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덤불이 후덕하게 생긴 뒷집 아지매를 닮았다면 꽃은 수더분하게 생긴 앞집 처자를 닮았다. 추수야 어느 것 하나 풍요롭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 감자만큼 흐벅진 것도 없다 싶다. 감자 같은 뿌리식물은 푸근하게 비가 내린 다음에 거둬들여 주는 것이 작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호미를 추슬러가며 지긋이 잡아당길라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우러져 올라오는 열매들. 묵직하게 잡혀지는 충만함. 어느 추수가 이리도 충실한 느낌을 밭에서부터 거두게 해주겠는가. 크고 작은 열매들은 한집 식구들답게 이물음이 없고 둥글둥글한 모양새에선 후덕함까지 묻어난다.
고구마도 무우도 심지어는 땅콩까지도 끝부분이 뾰족하고 실뿌리가 늘어진 데 반해 감자는 그냥 뭉실할 뿐, 열매 자체가 끝이다. 그 실낱같이 가느다란 줄기를 매체로 저리 튼실한 열매들을 굵힐 수 있음은 축복이다.
쳐져 있는 몸에 생기도 불어넣을 겸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맨발로 감자밭에 퍼질러 앉는 순간 이미 가슴은 데워지고 있었다. 어떤 모양을 한 열매들이 몇 개나 달려 나오려나 싶은 기대감에 기분은 이내 부풀어 오르고, 흐벅지게 쌓여가는 수확물로 인해 땀은 희열로 바뀌어 갔다. 캐고 난 고랑을 돌아다보는 기분도 만만치가 않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덤불은 덤불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무덕무덕 높여진 모양새는 일꾼의 됨됨이를 가늠 짓는 척도로도 모자람이 없다. 시원찮은 일꾼은 지나간 자리도 시원찮다. 들죽날죽이다.
여학교 적, 내 자취방은 읍내에 있는 친구들에겐 늘 와서 머물고 싶은 쉼터였다. 많은 형제들이 한방에서 지낼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들에게 내 방은 꿈에서도 그리던 나만의 공간이었으리라. 마실, 그래. 친구들은 찐 감자나 삶은 고구마 같은 군것질거리들을 치마폭에 감추어들고서 내 방으로 마실을 왔었다. 어른이 없는 공간에서 또래들끼리 자유로울 수가 있다는 것, 터놓고 보면 은밀은 고사하고 마냥 웃었던 기억밖에는 없는데도 우리끼리라는 게 그리 좋았던 듯싶다.
세상 무서울 일 없던, 자신만만하던 고등학교 일학년이던 이맘때쯤, 우리들은 친구가 저희네 것이라는 감자밭으로 갔다. 교복을 입은 채로 감자를 캐면서도 신이 났던 걸로 보면 철이 없어도 한참은 없었던 천방지축이었겠고, 학교가 일찍 파했던 걸로 보면 무슨 기념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희희낙락거리며 감자로 파티를 열 때까지는 좋았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밭 임자는 따로 있었고 친구네 것은 그 옆에 있었다.
비밀을 공유한 친구가 참 친구라면 우린 분명 참 친구인 셈이다. 기억이란 게 묘해서 지금도 감자밭만 보면 그때 생각에 실없이 웃음이 난다. 몰래 할 수 있다는 것, 어른들에게 들켜도 '너 이놈들!'로 끝나게 되어있는 그런 것들도 저지를 때는 늘 짜릿했다. 우리가 '서리'라고 부르며 공공연히 자행했던 짓거리들, 어린 시절에 저지를 수 있었던 대표적인 것이 밀, 콩, 감자 서리였다. 그것들은 다 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어떻게 된 조화인지는 몰라도 사내아이들의 호주머니엔 늘 성냥이 들어있었다. 감자 서리는 구덩이를 파고 마침한 돌멩이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였지만, 사내아이들은 그 모든 것들을 잘도 해냈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생겨 날 적부터 그런 손재주는 타고나는 듯도 싶다.
산 입새에 들어서기 무섭게 소는 골짜기로 몰아넣어버리고 불을 지펴 감자부터 묻었다. 익자면 시간이 걸렸으니까. 가제도 잡고, 물고기도 쫓으며 물에서 한참을 허우대다가 구덩이를 헐어보면 말랑말랑하게 익어있던 감자, 몰래 먹던 그 맛이라니.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런 내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엄마가 훤히 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뭘 먹었는지, 그러니까 먹은 것이 감자인지, 밀인지, 콩인지까지도. 그래서 그때 나는 엄마는 그냥 하느님과도 일맥상통하는 사이인가 보다 했었다.
