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115명의 탑승객을 태운 KAL858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안기부는 이 사건을 폭파로 규정했으며, 이에 다라 115명의 탑승객을 일괄적으로 사망 처리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오늘 KAL858기 사건에 대해 근본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시체 한 구, 유품 하나, 블랙박스 조차도 발견되지 못한 사건은 세계 여객기 사고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며 이는 분명 ‘폭파’가 아니라 ‘실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발생 2년만에(90년) 찾았다는 KAL858기 잔해
유해 또는 유품은 못 찾고, 발견 확률 1/40000인 기체는 2년 반만에 찾아낸 KAL858기
안기부는 사건 발생 2년 반만에 안다만 해역에서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안기부는 이 잔해에 남아있는 88올림픽 표기 및 태극마크 표시로 보아 폭파된 KAL기 잔해가 틀림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비해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115명이나 되는 탑승객의 유해 또는 유품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세계 여객기 사고사상 탑승객의 유품 또는 유해가 발견되지 못한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2년 반만에 찾았다는 잔해는 발견 확률이 불과 1/40000밖에 되지 않는 부위다.(발견된 잔해는 OFFICIAL이라는 단어가 나뉘어 씌어진 동강난 두 조각. 해상에 떠도는 수만 개의 파편 중 꼭 맞는 두 조각을 찾을 가능성은 1/40000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안기부의 대답이 걸작이다. KAL기 사고 직후 탑승객 가족들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안기부에 질의했으며, 이에 대해 안기부는 안다만 해역에 식인상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김현희가 KAL기에 놓고내렸다던 폭탄은 어디에 있는가?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김현희 일행은 폭탄은 비닐 쇼핑백에 넣어 기내 선반에 놓고 내렸다고 한다.
또한 사건발생 1주일 후 국내 일간지들은 김현희 일행의 소지품에서 화약 반응이 나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당시 김현희 일행을 기내에서 목격한 KAL 박길영 사무장은 남자는 짐이 없었고, 여자는 숄더백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고 진술했다.(87년 12월 2일자 조선일보) 즉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안기부의 발표에서 나온 비닐 쇼핑백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8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김현희 일행의 소지품을 화학적 시험법 등 정밀감정을 한 결과 화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88년 1월 15일자 동아일보)
미사일 격추에도 12분간 버티는 KAL기가 두부 크기의 폭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88년 1월 안기부 수사 발표에 의하면 KAL기에 사용된 폭탄은 콤포지션 350g과 PLX액체 폭탄 700cc. 안기부는 정상고도를 비행하고 있던 KAL기가 이 폭탄이 터지자마자 산산조각이 나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89년 2월 검찰공소에 따르면 안기부가 발표한 폭탄은 확인되지 않은 추정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일본과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에 의하면 KAL기에 사용된 폭탄은 겨우 두부 크기 정도로서 덩치 큰 비행기를 공중분해 시킬 수 없다고 한다. 즉, 폭탄이 비행기 내부에서 터진다 해도 적어도 수 분간 활공 후 폭파되기 때문에 구조신호 발신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83년 사할린에서 KAL007편은 미사일에 격추되었으나 약 12분간 활공하면서 긴급 구조신호를 보냈다.
엉뚱한 데서 발견된 겉은 멀쩡한 구명보트.
안기부는 사고 발생 15일만에 육지근처 근해에서 25인승 구명보트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안기부는 ‘구명보트에 있는 공기압축펌프가 높은 열을 받아 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공중폭발 가능성이 크다’는 미얀마 내무성의 추정과 함께 발견사실을 발표했다.
우선 구명보트의 발견지점이 엉뚱하다. 당시 미해군이 작성한 안다만 해역의 해류도에 의하면 사고 발생 15일 후 구명보트는 육지근처 근해가 아니라 서쪽 대양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또한 당시 발견된 구명보트는 바람이 안 들어간 개어진 슬리핑백 형태로서 공기압축펌프 외 비상식량, 약품, 조명탄 등 49점의 물품이 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명보트는 인조피혁 외 나머지 물품은 멀쩡한데 펌프만 파손된 채로 발견되었다.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폭파된 비행기 안에서 외부는 물론 펌프만을 제외한 나머지가 멀쩡한 구명보트가 발견될 수 있는가.
KAL858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직후, 일본 국적의 북한 테러리스트 김현희(마유미)라는 여인이 대선 하루를 앞두고 서울로 압송되어 왔다.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에는 재갈을 물린 채 비행기에서 내린 김현희는 곧이어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을 본 뒤 많은 것을 느꼈다’며 ‘사죄하기 위해 진실을 밝힌다’고 침통한 표정으로 사건 내역을 밝혔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지금은 전 안기부 직원과 결혼하여 신분을 바꾼 채 살고 있는 김현희. 그러나 그녀는 북한에서 치밀하게 교육받은 테러리스트치고는 너무나도 헛점이 많았다.
