요, 석주(石州)는 그의 호이다. 그 인품의 높음이 시보다 더욱 우뚝하나 세상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 시보다 더욱 심하니 아, 애석하도다.
이제 저의 시각에서 처음부터 다시 쉽게 읽어 보겠읍니다. 여기서 여장은 권필의 자입니다. 따라서 석주 권필은 배움이 적고 뒷심이 부족하여 점필재 김종직 보다 한 단계 모자란다고 하는데 이렇게 떠드는 사람은 진정, 시의 깊이인 시도(詩道)를 모르는 님들입니다.
시는 특별한 취지인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 원리인 이치(理致)를 캐는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이지 그냥 글인 산문과는 사실 크게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늘 기운을 다루고 그 조화로움을 밝혀 신의 경지를 드러내어 감동을 주며 한 차원 높이 끌어 올려 오래도록 연구하여 학문이나 지식을 많이 쌓아 올렸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은 불가의 으뜸 가르침과 같은 것으로 임제종을 연 임제 이상의 자리에 올려 놓아도 좋을 정도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권필은 ‘본래 게을러 지은 것을 모으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런 표현은 그냥, 재미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으며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모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심생은 이런 석주 권필의 글을 모아 ‘석주소고’라는 제목을 붙여 책으로 엮어 교산 허균에게 보여 주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정승되는 것 수백편을 모아’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은 쓴 글이 훌륭하여 내놓으면 정승으로 뽑힐 정도의 훌륭한 글임을 알게 합니다. 이렇듯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인 권필이 그야말로 글솜씨가 뛰어나 누리에 으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교산 허균입니다. 그 경지를 자운 양웅을 끌어와 올 정도로요.
여기에서 덧붙인 자운 양웅은 아마도 술을 경계하라는 교훈적인 글을 남긴 양웅으로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이 양웅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나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같은 극단적인 입장을 떠나 사람의 본성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고 본 시인, 철학자 양웅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끝으로 권필의 시을 읊으면 이와 볼 사이로 마치 바람이 으스스하게 일 정도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권필의 시는 담고 있는 뜻뿐만이 아니라 조화로운 소리의 울림이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대단한 멋스러움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이것으로 심생이 엮은 석주 권필의 ‘석주소고’를 읽고 그 책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서(序)를 마칩니다. 이렇게 해서 교산 허균의 친구인 석주 권필과 자운 양웅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를 하게 되네요. 다들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즐겼던가 봅니다.
이런 오늘도 고마움으로 ‘허균 얼 톺아보기’에 빠져 보았읍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첫댓글 오늘은 어제에 말씀을 드린 대로
'허균 얼 톺아보기'로 '성소부부고 살피기' 열다섯 번째 시간을 가졌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교산 허균의 친구인 말술 권필이 남기 글을
심생이 모아 '석주서고'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 보여 주었기에...
읽어 보고 그 느낌을 덧붙여 남긴 교산 허균의 글을 읽은 것입니다.
그런데 풀이를 해 놓으신 신호열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셔서
전체적으로 그 풀이가 옛풍이라 지금 우리들이 이해하기은 참으로 쉽지가 않네요.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