줄기에 달려오는 열매를 젖혀놓고 그 언저리를 호미로 샅샅이 훑어가며 더듬어 내렸다 싶은 데도 뒷날 살펴보면 이삭이 나왔다. 흡사히 규방 아씨이듯 감자는 뒤 곁에다 씨방 하나씩을 감춰 두는 습성을 지닌 듯싶었다. 엉뚱하다 싶을 만큼이나 먼 곳에다 떡하니 식구 하나씩을 던져놓은 까닭은 영역 확장 때문일지, 종족보존의 본능 때문일지, 갓 캐낸 감자는 흙모래만 헹궈 낸 다음 옹기 함지에 담아놓고 발을 넣어 쿡쿡 치대기만 해도 껍질이 대충은 벗겨졌었다. 감자 캐는 날 새참은 어느 집이라 없이 찐 감자다. 풋고추 몇 개 따고 잎사귀 속에 수줍은 듯 숨어있는 물외 두어 개에 고추장만 곁들이면 반찬으로 족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감자는 뜨끈뜨끈할 때 먹어야 제맛이다. 감자를 거둬들이는 때는 시기적으로도 덥다. 그런데도 뜨거워서 혀를 '후후' 해가며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감자다. 감자가 무덕무덕 늘려있는 밭고랑에 퍼질러 앉아 새참으로 먹던 찐 감자, 바람내도 묻어나고, 찬물 내도 묻어나던, 햇볕 내도 묻어났던가.
생으로 먹는 음식이 못 되다 보니 별 허실 없이 옹골진 양식이 되어주는 것도 감자다. 고구마고 땅콩이고 간에 그것들은 생으로도 먹을 수가 있어놔서 일찌감치 거덜이 났던데 비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겨울밤은 길고 해떨어지기 전에 먹은 저녁밥은 너 언제 먹었더냐고, 그럴 때면 이따금씩 아버지는 재가 묻은 군 감자를 자루바가지에 담아내왔다. 속이 출출할 때를 대비해 소죽 솥 아궁이에 묻어뒀던 걸 파 내온 것이다. 식었어도 군 감자는 먹을 만했다. 고즈넉한 호롱불 아래서 감자껍질을 벗겨내던 아버지의 손등과 군 갑자의 모양새는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꺼칠꺼칠하고 쭈글쭈글하고 어쩌면 그 속내도 비슷했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그 무덤 앞에서였다. 제대로 떼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겨울을 맞은 산소는 황량했고 눈비라도 내리게 되면 그나마 붙어 있던 떼마져 씻겨 내릴 것 같아 마음이 어지러워있는데 느닷없이 감자의 그 밍밍한 맛과 아버지의 속내가 한통속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클 적만 해도 감자하면 으레 자주색 감자였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세상이 온통 흰 감자로 판이 바뀌었다. 더 좋은 것에 기존의 것이 밀려남은 순리일 터이지만 이따금은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가 발걸음을 어질러 놓기도 한다.
감자는 버릴 것이 없다. 썩은 것도 잊은 듯이 물에 담가 우려낸 다음 떡을 빚어놓으면 별미가 된다. 쌉싸름하고 닳고 닳은 맛이 났다.
할미꽃이 뽀얀 솜털을 뒤집어쓴 채 양달에 나앉은 봄날, 무 구덩이도 거덜이 나고 먹을 것이 어지중간 할 즈음에야 감자 뒤주는 철거가 됐다. 파종을 위해서다. 씨눈을 빚어내고 난 속은 일용할 양식으로 제공이 되었는데 제철과는 또 다른 맛을 냈다. 썩은 감자를 우려낸 맛과도 또 다른, 결이 삭아졌을 때만이 낼 수 있는 곰삭아 달착지근한 맛이 났다.
우케나 지우고 겉곡식 퍼 담는 데나 쓰이던 자루바가지와 재가 덧배기로 묻어있던 군 감자와 아버지의 투박한 손등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빛과도 아우라 들고 먼지와도 섞여들 줄 아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품새란 이를 두고 이름이던가 싶어지기도 한다.
(석민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