안기부가 증거물로 제출한 사진 속 화동은 과연 김현희인가?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가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임을 입증하는 사진 3장을 발표했다. 하나는 72년 11월 평양을 방문한 남북조절위 남측대표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평양의 화동 사진, 두 번재는 일본 하기와라 기자가 72년 평양주재 당시 찍은 사진속의 화동, 세 번째는 평양에서 꽃다발 증정대기 중인 화동 사진이다.
세 장의 사진은 오로지 김현희의 진술에 의해 ‘김현희’임이 확인되었다.
3장의 사진은 모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우선 첫 번째 사진에 나온 화동의 귀는 동그란 모양의 귀인데 비해 김현희의 귀는 세모꼴 모양, 속칭 칼귀이다. 그런데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견해에 다르면 사람의 귀는 지문과 같아서 레슬링과 같은 과격한 운동 또는 성형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 신체부위라고 한다. 결국 안기부가 제시한 첫 번째 사진이 김현희라는 사실은 전문적인 견해에 의해 인정되기 어렵다.
두 번재 공개된 사진은 일본 하기와라 기자가 사진 속의 화동이 김현희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데 이어 김현희 역시 자신임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나 사진 공개 이후 북한의 정희선이라는 여인이 사진 속의 화동이 자신임을 주장, 이에 하기와라 기자 역시 김현희라는 주장을 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안기부는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세 번째 사진은 결정적이다. 세 번째 사진은 이미 72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사진으로 당시 동아일보는 이 사진에 대해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조절위원회’사진이 아니라 ‘개성에서 개최된 적십자회담’사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앙골라에는 김현희의 아버지가 없었다.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의 아버지인 김원석은 앙골라 주재 북한외교관이라고 밝혔다.
안기부 발표 직후 일본 아사히 신문이 앙골라를 겸해서 관장하고 있는 짐바브웨 주재 일본 대사관을 통해 전화로 확인한 결과, 앙골라 주재 외교관 리스트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보도했다.
또한 안기부 역시 문예춘춘 1988년 3월호에서 현재 확인 중에 있다는 입장만을 발표한 채 지금껏 명확한 결과를 내놓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김현희의 파트너 김승일은 70세의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에 불과했다.
안기부는 당시 음독자살했다는 김승일을 김현희와 같은 2인 1조 테러팀이라고 지목하면서 김승일에 대해 영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전자기술 전문의 정예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김승일이 음독자살을 한 이후 사체부검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김승일은 위의 거의 대부분이 수술로 절제된 70세 중환자 노인이었다. 또한 일본 기자들이 추적한 바에 의하면 김승일은 4개 국어는커녕 영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김현희는 음독한 사실이 없었다.
안기부 발표에 다르면 김현희 일행은 사고 발생 2일 후인 87년 12월 1일 바레인 공항을 탈출하려다 검문을 받자 음독, 김승일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김현희는 치사량 미달로 살아남았다.
당시 김현희의 응급처치를 담당한 바레인의 야로시아 응급부장에 따르면 김현희는 음독한 바가 없다고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했다.
이동한 곳마다 증거를?남겨놓은 헛점투성이 테러리스트, 김현희
당시 발표에 다르면 김현희는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으며 바레인에 묵었던 호텔방에는 무려 400여 점이나 되는 소지품을 남겼다.
정예공작원이라면 자신의 흔적을 철저히 감추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김현희는 온 유럽을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댔다. 더욱 의심스러운 점은 바레인에서 묵은 호텔에 무려 400여점이나 되는 소지품을 남겼다는 것이다.
토게 보다가 생각나서 한 사이트에서 퍼왔음.
이거 말고 많음.
노파심에 말하는데 진위 여부에 대해 지랄하지 말고 그냥 믿든 안믿든 자유다.
나도 다 믿진 않음. 가능성만 열어둘뿐.
첫댓글 북한으로간건가?
나도 노파심에 말하는데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고 우리 등뒤에서 총들고 있는 미친새끼들인거는 변하지 않지. ㅇㅇ 그냥 그렇다고. 이게 아니란건 모르겠고. 정부를 신뢰하는 편도 아니지만 ㅇㅇ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자 우리는 젊으니까 ........
하지만 자꾸만 언론에 노출되는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능성마져 점점작아지는 현실이 싫을뿐이다
이 자료를 그대로 믿는건 어리석지만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게 더 어리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