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이자 그 백성들에게 안식하라고 하신 날로 이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안식은 따지고 보면 세상적, 인간적, 맹목적으로 쉬고 먹으며 놀고 잠자는 것 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인데 물론 그렇다고 먹고 마시며 잠자는 것 등이 안식에 반하거나 별개일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하며..
어쨌든 사실상 그러한 안식일은 주일, 곧 주님의 날과도 본질적으로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주님께서 주인이시고 주님께서 통치하심을 전적으로 드러내는 날인 것이고, 그러면서 그러한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누리며, 바로 그러한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날인 것이고, 그와 함께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평안들을 생생하고 풍성하게 맛보고 경험하는 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주권과 통치와 섭리인 것이자 사실상 그 가운데 온전히 속하고 직결된 것으로 그러한 실상이야 말로 참된 안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주관하시는 분인 것이고, 말씀과 함께 모든 것을 창세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말씀대로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분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안식일이나 주일에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묵상하거나 암송하거나 필사하거나 실천하거나 전도하거나 하는 등과 같이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에 우선하고 힘쓰는 것만큼 더 합당한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말씀이신 하나님께 기쁨이자 영광인 것일 뿐 아니라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의 나라의 통치 한가운데 더욱 온전히 거하고 누리게 됨에 있어 가장 합당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러한 믿음의 사람 그 자신 뿐 아니라 그 온 지경,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땅 끝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다스리시고 간섭하시며 지키시고 능력주시며 은혜주시고 해결하시며 응답하시고 예비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기에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야 말로 가장 온전한 안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구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귀신 들리고 고부라진 여인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고치신 일은 안식일에 있어서 오히려 가장 귀하고 합당하며 잘 하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모두가 주일에 예배를 강조하고 당연히 그러한 예배가 주일에 있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곧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이며 소중하고 긴급할 수밖에 없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치와 원리인 것이며, 실제로 주일 예배의 구성과 순서와 모임과 시간 등에 있어서 잘 통찰해 보면 모든 공통점은 말씀인 것이고, 모두 다 하나같이 말씀, 말씀의 신앙이 근본과 핵심과 실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당연히 그 속의 설교나 성경 봉독이나 교독문이 말씀인 것도 분명하지만 사실은 그 뿐만 아니라 기도도 말씀이 아닌 것, 말씀과 별개인 것은 기도일 수가 없는 것으로 말씀이신 하나님께 말씀대로, 또는 말씀을 위해 간구하고 말씀 그대로 응답 받고 누리게 되는 것이 기도인 것이고, 행여나 만일 거기에 자신의 뜻이나 정욕이 더해진다면 응답이나 열납과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기도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찬송도 그 가사에서부터 단 한 소절, 단 한 부분도 예외 없이 말씀 그 자체이거나 말씀에 대한 고백이나 찬미나 경험이나 증거 등이 아니라면 하늘의 은혜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찬송 자체부터가 될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봉헌도 하나님의 것을 말씀대로, 그 뜻을 위해 하나님께 전심으로 드리는 것이며, 교제도 말씀의 한가운데 있는 사랑과 섬김이 본질과 핵심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러한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들부터 해서 모든 순서 맡은 자들, 또한 예배에 참석한 회중들, 모든 순서와 순간들, 그와 관련된 모든 상황과 환경들, 여건과 요건들 등에 있어 어느 정도로 말씀의 집중,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는가가, 곧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얼마나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을 내려놓고 그 이름으로 의지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자신을 부인하며 혹 범한 죄악들은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오직 여러 모양과 순서들 속에서의 하나님의 뜻, 말씀, 증거들에 마음과 뜻과 생명을 얼마나 다 하며, 어느 정도로까지 그 모든 부분과 사안과 담당과 영역과 순간들 등에 있어 진정과 정성과 최선을 다할 수 있느냐가 말씀이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모든 기준과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의 열납과 화답에 있어서, 게다가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 변화와 이적들 등에 있어서, 더 나아가 모든 기도의 제목과 삶의 자리들에까지 이어지는 복과 열매들에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바로 그러한 일들이 이 땅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허락하시고 예비하신 하늘의 안식의 실체들 중 최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누가복음13:14~1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0월 6일(금)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