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良一 人間能力開發院 院長] “아이는 할아버지?”
워즈워스의 詩에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구절이 있다. 알쏭달송한 표현이긴 하지만, 결론은 동심의 순수함,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여 때 묻고 더러워진 어른스러움을 버리고 『천생의 경전함으로 이루어지기를』바라는 마음을 읊은 詩라고 한다.
순수함이나 자연스러움이라는 면에서는 아이가 어른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들로서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아래로 돌려주어 생긴 아이가 선조의 자리에 앉는 결과가 되는 셈이다. 『아이=어른(부모)의 아버지』란 말은 『아이=할아버지』라는 말이 되어 도무지 逆進化가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보다 나아야 한다고 하면 수긍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은 『쪽이란 풀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 더욱 푸르다』고 해서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야 한다』는 순자(筍子)의 말이다.
이것을 확대 해석해서 F1F2의 관계에까지 적용하면, 자식이 부모보다 나아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進化論의 이론에 의하면, 더욱이 優生學의 입장으로 말하면 아버지의 優性 遺傳子와 어머니의 優性 遺傳子가 결합해서(劣性因子의 결합은 논외로 하고)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히 자녀가 부모보다 우수해야 한다. 그런데 우생학만으로는 미덥지 못한 탓인지 자녀를 더욱 우수하게 만들려고 노심초사하는 것이 오늘의 부모들이다, 그래서 갖가지 과외 공부며 英才敎育이 판을 치고 아이들 기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풍조 때문에 아이가 어른 위에 君臨하는 가정도 많아졌다. 아이들이 상전이 되고 暴君이 되고 帝王이 되기도 한다. 아이=할아버지는 약과인 셈이다.
어른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아이 위주로 바뀐 가정이 적지 않다. 아이의 눈치를 모며 살다 보니 여러가지 삼가는 것도 많다. TV를 함부로 켜지 못하는 경우는 애교에 속하고, 부부 관계도 삼가고, 아이들 눈치가 헌법이 되어 아이가 불을 가지고 놀아도 오냐, 오냐이고, 아이가 칼을 가지고 놀아도 오냐, 오냐인 가정도 많은 것이다. 어떤 영화를 보면 히틀러를 추종하던 한 의사가 히틀러의 유전자를 산모에 이식하여 복제, 히틀러를 생산했다가 유대인의 추적자에 발각되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들의 가정에서는 우생학적으로 잘 생산된 그 우수한 아이들을 히틀러로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핵가족 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전통적인 위계질서나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가르치는 대신에 자유와 방종을 용인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자유방임주의의 橫行이다. 核家族에서 자란 소위 新世代들이 이 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끌고 갈지도 걱정이 된다. 물론 할아버지 중에는 노망이 들어 그야말로 아이들 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어디까지나 할아버지이고, 함부로 상투를 흔들 거나 수염을 쥐어 뜯어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뭘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서 걱정인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하는 것이 杞憂일진데, 나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릴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귀중한 보물 창고』라고 했지만, 그 귀중한 창고에 뭘 모르고 날뛴 추억만 가득 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신세대를 겁내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기성세대가 어찌 필자뿐일까마는, 해마다 가정의 달은 오는데 아이를 위한 날은 일년 내내 요란하고 어른의 날은 일과성 행사나 꽃 한 송이로 끝나니 그것이 문제이다.
어른이 어른의 자리를 찾고 어른의 위엄을 보이면서 『더 나은 아이들』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어른들의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