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감춘 동해 오징어…어민 생계 위협하는 기후변화
“한창일 때는 하루 5000마리 이상도 잡았는데, 이제는 100마리도 어렵다.”
40여 년 동안 강원 동해 속초시 앞바다에서 오징어잡이를 해온 박정기 채낚기경영인협회장은 최근 생업을 위협받고 있다. 기후변화로 동해 오징어가 사라지면서다. 며칠 전에는 하루 동안 잡은 오징어가 40마리밖에 안 됐다. 조업량이 전성기 때의 100분의 1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박 씨는 “인건비와 기름값 등 비용을 빼면 적자다. 이대로는 먹고살기 어려워 오징어잡이를 포기하기 직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해 오징어잡이 어민들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오징어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하면서다. 2022년과 지난해 어획량이 매년 반 토막 나더니 올해는 씨가 마를 지경이다. 고육지책으로 큰 배들은 최근 오징어가 잡힌다는 서해나 러시아 해역까지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기름값 등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종 변경도 쉽지 않다. 배에 설치된 장비를 바꾸고, 새 어종에 맞는 그물을 설치하려면 수천만 원이 들기도 한다. 어민에 이어 오징어순대 등 관련 식당과 가게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박 씨는 “TV에서나 보던 기후변화가 내 생업에 위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박 씨가 느끼는 위기감은 비단 오징어 관련 종사자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어촌 마을 곳곳에선 기후변화로 인한 어종 변화가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미 많은 어민과 지방자치단체, 연구소들이 어종 변화에 맞서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강원도는 미래 어획량 급감에 대비하기 위해 총 300억 원을 투입해 연어스마트양식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있다. 연어 명태 양식 종합데이터를 구축하고, 우수 종자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다. 시스템이 갖춰지면 동해에서 어획량이 급감하는 어종을 맞춤형 양식으로 보완하게 된다.
바다가 없는 충북의 도전도 흥미롭다. 아이슬란드에서 수입한 연어 수정란을 민물에서 성체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본성을 넘어 민물 양식장에서만 자라는 연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 스위스 등 수산강국들이 시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에는 여러 변수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올해는 청정 지하수를 도입해 진전된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전남 완도군은 바다 수온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육지에서 500m가량 떨어진 해저 심층수를 육상의 양식장으로 끌어와 사용한다. 양식장 물을 하루 30회 교체하고, 겨울에는 대형 전기온수기를 활용해 청정 양식 환경을 유지한다.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지만 기후위기가 우리의 생존까지 위협하리라 생각하는 도시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조금 더 가까이 사는 어민들은 코앞까지 다가온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투를 펼치고 있다. 일본 오염수 방류로 가뜩이나 어려운 이때 어민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회 한 접시를 주문해 보는 건 어떨까.
유근형 사회부 차장